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DATE. 2024.01.28본문
Part 05. 저 높은 곳을 향하여
Chapter 41. 여호와의 치리에 대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모든 일에 여러 모로 참견하십니다. 여기에는 위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서 아래로는 먹고 마시는 일까지도 포함됩니다.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時候)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으리라.”(레26:4)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인도해낼 때,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가나안은 말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 사실은 메마른 산악지대가 태반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하나님께서 구속하시는 땅”(신11:11-12)입니다. 그러니까 밭도 천수답이 많아 비가 오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제때에 비를 내리지 않으면 곡식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하필 이런 메마른 땅으로 당신의 백성을 인도했을까요? 거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만일 정말 하나님께서 문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제공하여, 누구나 마냥 배불리 먹고 편안히 살 수 있다면 이들은 게을러져서 하나님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즉 생활에 시달리고 다급해져야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속성을 잘 알고 계시므로 함부로 푸짐한 선심을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될 당신의 백성들에게 농사 짓는 법까지 자상히 가르쳤습니다.(사28:26) 즉 모세에게 이상 중에 일일이 보여 주고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랜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에 줄곧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만나로 생계를 유지해 왔고, 그것도 번거롭게 감질날 정도로 매일 하루치씩 주었습니다.
설사 누가 욕심을 부려 며칠 분을 가져다 저장해도 그 만나는 하루만 지나면 썩어서 못 먹게 되었습니다. 이 경우에도 하나님은 먹을 것이 넉넉해지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을 멀리할 것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딱 끊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가불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농사도 당신의 백성들이 애굽처럼 자연의 혜택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은총으로 지어야 하는 땅을 택한 것입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조건이 따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 그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려”(신11:14) 농사가 잘 되게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비를 제때에 내려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꼼짝없이 하나님에게 매여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마치 낚싯밥으로 고기를 낚듯이, 광야 생활에서는 만나로 당신의 백성들을 조종하고, 가나안 땅에서는 비로 조종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어쩔 수 없이 당신을 공경하도록 환경을 조성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부름을 받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 병자, 또는 역경에 허덕이는 불우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역사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부르실까요? 세상에서 내로라하고 떵떵거리며 잘 사는 사람들은 생활을 즐기기에 바빠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 호되게 당하여 그 모든 것이 거덜 나야 비로소 하나님께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잘 사는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 유명한 사람일수록 화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찾아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태를 좀 더 상세히 살펴봅시다. 그들은 우선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을 갈기 전부터 하나님의 눈 밖에 나는 일을 삼가야 했으며, 하나님께 이른 비를 내려 주십사 하고 기도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뭄으로 말미암아 땅이 굳어서 보습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밭을 갈아 씨를 뿌린 후도 하나님께 씨앗이 마르지 않고 잘 싹트도록 비를 내려 달라는 기도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시 씨앗이 메말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에 곡식이 싹튼 후에는 또 단비를 내려 곡식이 잘 자라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다음에는 곡식이 잘 여무는 데 지장이 없도록 비를 알맞게 내려 줄 것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고, 또 그 다음에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기 위해 바람을 주십사 하고 간구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 따라 하나님께 의지하여 살게 마련이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딴 데 한눈을 팔면 하나님의 재앙을 면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밭에서 일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실제로 농사가 잘 되고 못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을 힘입어 농사를 짓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음 거둔 곡식의 10분의 1을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근원이 되는 초막절의 시초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꺼이 이 명령에 순종해야지, 그렇지 않고 자기가 땀 흘려 일한 덕택에 농사가 잘 되었다는 엉뚱한 생각에서 이 절기를 지키지 않고 그냥 넘기면 다음 해에는 흉년이 들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이 초막절은 또한 1년 동안 지은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는 명절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때 하나님께 제사지낸 떡을 먹는 자는 심지어 이방인까지도 거룩해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떡 자체가 거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뭇 백성이 이 초막절 때문에 자범죄에서 놓여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친자식 돌보듯이 키워 왔건만, 이들은 때때로 하나님의 눈 밖에 나서 책벌을 받았습니다.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사48:4)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당신의 백성들이 완악함을 책망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책망을 듣는 선지자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약 시대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책벌은 내리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치리하는 기본 태도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동태를 살피시는 여호와께서 만에 일이라도 당신의 종에게, “너를 따르는 백성들이 목이 곧아 앞선 역사의 백성들보다도 더 완악하다.”는 책망을 하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종은 이사야보다 더욱 여호와께 면목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그 종을 따르는 백성들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 경성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책망을 받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