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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1.28본문
Part 05. 저 높은 곳을 향하여
Chapter 39.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므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시며, 잘못을 뉘우치면 곧 용서해 주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 또 성경에는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말씀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가 이렇게 쉽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적하는 적수(마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적을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성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기독교도들은 바울 신학의 테두리 안에서 예수를 믿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2천 년 전의 말씀에 의해 신앙생활을 해 온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교역자들이 단상에서 설교를 하고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옛날에 내린 지시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을 뿐, 20세기 오늘날 우리에게 요긴한 하늘의 소식을 전해 주지 못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문도에 의해 기독교가 시작된 후로 오늘날 우리나라만 해도 신도가 수백만을 헤아리는 대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양적으로 보면 크게 발전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은혜스러운 집회에서도 2천 년 전 마가의 다락방에 내린 불과 같은 성령의 은총을 갈구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시작된 후로 많은 신도들은 약간의 은혜 체험에 의해 신앙의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간증담을 들어보면 곧 알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기껏해야 겨우 불이나 좀 받고 몇 가지 신령한 체험을 한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사도 시대에 120문도가 받은 은혜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육적으로 상당히 발전했으나, 영적으로는 약체를 면치 못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흔히 무신론자들은 종교를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창시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내세웠을 때 기독교가 싹튼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제대로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이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 하늘에 무엇이 보이느냐?”
“별들이 보입니다.”
“내가 앞으로 네 자손이 저 하늘의 별들처럼 많이 태어나게 하겠다. 내가 그 들을 내 백성으로 삼을 터이니, 너는 내 말을 들어라!”(창15:5)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은 하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즉 믿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인간에게 믿음을 주실까요? 마귀를 완전히 꺾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내세워 마귀와 전쟁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에 쓸모없는 인간은 몇백 만 명이 모여 있어도 하나님에게 도움을 줄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은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독교를 창시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믿습니다. 즉 자기가 복을 받아 잘 살기 위해 교회문을 드나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본위의 신앙이지, 하나님 본위의 신앙이 아닙니다.
거듭 말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창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믿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뜻대로 움직여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일찍이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미리 예언한 하나님의 지시(작전) 대로 극히 제한된 테두리 안에서 움직인 이유를 우리는 이런 면에서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과 싸우기 위해 미리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진행해 간다고 합시다. 이 싸움을 위해 하수인에게 그때그때 지시를 했을 경우에, 그 내용은 싸움을 위해 내가 세운 계획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내 계획 전체를 알 수 없으며, 또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다만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내 지시를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여 일에 큰 지장을 가져왔다면 나는 그를 해고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대는 언제나 마귀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복잡해집니다. 만일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가 없거나, 있어도 극히 미약한 존재라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러나 마귀도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체이며, 결코 만만한 적수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게도 속하지 않고, 마귀에게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란 유사 이래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편이 아니면 마귀의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제까지는 잘 믿었지만 오늘 하나님을 외면하면 그 순간 우리의 위치는 마귀의 편으로 뒤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그만큼 하나님은 불리한 반면에, 마귀는 유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마귀와의 이런 역학관계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울이 마음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역사에 타격을 주면 좋아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름을 부은 사울을 자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 원리는 오늘날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오늘날은 기독교 역사상 마지막 예언이 이루어지는 시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긴자가 주의 피 권세로 알곡을 거둬 하나님의 뜻을 마무리 짓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큰 은총을 베풀어 당신의 백성들이 그 섭리 아래 들어와 하늘의 군대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이 역사 가운데 부르신 것입니다. 그 울타리 밖에서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섬겨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열심히 위하여도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 못됩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사람이 많습니다. 며칠씩 철야해 가면서 기도하고, 40일 단식도 예사로 합니다. 성품도 아름답고 선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어느 시대나 동일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백성들이 ‘어디서나’가 아니라, 당신의 큰 은총 가운데서 착실히 믿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울타리 안에서 하늘 군대를 급속도로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마귀와 싸울 수 있는 이 군대가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그 밖의 무리는 사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있으나마나한 존재입니다. 쓸모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의 입을 통해 당신이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은 은혜를 내릴 때, ‘그 감람나무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 것’을 바란다고 예고했습니다.(호14:7)
하나님의 섭리는 묘합니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 거하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계의 현실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일반 교인들이 기성교회에서 받는 은혜와 여러분이 에덴성회에서 받는 은혜를 비교해 보십시오.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를 누구나 곧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울타리 안과 밖은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리 큰 은총을 베풀어도, 여러분이 저마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심령이 실제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안 되면 몇백 만이 모여 하나님을 찬미하여도, 하나님은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