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Part 03 - Chapter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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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1.23
[5권] Part 03 - Chapter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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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3. 이기는 그 날까지   

Chapter 24. 거룩한 예루살렘 성에 대하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너에게 보이리라.’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21:9-11) 이것은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말하고 보여준 광경입니다. 마지막 일곱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가 끝나는’(15:1)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예정대로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의 특징의 하나는 숫자적으로 표시하여 빈틈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곱 재앙, 12기초석과 12, 24장로, 144천 등등, 표현이 숫자적으로 정확히 표시되어 있습니다.

 

천사가 이상 중에 사도 요한에게 어린 양의 아내를 보여주기 위해 요한을 높은 산에 데리고 올라갔을 때, 실제로 요한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보석으로 꾸민 예루살렘 성이었습니다. 어린 양의 아내를 거룩한 예루살렘 성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이 아내의 수가 다 차면 새 예루살렘 성, 곧 천년세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예루살렘 성에는 네모가 반듯한 성곽, 즉 울타리가 있는데 출입문은 한 면에 세 개씩 열두 개요, 문마다 천사가 하나씩 서서 지키며, 그 문 위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21:12) 그러니까 지파마다 들어가는 문이 다릅니다. 천사는 이를테면 문지기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지기의 지위가 높습니까, 그 집에 들어가 사는 사람의 지위가 높습니까? 아파트의 수위는 입주자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이 경우의 천사는 주의 아내의 심부름꾼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천사는 미가엘이나 가브리엘 천사장보다 지위가 훨씬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의 아내 144천이 열두 문으로 갈라져 들어가게 되므로, 한 문에 12천 명씩 들어가는 셈이 됩니다.

 

이 문마다 쓰여 있는 열두 지파의 이름은 마치 우리네의 문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한 가구의 식구가 몇 명이건 문패에 호주의 이름을 대표로 써 붙이는 것처럼, 이 열두 지파의 이름은 거기 속하는 12천 명의 대표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대제사장 아론의 흉패에 야곱의 아들로 구성된 열두 지파의 이름을 죽 기록한 것은 144천을 나타내는 예표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성곽에는 12개의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12사도의 이름이 각각 쓰여 있다고 했습니다.(21:14) 이 기초석은 세상의 그것과 달라서 수정같이 맑기 때문에 그 이름까지도 사도 요한의 눈에 환히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자기 이름이 몇 번째 기초석에 쓰여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상 중에 본 바에 의하면, 에덴동산도 새 예루살렘성과 같은 투명한 보석들로 꾸며져 매우 찬란하였습니다. 여러분, 사도 요한이 이상을 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들리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립니까? 사도 요한이 이상 중에 본 것을 이영수는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새 예루살렘성의 구조를 볼 때 기초석은 신약 시대의 사도로 구성되고, 문은 구약 시대의 12지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신, 구약 시대를 통틀어 의로운 자의 수가 이 성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배출된 의로운 자의 이마에는 주의 이름이 기록되고, 구약 시대에 배출된 의로운 자의 이마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의 꿈같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거기에는 죽음은 물론 슬픔과 한숨, 불안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방에서 빛이 환히 비치므로 그림자가 없고, 유리 같은 정금(精金) 길을 가면서도 자기 모습이 분명히 비치는 세계가 실제로 펼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을 어린 양의 아내로 비유하고, 성전을 하나님과 주님으로 표시(21:22)한 것은 어린 양의 아내가 하나님과 주님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며, 성전은 어디까지나 성전으로 존재합니다. 주의 아내는 천년세계에서 성안에서 지내게 됩니다. 즉 성은 이들 아내가 거할 집입니다. 이것은 하늘나라가 형성되어 실제로 왕 노릇을 할 때의 집과는 물론 다릅니다.

 

내가 이상 중에 본 바에 의하면 이들 왕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각각 방 하나씩을 차지하는데, 굉장히 넓습니다. 그리고 각 방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화려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복도 한쪽으로 방들이 있고, 각 문에는 왕들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마치 학교에서 반을 표시하는 문패와 같습니다.

 

그리고 지파의 대표자가 두령 격이 되며, ‘이기고 끝까지 주의 일을 지킨 자곧 이긴자가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받아 주의 지시에 의해 그 서열을 정하게 되어 있습니다.(3:12 참조) 그 그림자로서 보여 준 것이 여호수아의 역할입니다. 그는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스라엘 12지파의 두령들에게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각각 분깃을 나눠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예루살렘 성을 한동안 짓밟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최후의 발악을 하는 마귀입니다. 이를 가리켜 주님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24:15)고 했습니다.

 

그 기간을 다니엘은 한 때, 두 때, 반 때로 표시하고,(12:7) 계시록에는 3일 반, 또는 1,260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11:11, 12:6) 어린 양의 아내들이 천년세계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것은 요컨대 이 환란 기간이 지난 후에 맞을 최후의 결전(아마겟돈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최후의 결전에서 마귀를 완전히 소탕하고 하늘나라가 임하면 어린 양의 아내는 왕이 되어 각각 자기 분깃을 맡아서 심판을 거쳐 치리해 나가게 됩니다. 이 경우에 그 판도가 넓은 왕과 좁은 왕이 생기게 되는 것은 세상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앞에 올수록 서열이 높아, 넓은 판도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말이 실감이 안 납니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다만 여러분에게 전할 필요가 있어서 전할 뿐입니다. 다행히 주님은 이런 영의 세계에 대한 보증으로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이 이모저모로 여러분에게 증거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하늘나라의 규모를 잠깐 살펴봅시다. 하나님이 인간과 교류하기 시작한 6천 년 가까운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죽어갔습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구의 수가 약 40억이지만, 아담, 하와가 이 땅에 떨어진 이후 죽은 자의 수를 1조라고 한다면, 이것을 144천으로 나누면 약 700만이 됩니다.

 

즉 그 나라에서 왕 한 사람이 다스리는 인구는 평균 700만 명꼴이 된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입니다. 왕은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이들 중에서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추릴 자는 추리고, 지옥에 보낼 자는 보내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심판의 광경을 이렇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20:11-12) 여기서 말하는 생명책은 어린 양의 생명책이 아니라 144천의 왕들이 갖고 있는 생명책으로,

 

여기에는 심판을 통해 구원 받을 무리의 명단이 기록되며, 또 책들에는 죄인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죽은 자를 위해 드리는 추도예배는 이 심판 때에 효과를 발생하게 됩니다.(고전15:29 참조) 그리하여 지옥에 떨어질 자도 천사의 상신으로 정상을 참작하여 그 명단이 생명책으로 옮겨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어린이의 심판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어린이라도, 그러니까 가령 생후 한 시간 만에 죽어서 자범죄가 없어도, 원죄와 유전죄에 의해 심판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점은 세상 재판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즉 하나님과 마귀가 싸우는 룰(규례)에 의해 이런 결과가 빚어지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지성소에 가 있는 영들이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언제까지 우리 피 값을 갚지 않으시렵니까?”(6:10) 하고 항의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순교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나면 곧 원수를 갚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이들이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는 절차를 미리 알았더라면 이긴자의 역사에 유의하여 때가 되기를 참고 기다릴망정, 이런 항의는 입 밖에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일도 그렇지만, 신앙에 있어서도 때를 잘 타고나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볼 때, 선지자를 만난 백성은 복이 있고, 그렇지 못한 백성들은 불행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너희의 눈은 봄으로, 너희의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13:16-17) 이것은 주님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