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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1.28본문
Part 05. 저 높은 곳을 향하여
Chapter 37.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의 성령의 역사
기독교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살아 있는 영의 움직임에 있습니다. 이 영을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신’, 또는 ‘성신’, ‘보혜사 성령’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모두가 그 근원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영을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의 성령의 역사로 크게 구분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양자는 그 기능에 있어서 매우 다른 것입니다.
즉 구약 시대의 성령은 주로 인간의 육신을 다스리고, 신약 시대의 성령은 주로 인간의 혼을 다스립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 시대의 하나님은 인간의 육을 통해 역사하시고, 신약 시대의 하나님은 인간의 혼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 구약의 말씀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여호와는 ‘모든 육체의 하나님’(민16:22)이요, 선민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대하20:15)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과 싸워서 이기는 비결은 군비를 강화하는 데 있지 않고 여호와를 잘 섬기는 데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여호와의 눈 밖에 나지 않는 한 언제나 싸움에서 이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의 성령의 움직임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두드러진 예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 오면 싸움의 양상이 전혀 달라집니다. 즉 육의 싸움에서 혼의 싸움, 바울이 말한 ‘선한 싸움’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라는 그의 외마디 소리는 이 싸움에서 지른 탄성이었습니다. 이때 우리의 적은 눈에 보이는 인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마귀)입니다.
그럼 신, 구약 시대의 성령은 인간에게 각각 어디까지 혜택을 줄 수 있었는가를 제사의 경우를 두고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제사는 신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피로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짐승의 피로, 신약 시대에는 주의 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생명은 피 있기 때문입니다.(레17:11) 그러므로 피의 제물이 없으면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육적인 죄를 부분적으로 용서받을 뿐이었습니다. 성령 자체가 육을 다스리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민들로 하여금 첫째 장막과 둘째 장막, 즉 성소나 지성소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송아지나 양, 비둘기의 피를 제물로 삼아 지성소에서 1년에 한 차례씩, 주로 국가나 민족의 잘못을 위해 제사를 드리고, 성소에서는 제사장이 날마다 개개인의 범죄를 인하여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온전한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물 자체가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히9:23)
그래서 하나님은 온전한 제사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주께서 대속의 제물이 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흠과 티가 없는 주의 피를 제물로 하여, 인간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터놓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피 권세로 멜기세덱의 영원한 제사장이 되었으므로 사람들은 다른 제사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고, 또 주께서 당신을 단번에 제물로 드렸기 때문에 짐승의 제물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주께서 우리 죄를 대속했으니 우리는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죄가 다 눈 녹듯이 사라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마7:21, 마10:38, 요6:53 참조) 우리에게는 대적하는 마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신약 시대에 제사에 대해 운운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주께서 단번에 우리를 대신하여 제사를 드렸는데, 또 무슨 제사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형식이 다를 뿐 신약 시대에도 제사를 드리고 있으며, 또 드려야 합니다.
예배가 곧 제사입니다. 즉 우리는 예배 때 주의 피를 놓고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피는 주의 생명이며, 주의 생명은 주의 성령의 은혜로 임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피 곧 성령의 은혜가 임하지 않는 제사(예배)는 헛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예배란 요컨대 영의 청소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주의 피로 우리의 영을 깨끗이 씻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모처럼 드린 이 예배가 상달이 되지 않아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이보다 더 맹랑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령이 같이하지 않는 예배는 백 번을 드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회개만 하면 즉시 죄가 깨끗이 사해지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하긴 성경에는 그렇게 오해하기 쉬운 구절이 없지도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며.”(요일1:9)
이 말씀을 간단히 그리고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루에 열 가지 죄를 짓고도, 주 앞에 잘못했다는 회개 한 마디로 죄가 척척 사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 이 말씀에 보면 회개를 성령과 결부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례란 어떤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의 피와의 연결을 의미합니다. 회개해도 주의 피와 연결이 되지 않으면 속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내 살을 먹지 않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요6:5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말세에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행2:17) 하는 이 영이, 약속된 인물을 통해 역사하는 세 증거의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요, 감람나무에서 흘러내리는 금 기름(슥4:12)입니다. 그리고 이슬 같은 은혜의 연결을 받아 모든 육체에 부어주는 자가 이긴자 감람나무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좀 더 은혜 단계가 높아지면 죄를 짓는 순간 곧 성령이 와서 소멸시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불담’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불이 죄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계17:14) 이것은 구약 시대에는 바랄 수 없었던 보혈의 은총입니다.
구약 시대에 의인이 없다고 단정한 것은 속죄의 여건이 완전히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다릅니다. 즉 “한 사람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는”(롬5:19) 길이 열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