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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1.15본문
Part 03. 이기는 그 날까지
Chapter 15. 초림과 재림
주님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알리신 말씀에 따라 이 땅에 오시고 움직이시고 또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에게는 언행에 자유재량이 전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마4:9) 육을 입으시고 잠시 천사만 못한 존재로 오셨으므로, 만에 하나라도 본의 아닌 실수가 있을까 하나님이 염려해서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복음서에서 주님이 실수하실 뻔한 대목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를 잠시 꺼린 경우가 그것입니다.(마26:39)
주님이 뜻대로 하신다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권능을 행하여 십자가 위에서 뛰어내려, 로마 병정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지상의 왕 노릇을 하면서 영화를 누리다가, 십자가를 지지 않고 적당한 시기에 승천하셔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영원한 하늘나라를 이룩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은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제한된 움직임 때문에 그 언행(言行)이 기록된 네 복음서는 미흡한 데가 있습니다. 듣는 자의 심령들이 어려서 하고 싶은 말씀을 다 못했던 것입니다.(요16:12) 그래서 주님은 다른 보혜사 성령으로 하여금 이 미흡한 데를 보충하도록 하였습니다.(요16:13)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라.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는 말씀과 같이,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아버지에게 가서 그 피 권세로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낼 때 그 성령의 힘을 입어 그런 일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영이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여기서 ‘나를 믿는 자’란 성령을 충만히 받은 성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이 말씀이 그대로 응해져야 합니다. 바울을 비롯하여 베드로나 야고보, 요한과 같은 제자들은 이 성령을 충만히 받아 사복음서의 말씀을 보충하였으며, 또한 이 사도들은 성령을 부어 뭇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내 입에서 깊은 진리의 말씀이 터져나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성경 공부를 따로 하지 않습니다. 또 공부할 시간적 여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말이 청산유수로 터져 나오느냐고요? 주께서 내 입을 기계로 쓰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단상에서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 이영수를 보지 말고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지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하늘에 올라갔다가 구름을 타고 당대에 오시겠다고 말씀하였습니다.(마24:34) 그러나 그 후 2천 년이 되도록 오시지 않았습니다. 왜 주님은 여태 오시지 않을까요? 실은 오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직 오실 만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성령을 통하여 그 여건을 조성을 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다시 오신다는 주님의 언약을 굳게 믿고, 저마다 이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바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예언은 불발로 끝났습니다. 그럼 주님이 거짓말을 했을까요? 아닙니다. 주님은 당시에 그렇게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재림에 대해 선지자 스가랴의 말에 준하여 말씀하시고,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내용에 대해서는 “멸망할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마24:15) 때가 다 된 줄 알라는 다니엘의 말을 인용하여, “읽는 자는 깨달으라.”고만 말씀하시고, 승천하신 연후에 사도 요한에게 별도로 상세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이 이 사람의 입을 통해 오늘날 분명히 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주님은 왜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관해 상세히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요? 가르쳐 줘도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일으키게 되리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로 보여 주시고, 약속된 다른 보혜사 성령을 충만히 받은 자로 하여금 적당한 시기에 터뜨리게 한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증거한 성경 말씀들을 상고해 보면, 거기 적지 않은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주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의 말과, 계시를 받아서 전한 바울의 말, 그리고 마지막 때 될 일에 대해 이상 중에 상세히 가르침을 받은 사도 요한의 말 사이에 다른 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주께서 속히 오신다고 증거했으나, 제자들은 지상에서 주님을 맞이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바울은 재림주를 산 자가 죽은 자보다 먼저 영접하지 못하며 지상의 성도들이 홀연히 변하여 공중에 올라가서 주님을 맞이한다고 말하고,
사도 요한은 주님이 재림하신 후 천년세계와 아마겟돈 전쟁과 심판을 거쳐서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는 순서와 절차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들이 각자 가르침을 받은 한계 안에서 자신이 아는 차원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승천하신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성도들은 주의 재림을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나곤 했습니다. 어느 시대나 교역자들은 주의 재림을 전했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주의 재림을 증거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게 될 여건이 무엇이며, 다시 오시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그 후로는 영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마24:29, 벧후3:13)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살전4:15-17)
본문에 “주의 말씀으로 말한다.”는 것은 이상 중에 주의 가르침을 받아서 전한다는 뜻이며, ‘살아남은 자’는 땅에서 온전히 구속받은 성도요, ‘자는 자’란 주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당한 순교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순교자는 지성소에 가 있다가 살아남은 성도보다 먼저 주의 재림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말씀은 자기가 이상 중에 본 것을 그대로 기록하고,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은 각자 맡은 소임이 다릅니다. 바울이 말한 주의 공중 영접만 해도 그렇습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면 살아 있는 성도만 홀연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까지도 완전히 새로워지며(마24:29, 벧후3:12) 지상의 성도들은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는 주님’과 합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지상의 성도들뿐만 아니라 지성소에 가 있는 순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계6:10참조) 주의 재림이 이루어져야 하늘나라를 세우는 절차(節次)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 순교자들은 지상의 동태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음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실 수 없습니다. 재림에 앞서 일정한 여건이 마련되어야 합니다.(계6:11) 이 여건이란 영적인 십자군, 14만 4천의 편성을 마치는 것을 가리킵니다.(계7:4) 이 십자군은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에 출전하여 마귀를 완전히 소탕해야 할 용사들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군은 지성소에 가 있는 순교자들과 지상에서 구속받은 거룩한 성도들로 충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성소에 가 있는 순교자의 수가 신구약 시대를 통하여 모두 14만 명이라면, 나머지 4,000명은 지상에서 더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 수가 차게 되면 마귀의 편에서도 대책을 강구하게 됩니다. 즉 “때와 법을 변경코자 한다.”(단7:25)는 선지자 다니엘의 말이 응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귀는 한 때, 두 때, 반 때의 지배 기간을 연장시켜, 규례(룰)를 깨뜨리려는 책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렇게 여건이 마련되었을 때 주님이 어디에 오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교회에,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에, 어떤 사람은 대한민국에 온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다시 오시는 주님을 지구상의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구는 평평한 것이 아니고 둥그렇게 생겼으므로 주께서 어느 한 지점에 왔을 때 반대 쪽 사람들은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이 지구상의 어는 한 지점에 오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오실 때에는 지구를 빛으로 빙 둘러싸서 누구나 볼 수 있게 합니다.
주님은 이 천지 이변에 대해, 환란 후에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린다.”(마24:29)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의 강한 빛의 위력에 의해 지구는 물론 하늘까지도 홀연히 용해되어 버리고 해와 달빛이 필요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주는 여호와께서 처음에 지으실 때의 원상으로 복귀되어 다시 영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주께서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다시 오실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했습니다.(마24:38) 홍수가 날 때까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