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Part 02 - Chapter 1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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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1.15
[5권] Part 02 - Chapter 1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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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2. 빛을 찾아서  

Chapter 14. 계시록의 7복 (3, 4)



3) 예복을 더럽히지 않는 자들

셋째로,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16:15)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옷은 물론 영적인 의미로 쓰여 있으며, “옷을 지키라.”는 말씀은 옷을 더럽히지 않고 잘 간수하며, 만일 조금이라도 더럽혀지면 곧 빨아 은혜를 간직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치가 드러나 주의 빛을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옷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예복으로, 바울은 빛의 갑옷’(13:12) 또는 전신 갑주’(6:1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보통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인간과 만나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직접 땅에 강림하기도 하십니다. 소돔 성문에서 롯은 두 천사를 맞아들였으며,(19:1) 노아의 자손들이 성과 높다란 대를 쌓았을 때 하나님은 거기 친히 강림하셨습니다.(11:5) 그리고 모세에게 계명을 주기 위해 시내산에 강림하신 적도 있습니다.(19:18)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늘나라와 인간 세상 사이에는 둘째 하늘, 곧 마귀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마귀, 인간과 마귀 사이는 직통이지만,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사를 시켜서 간접적으로 인간과 접촉하시며, 여호와께서 직접 보시고자 하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강림하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학자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마귀의 세계를 잘 몰랐기 때문에 적당히 예수를 믿으면 다 되는 줄 아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힘든 반면에, 마귀와 가까워지기 쉬운 것은 바로 앞에서 내가 말한 그런 거리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마귀를 쫓는 노력 없이 하나님의 뜻을 좇을 수 없습니다.

 

주께서 다시 오실 때의 찬란한 빛은 주를 맞이한 예복을 갖춘 사람에게는 영광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치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맘대로 오실 수가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하늘 군병의 수가 차면 오시지 말라고 해도 오시고,

 

한 사람이라도 모자라면 이 지구는 영원히 태양의 둘레를 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짜를 어느 해 아무 날이라는 식으로 못을 박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이유가 있어서 우주를 지으셨습니다. 따라서

멸할 때에도(6:11)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뚜렷이 설, 다시 말해서 지상에서 주님이 오실 만한 여건이 마련되었을 , 주님은 당연히 오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여건이란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자기 옷을 깨끗이 빨아 입은 주의 아내들의 일정한 수가 차는 것입니다. 이때를 고비로 인류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가장 큰 목적은 요컨대 이 예복, 곧 빛나는 세마포 옷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4)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은 자들

넷째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다.”(19:9)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혼인은 물론 주님과의 영적인 결합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도 남녀가 혼인을 하여 부부가 되면 일심동체라고 해서 무촌, 즉 촌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신랑과 혼인하는 것도 주님과 한 몸이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주의 인격을 내 것으로 만들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나는 먼저 이 혼인잔치에 대해 알기 쉽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한 남자가 신부를 맞이할 때에는 가문, 성품, 용모, 인격, 재산, 학력, 체력 할 것 없이 세밀히 따진 끝에 이만하면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고락을 함께 나눌 만하다고 인정될 때 비로소 혼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한 여자가 남편을 맞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주님과의 영적인 혼인에 있어서는 신랑이 주님이므로 문제는 우리 신부 측에 있습니다. 주님은 아내감을 고를 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못 이루는 것이 이 아내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늘나라를 이룩하려면 144천의 주의 아내, 곧 하늘 군대가 마귀를 온전히 소탕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창세 당시부터 하나님에게 대적해 온 큰 적수입니다. 그러므로 웬만한 믿음으로는 마귀와 대결하여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목숨을 내걸고 당신을 사랑하는 자를 아내감으로 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목숨을 내건 이상의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순교자를 귀히 보시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주님과의 혼인 잔치에 아내 되는 자격자로서가 아니라, 축하해줄 손님으로 청함을 입은 자들이있는데, 이들도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22:14)고 말하여, 이 천국 백성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은 비유를 들어 임금이 아들을 위해 모처럼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오라고 청했으나, 어떤 사람은 밭에 나가 씨를 뿌려야 한다는 이유로,

 

또 어떤 사람은 장사를 하기에 바쁘다는 구실로, 그 밖의 사람들도 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오지 않으므로, 하는 수 없이 종을 시켜 한길에 나가 오가는 사람을 마구 불러들였습니다. 예수 믿는데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나는 여차저차해서라는 말은 주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 지성소에 가 있는 순교자와 현재 지상에서 배출하는 하늘 군대의 수를 더하여 정해진 수가 차서 아마겟돈 전쟁에서 대승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졌을 때 혼인잔치가 베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더라.”(21:1-2) 왜 성을 하필 신부로 비유했을까요? 거기에는 성의 아름다움을 표시하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어린 양의 신부, 곧 하늘 군대의 수가 차야만 비로소 이 성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성의 됨됨이에 대해서는 계시록 219절 이하에 좀 더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 보면, 성은 온통 진귀한 여러 가지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 역시 비유로 찬란한 영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 하나의 울타리를 가리킵니다. 즉 새 예루살렘은 성전,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주님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21:22 참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한 사람의 의인만 있어도 성안의 죄인을 사하고 멸하지 않겠다(5:1)고 하신 것은 의인이 당신에게 이처럼 소중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볼 때에는 대단할 것 없는 사람도 하늘에서 내려다 볼 때에는 무척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는 말씀으로 지었지만, 인간은 당신의 생기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좁쌀알만 한 지구에 달라붙어 복작거리는 인간에게 각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이 이렇게 지으신 방법부터가 다르며, 당신에게 요긴한 재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신이 떠나면 티끌과 같은 존재이지만, 그 신이 같이하면 여간 귀한 존재가 아닙니다.

 

전자와 후자의 사이는 실로 하늘과 땅만 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혼인잔치의 신부와 초청객과의 차이도 엄청납니다. 초청객이 복이 있다면 신부는 얼마나 복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