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Part 05 - Chapter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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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1.08
[6권] Part 05 - Chapter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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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5. 진리의 등대

Chapter 32. 영과 육

 

영과 육은 긴밀한 관계가 있지만, 판이하게 다릅니다. 육은 영의 그릇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동안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6:63)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이 말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누구나 명심해야 할 지당한 가르침이지만, 실제로 우리의 신앙생활에 구석구석 배어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육적인 세계이므로 여기 곧잘 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도 육의 것을 추구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함정의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이 함정에 빠져 있지 않는지, 한 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내가 영의 것을 추구하노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육의 것을 좇고 있지 않나 하고 말입니다.

 

만일 육의 것을 좇고 있다면 그는 위선자거나, 적어도 위선자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영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육을 위해서입니까? 이 물음은 요컨대 주를 위해 사느냐, 나를 위해 사느냐로 압축됩니다.

 

우리는 물론 육을 입고 한 세상을 살아야 하므로, 육을 도외시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육을 도외시하지 않는 것과 육을 위주로 하여 사는 생활태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육을 추구하는 것은 주의 일을 하거나 주의 영광을 드러낼 경우에만 용납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육의 추구는 어디까지나 주를 위한 수단이지, 자기 자신을 위한 목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5-6) 지당한 말씀이지만, 우리는 이 말씀대로 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바울 자신의 고백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7:22-24) 바울은 오랫동안 이런 갈등과 고뇌 속에 시달린 끝에 선한 싸움을 싸워 달려갈 길을 마치고”(딤후4:7)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이런 고난의 길은 구약 시대의 종들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육적으로 축복을 내렸기 때문에 대체로 화려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종이 솔로몬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러 이 땅에 오신 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즉 신약 시대에는 주의 종들이 고생을 낙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종이 바울입니다. 그는 육을 버리고 영을 위주로 살기 위해 고생을 자청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연단이 필요합니다. 풍파 속에서 믿음을 꿋꿋이 지켜나가야만 비로소 주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평안한 가운데 남의 대접을 받으면서 구원받으려는 것은 너무나 안이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계는 어떻습니까? 외관상 잘 믿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의 다 육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믿음이 온전히 박힐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물질이 넉넉하게 되면 세상으로 흐르고 하나님을 멀리하기 쉽습니다. 그런가 하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은 남의 처지와 비교하여 곧잘 낙심합니다. 모두가 마음이 병들어 있는 징조입니다. 즉 주를 위해 자기의 환경을 조절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있는 사람은 그만큼 주를 위해 더욱 헌신할 기회가 많이 주어진 것이므로 이를 선용해야 하며, 없는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가난하여 은혜 받기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므로 이를 십분 이용해야 합니다. 즉 그 가난을 주의 것으로 보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내가 누군데하는 자의식(自意識)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육을 좇는 데서 오는 교만한 생각으로, 은혜 받는 데 큰 장벽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육을 좇는다면 그토록 빗발치는 눈총 속에서 도저히 이 역사를 감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환난과 핍박이 없으면 생기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불러서 강하게 하시고, 없는 자를 내세워 있게 하십니다. 즉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강한 자나 부유한 자를 통하여 이루는 것은 당신의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 넓은 길을 가려는 생각을 마십시오. 우리는 모름지기 주님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위하는 신앙 자세를 버려야겠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합니다마는, 우리는 그 예술보다 더욱 긴 영원한 생명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