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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1.13본문
Part 05. 진리의 등대
Chapter 36. 음부에 대하여
예수를 믿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하기 싫은 일도 주님이 하라면 해야 하고, 자기가 하고 싶어도 주님이 하지 말라면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자유한 길, 즉 ‘좁은 길’을 가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자행자지(自行自止)하면서 이 길을 가기 싫어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이길을 가라고 하시니, 우리는 괴로워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성(理性)을 갖고 있으므로 주께서 가라고 하신다고 무작정 가기는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서, 좁은 길을 가는 이유와 목적을 알아야 하며, 또한 알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이유와 목적이 뚜렷할수록 우리는 모든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능히 참아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주님 이후 이천 년 가까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이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막연히 예수를 잘 믿으면 죽어서 천당에 가고, 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려니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영의 세계를 모르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믿음을 굳게 다져 나갈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좁은 길을 가라니까 가기는 가는데,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므로 그 다음에 어떤 세계가 열리는지 궁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에 오는 영의 세계에 대하여 답변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자연히 가다가 도중하차(途中下車)를 하는 사람이 많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부름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얻은 자는 적다.”는 주님의 말씀은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육의 세계가 아니라 영의 세계를 추구합니다. 여기서 당연히 제기되는 것이 인간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이 물음에 대해 성경에는, “죽음 뒤에는 음부가 따른다.”(계6:8)고 지적했을 뿐, 자상히 언급되어 있지 않고, 주님은 오묘한 영의 세계에 대한 상세한 해명은 보혜사 성령에게 미루었습니다.(요16:13)
그리하여 주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독교도들은 이 음부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믿어 왔습니다. 그것은 음부에 대해 가르친 주의 종이 없었기 때문이며, 음부에 대해 가르친 주의 종이 없었다는 것은 성령을 충만히 받은 주의 종이 없었다는 해석도 됩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기독교는 양적으로 많이 팽창하여 유명한 신학자나 선교사, 부흥사가 등장했으나, 천국과 지옥에 대한 정의를 올바로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귀가 기독교인 알기를 우습게 알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내 말이 거짓말입니까? 유명한 신학자나 목사님을 찾아가서 “천국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한 번 물어 보십시오. 아마 그들은 어리둥절하여 “천국? 천국이 천국이지.”하고 대답하거나 “죽어봐야 알지.”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좀 자상한 분은 계시록에 나온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기록을 인용하여 “천국은 황금길을 가면서 열두 과일을 따먹고, 변소도 가고…,” 하면서 설명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여러분에게 단편적으로 언급했지만,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나는 앞으로 여러분의 신앙이 자란 정도에 따라 천국에 대해 더욱 상세히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음부에 대해 몇 말씀 더 첨부하려고 합니다. 마태복음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그 소문이 온 땅에 퍼지니라.”(마9:24-25) 이 본문 말씀에 보면, 주님은 죽은 소녀를 보시고 “잔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정확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부활, 즉 다시 깨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은 후에 누구를 막론하고 (지성소에 가는 순교자나 살아서 주를 맞는 성도는 제외하고) 일정한 기간 동안 갇혀 있다가, 일곱째 나팔을 불 때 반드시 깨어나 심판대 앞에서게 됩니다. 이 갇혀 있는 곳이 바로 음부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소멸로 보고 두려움을 느끼지만, 죽은 당사자는 자기의 죽음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영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 영은 죽어서 쓰러진 자기 육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여러분은 실감을 느끼지 못할 테지만, 요즘 심령 과학 책을 더러 들여다보니 그 내용이 내가 이상 중에 본 것과 흡사하여, 사람들이 이런 책을 좀 읽어 볼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전에 영의 세계에도 감각이 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이건 사실입니다. 다만 그 감각의 내용이 다르고 상당히 예리한 것이 특이할 뿐입니다. 가령 우리가 살을 꼬집으면 아픔을 느끼는데, 영의 세계에서는 그런 아픔이 아닌 다른 예리한 느낌을 받게됩니다. 이것은 다른 감각 ― 시각이나 청각, 후각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죽으면 즉시 두 천사가 와서 하늘나라의 지성소로 안내하거나, 마귀 두 마리가 와서 양쪽 겨드랑이를 끼고 음부로 갑니다. 이때 가기 싫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음부에 가면 대왕 마귀에게 보고하며, 이때 죄를 많이 지은 자일수록 환영을 받고, 죄가 적은 사람은 푸대접을 받게 됩니다.
죄를 많이 지었다는 것은 그만큼 마귀의 명령에 잘 순종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대왕 마귀의 명령에 따라 일정한 장소에 가두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는 그 음부를 주님이 열 때까지 그곳에서 심판 때까지 대기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죽은 자를 가두는 것은 이처럼 마귀가 하지만, 여는 것은 주님의 권한에 속해 있습니다. 이 대기하는 기간은 지상의 시간으로 따지면 수만 년이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음부에서 자는 동안은 시간관념이 없으므로 한순간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이 음부에 갇혀 있는 영들은 언제 놓여나게 될까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어야 그때 비로소 주님은 음부의 열쇠로 열게 되어 있습니다.(계10:7 참조) 그러니까 주님은 음부를 열쇠로 열고 싶어도 마음대로 열지 못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이 일곱째 천사의 나팔이 울려 퍼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일곱째 천사의 나팔이 울려 퍼질까요? 땅에서 마귀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합니다. 그때까지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마22:44) 주님은 하나님의 세계에서 왕 노릇하시지만, 마귀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를 갖고 있는 마귀의 세력을 꺾어야만 비로소 그 속에 갇힌 영들을 꺼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귀의 세력을 꺾는 것이 선결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준비는 주께서 직접 하시지 않고 당신의 종을 내세워 하시게 되어 있습니다.(계2-3장)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것이었으나, 아담, 하와가 죄를 지음으로써 마귀에게 빼앗기게 되었으므로, 이것을 되찾으려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되찾으려면 마귀를 무찔러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종에게 계속 작전 지시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만일 마귀를 무찌르지 않고도 음부의 영들을 마음대로 끄집어 낼 수 있다면 우리가 구태여 예수를 믿노라고 애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주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척척 이루어질 터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에게는 소탕해야 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적은 인간의 영을 마음대로 음부에 가둘 수 있을 만큼 강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영들은 지금도 일곱째 나팔이 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