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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1.10본문
Part 04. 예루살렘의 별
Chapter 25. 가인과 아벨
인류의 조상 아담, 하와는 죄 짓기 이전과 이후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죄 짓기 이전에는 신령한 영체였으나, 이후에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육을 입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던 겁니다. 그들에게 마귀의 독소가 스며들어 거룩한 곳에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하와는 죄에 떨어져 미개한 원시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 하와의 생활은 물론이고, 그 후 수많은 세대에 걸쳐 사람들은 미개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굴속에서 살고, 음식은 날로 먹고, 온 몸을 뒤덮은 털이 옷을 대신하는 그런 생활이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성을 필요로 하는 본능에 따라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을 리가 없고, 선과 악을 분별하는 도덕관념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자들과 교류하여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세대를 두고 인류와 떨어져 계시다가, 지금부터 약 6천 년 전에 인지가 어느 정도 발달되어 철이 났을 때 비로소 인간과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크게 주목해야 할 엄청난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부터 죄에 떨어진 인류를 건지려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긴 세월이 흘러간 후의 일입니다. 그 동안에는 인간들이 하나님과 무관한 사이였으므로, 성경에 아무 기록도 없습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서 신약 시대로 넘어오는 공백 기간, 즉 선지자 말라기에서 세례 요한에 이르는 약 430년 동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 있었으나 하나님이 이들에게 역사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인과 아벨은 아담, 하와 사이에 태어난 자녀로 되어 있고,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제사를 드릴 정도로 지각이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그런 미개한 사람들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까요? 하나님을 섬기고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까 가인과 아벨에게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생업을 보면 양을 기르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때는 이미 원시 시대에서 오랜 세대를 지나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성(城)을 쌓아 외적을 막았습니다.(창4:17)
만일 가인과 아벨이 아담, 하와의 첫째와 둘째 아들이라면, 네 식구밖에 없는데 외적의 침입을 걱정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인 죄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쫓겨났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창4:14)
이들은 모두가 아담, 하와의 후손들로, 가인이나 아벨과 마찬가지로 지각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약 6천 년 전 일이며, 아담, 하와가 죄에 떨어진 후 무수한 세월이 흘러갔던 것입니다. 성경에 가인과 아벨을 아담, 하와의 아들로 표시한 것은 하나님이 이들과 비로소 교류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죄 짓기 이전의 아담, 하와와 가까이 교류하고, 그 후 오랜 공백기를 지나 가인, 아벨과 비로소 교류하기 시작했으므로, 이 양자를 연결시켜 혈연관계(血緣關係)로 표시한 것입니다. 예컨대, 바울이 디모데를 영적인 의미에서 아들이라고 부른 것처럼,(딤전1:2) 가인과 아벨도 그런 의미에서 아담, 하와의 아들로 표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나눠보면, 역사적인 사실과 예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사실이 특이한 점은 그것이 하나의 사실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깃들여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은 인류 역사에서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것만 간추려서 기록한 것이며, 따라서 거기에는 많은 공백이 있습니다.
요컨대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알리기를 원하시는 내용만 기록하게 했으므로, 앞뒤가 잘 연결되지 않는 대목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담, 하와에게 가인과 아벨을 직결시킨 것도 그 한 예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인은 아내를 취했다고 했습니다.(창4:17) 아담, 하와가 동침하여 처음으로 가인과 아벨이 태어났다고 볼 때, 가인의 아내감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쓰여 있습니다.(창5:22) 4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선지자도 성경에 몇 페이지씩 기록되어 있는데, 300년이나 동행한 에녹에 대해 왜 이처럼 몇 마디만 언급하고 말았을까요?
여기서도 우리는 에녹이 하나님의 역사에 중요한 인물이 못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에녹이 300년 동안이나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에 대해 구구한 억측이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 기사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당신의 종으로 하여금 이것을 기록하게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한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제사의 원리를 당신의 백성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았으나,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즉 제사에는 상달되는 것과 상달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상달되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상달되지 않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두 사람 다 하나님을 공경하여 드린 제사인데, 왜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요컨대 아벨은 평소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움직이고, 가인은 합당하지 않게 움직였기 때문입니다.(창4:7) 즉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에 합당한 제사는 받고, 합당치 못한 제사는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달되는 제사를 드린 자는 상달되지 못하는 제사를 드린 자의 핍박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 사이에 이런 분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경우가 그렇고, 사울과 다윗, 베드로와 바울의 경우도 그러하며, 오늘날 주의 종의 역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앞선 역사가 이어지는 역사를 핍박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