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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1.28본문
Part 05. 저 높은 곳을 향하여
Chapter 43. 마귀를 대적하라 (2)
2) 우리는 마귀와 같이 산다
우리 교계에는 마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면에, 하나님의 권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대뜸 나를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몰 테지만, 이것은 내 진의를 잘 모르는 소치입니다. 나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과 마귀에 대해 올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할 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마귀를 하나님의 적수로 간주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당신의 경륜을 펴 나가는 마당에서 여러 모로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실례의 하나가 주님의 십자가 처형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 땅에서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구태여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게 했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부득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될 수만 있다면 쉬운 방법을 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당신의 독생자를 속죄의 제물로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만큼 사정이 긴박했던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귀가 이 땅을 장악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눅4:6) 이 천하만국을 도로 빼앗기 위해 하나님도 비상수단을 취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 땅에 대해서는 그런 수단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하시고자 하는 일에 제동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우리는 성경 66권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마귀와의 투쟁사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십자가 위에서 몸소 산 제물이 되어 ‘양의 문’이 되시고,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이 땅에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은 올 수 없습니다.(요16:7) 왜? 대속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마귀는 이것으로 강적 하나를 없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자기에게 큰 화근이 되었습니다. 만일 마귀가 미리 이 하나님의 비밀을 알았더라면 절대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고전2:8) 여기서 우리는 마귀가 지닌 지혜의 한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목수 일을 하면서 한 가정의 살림을 꾸려갈 때와는 달리, 비둘기 같이 내려온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주님의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이를테면 사생활에서 공생활로 전환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 집안의 가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곧 구속의 주로서 전 인류를 위해 역사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마귀가 하나님의 아들을 시험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경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즉 예수님은 40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과 교류하는 가운데 앞으로 하실 일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상세한 지시를 받고, 하늘의 도를 전파하기 직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당했습니다. 이 40일 간에 걸친 하나님과의 교류는 구약 시대의 대 선지자 모세와 엘리야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 주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당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주님과 마귀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즉 주님은 마귀를 상대로 싸운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의 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땅에 나타나자, 마귀는 이 달갑지 않은 불청객을 그냥 두어서는 자기 쪽에서 당하게 되므로, 불가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양자 사이에는 그야말로 불꽃 튀기는 접전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 시험에서 마귀를 물리쳤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이 한 마디로 마귀는 일단 물러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후에 주님에게 얼씬도 못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는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할 때까지 이모저모로 사람들을 조정하여 자기의 뜻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마귀가 손수 자기 무덤을 판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즉 마귀가 보기 좋게 역습을 당한 것입니다.
구원이 어려운 것은 마귀가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중에도 경험한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좀 잘 믿어 보려고 하면 으레 마귀가 본인의 성격 및 육체적인 약점을 통하거나 측근을 앞세워 역사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주님을 부르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소용돌이치는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들이 어머니를 부른다고 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습니까? 목숨을 건지려면 어머니가 뛰어와서 배를 띄워 아들을 건져내던지, 아니면 밧줄이라도 던져서 아들을 붙잡게 하여 끌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물(마귀)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터놓은 것입니다. 그것은 “다 이루었노라.”는 한 마디 말씀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주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으레 연고 없는 시험이 닥치게 마련입니다. 마귀가 가만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면 이때 “주님, 어찌하여 저에게는 이런 당치도 않는 괴로움이 닥칩니까?” 하는 기도 소리는 입 밖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이것은 하나님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그렇게 당했거늘, 하물며 죄 덩어리인 인간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언제나 스스로 자문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예수를 어떻게 믿고 있는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