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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1.28본문
Part 05. 저 높은 곳을 향하여
Chapter 43. 마귀를 대적하라 (1)
1) 마귀의 권세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성경 말씀은 성령을 충만히 받고 기록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해석이 구구할뿐더러 혼란까지 일으키고 있는데, 그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마귀에 대해 철저한 인식을 갖지 못한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적수인 마귀를 모르면 성경에 걸리는 데가 많고 올바른 구원관을 갖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어찌 믿음을 반석 위에 세울 수 있겠습니까?
예수는 덮어놓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진리인 줄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상고해 보면, 마귀에 대해 자주 경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읽고도 예사로 보아 넘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벌써 마귀의 장난에 놀아난 것이 아닌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볼만 한 일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속담에 “안 된 일은 조상 탓이라.”는 말처럼, 일이 여의치 않으면 마귀에게 떠넘긴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도 인간이 게으르거나 실수를 저질러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마귀가 역사하여 좌절되는 수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체험을 통하여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마귀의 역사에 대해 단편적으로 언급했습니다마는, 이 자리를 빌려 좀 더 상세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은 마귀의 것입니다. 즉 마귀가 세상을 마음대로 쥐고 흔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마귀의 지배권을 빼앗기 위해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역사해 왔습니다. 그까짓 마귀쯤 뭘, 하고 마귀를 얕잡아 보았다가는 그야말로 큰코다치게 됩니다.
만일 마귀가 대단치 않은 존재라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당신의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여전히 성령과 천사와 당신의 종을 통하여 밤낮으로 역사하고 계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영의 세계(에덴동산)를 능히 침범할 수 있는 것이 마귀입니다. 만일 마귀가 하나님에게 도전할 수 없는 미약한 존재라면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마귀를 대적하라.”(약4:7)고 주장했습니다. 만일 어느 한쪽이 다른 쪽과 더불어 싸울 만한 힘이 없다면 상대가 되지 않으며, 따라서 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라는 적과 싸운다는 것은 마귀와 우리의 힘이 겨룰 만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 우리의 힘은 주님으로부터 솟아나므로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승리는 주님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정체를 좀 더 분명히 알아야겠습니다. 마귀는 도저히 하나님을 당해낼 수는 없으나, 결코 만만치 않은 적수임에 틀림이 없으며, 또 이것은 성경 66권이 입증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인간에게 전능하신 하나님도 마귀를 상대하여 싸울 때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공경하므로 하나님이 전능하게 보이지만, 마귀를 섬기는 사람들은 마귀가 전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마귀는 창세 이전부터 실재하여 하나님의 성업을 이모저모로 훼방해온 영체로, 우리의 핏줄에도 그 요소가 섞여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귀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생각과 언동이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제쳐놓고, 주님의 제자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거의 다 마귀의 편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과 기거를 함께 하는 제자들이 이 모양인데, 딴 사람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물론 비관할 것은 못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적수는 되어도 승자는 될 수 없으니 말입니다.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우리 손에 쥐어져 있는 것입니다. 주의 피 권세가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주의 피로 무장하면 마귀를 멸하지는 못해도 쫓아낼 수는 있습니다.(약4:7)
마귀가 상당한 기간을 두고 하나님에게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건설하는 입장에 있지만, 마귀는 파괴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하루 빨리 하늘나라를 세우려고 하시는데, 마귀는 이를 무너뜨리기 위해 한사코 훼방합니다. 세우기는 어렵지만 무너뜨리기는 쉬운 일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성령이 아니면 악령의 조종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빛 가운데 어둠이 깃들 수 있고, 어둠 속에 빛이 비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있다고 자고하지 말고, 어둠 속에 빠졌다고 실망할 것은 없습니다.
빛과 어둠은 상극입니다. 그러나 어둠은 빛을 삼킬 수 없으며, 빛은 어둠을 환히 밝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 가운데 전능하시고 어둠의 저항을 받으며, 마귀는 어둠 속에서 전능하고 빛의 침노를 당하여 끝내는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계20:10)
그러나 마귀는 영체이므로 만만치 않은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미혹되기 쉬운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서울 장안에 점쟁이들이 우글거리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와 같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운명을 마귀에게 의탁하고 있습니다. 이런 풍토 속에 한 가닥 주의 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점쟁이의 단골이 어쩌다가 이 빛 가운데 들어와서 나한테서 안찰을 받으면 잠시 까무러치기가 일쑤입니다. 성령과 악령의 작은 전쟁에서 악령이 녹아웃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입김이 그를 소생시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한 자로서 한 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요8:44, 눅4:6) 마귀란 요컨대 모든 악의 총칭이며 그 왕초를 용이라고 합니다.(계13:4) 그 계교나 권능은 인간을 현혹하고도 남음이 있어,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고후11:14) 거짓 이적을 행하고,(살후2:9, 계16:14) 성경을 비뚜로 해석하는 등(눅4:10) 행패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저 하와를 꼬여내고 가롯 유다를 유혹한 것도 다 마귀의 농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게 하는 것도 그놈의 장난입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주님을 시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마귀의 세력이 이렇게 매섭기 때문에 하나님도 계명의 제 1조에 “나 이외의 딴 신을 섬기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섬기지 말라.”는 말씀은 섬길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처럼 율법에, 그것도 제 1조에 당부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보다 마귀를 섬길 가능성이 많습니다.
예수를 외면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믿노라 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그런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이 자유의 율법으로 바뀐 신약 시대에 와서는 주님의 피 권세로 마귀를 무찌르는 강력한 무기가 등장했지만, 그래도 이런 불미스러운 경향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마귀도 상대적으로 전력을 강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편에서도 이에 대한 대책을 따로 세워야 합니다. 이긴자에게 전무후무한 큰 권능(계2-3장 참조)을 부여하여 하늘 군대의 편성을 마치는(계7:4) 마지막 역사를 일으키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