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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2.27본문
Part 01. 세기의 증언
Chapter 01. 천국의 이모저모 (1)
1) 셋째 하늘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마귀가 소탕되어 죽음과 이별이 없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늘나라는 어떻게 되어 있으며, 그 백성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여러분은 궁금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아, 사람들은 여러 모로 상상하게 됩니다. 나는 전에도 성경을 토대로 하여 내가 이상 중에 본 하늘나라에 대해 조금씩 터뜨린 적이 있지만, 오늘은 하늘나라의 모습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14년 전에 그가 셋째하늘에 이끌려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낙원으로 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12:2-4)
이 본문 말씀은 바울이 자기를 따르면서도 여전히 긴가민가하는 자들에게 자기가 하나님과 영적인 교류를 하는 어엿한 주의 종임을 강조하기 위해 발설한 것입니다. 셋째 하늘이란 요컨대 현재 하나님과 주님이 계시는 하늘나라를 가리키며, 셋째 하늘은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럼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요, 둘째 하늘은 우주 밖에 있는 마귀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세계와 이 세상을 마귀의 세계가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마귀가 “공중 권세를 차지했다.”(엡2:2)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그 어느 쪽과도 접해 있으나, 하나님과 인간은 마귀의 세계에 의해 차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보다 마귀가 인간에게 역사하기가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셋째 하늘에 갔다 온 경위는 실제로 그와 같은 체험을 하지 않고서는 실감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바울이 말한 셋째 하늘에 대해 어떤 신학자도 해명하지 못한 것으로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이상 중에도 하늘나라, 곧 3층천에 가려면 마귀의 세계를 거처야 하기 때문에, 주님 또는 천사의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우주는 광대무변하여 지상에서 제일 빠른 빛으로도 몇백 억 년이 걸리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영은 순식간에 우주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부터 약 이천 년 전에 갔다 온 셋째 하늘, 곧 하나님과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는 지금도 물론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고정된 불변의 세계가 아니라, 발전하고 성장할 수도 있는 세계입니다. 세세토록 영생하며 영화를 누리는 것이 달라지지 않을 뿐, 구속된 백성들의 수에 따라 그 규모가 더욱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무수한 계층 ― 즉 일정한 수로 된 통치자의 계층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피지배자의 계층으로 나눠져 있으며, 치리자의 계층은 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맨 위로부터 하나님, 주님, 이긴자, 네 생물, 24장로 그리고 14만 4천의 왕들로 구분되며, 여기까지는 그 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치리자들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수 있지만, 일반 백성들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결코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실개천이 졸졸 흐르는 그런 아담한 동산이 아니라, 광대무변하고 어마어마하게 호화찬란한 세계입니다.
바울은 심심해서 셋째 하늘에 유람을 간 것이 아니라, 중대한 용건이 있어서 갔습니다. 즉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의 종으로서 해야 할 사명에 대해 통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 사명은 곧 할례 폐지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시를 백성들에게 강력히 전해야 하며, 바울의 말을 전해들은 백성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됩니다. 바울이 “내가 전하는 말을 천사가 변경해도 저주를 면치 못한다.”(갈1:8)고 자신 있게 말한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랫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역사를 돌이켜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주의 초림을 비롯하여 지상에서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날 때에는 마귀가 유난히 극성을 떨게 마련입니다.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고 주께서 말씀하신 이 ‘하늘’은, 바로 사단이 거하는 둘째 하늘입니다.
마귀는 지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큰 역사를 훼방하기 위한 정예 부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70 문도를 사방에 전도하러 파송하시면서, 이리 떼속에 보내는 느낌이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눅10:3)
하나님의 역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이 강력한 마귀의 도전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 당시뿐만 아니라, 지상에 하나님의 큰 섭리가 이루어질 때에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 섭리 안에 동참한 사람들이라도 언제 마귀의 밥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짧은 역사에서도 여실히 입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요컨대 인간을 마귀의 손아귀에서 다시 뺏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자동적으로 뺏느냐 뺏기느냐의 투쟁이 전개되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계에서는 대체로 이 마귀의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뜻대로 척척 이루시려니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적을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적을 모르고 어찌 싸움에 이길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는 마귀와 싸우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의사에 따라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으며, 태어난 연후에 비로소 차츰 괴로움과 즐거움, 슬픔과 기쁨 등 여러 가지 느낌을 갖고, 싫든 좋든 세상에 적응해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천국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적어도 이상 중에나마 그 나라에 가보기 전에는 실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역대 주의 종들 중에는 이상 중에 그 나라에 가서 영계에 대해 실감을 느낀 분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세계를 직접 가 보았으며(계4:1) 바울은 3층천, 곧 천국에 가보았는데, 그때 하도 신기하여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고후12:4)
굼벵이는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혀 살면서 갑갑증도 모르고 자기세계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지만, 일단 탈피를 하여 매미가 되면 공중을 훨훨 날아다니면서 아름다운 노래로 삶을 즐기게 됩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주님의 피 권세로 홀연히 변하여 천국 백성이 되면 상상조차 못한 호화찬란한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세계를 땅에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마치 소금을 눈으로 보면서 설명을 듣고 그 짠맛을 이해하려는 것과 비슷합니다.
영의 세계에 대한 설명도 이와 비슷합니다.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실감 있게 받아들이려면 영의 귀가 열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6년 동안 이 역사에 동참하여 어느 정도 귀가 열린 것으로 알고, 내가 이상 중에 본 영의 세계의 일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이것은 사도 요한이 이상 중에 본 영의 세계에 대해 막연히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만 말하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사도 요한이 말하는 ‘새 하늘’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새 하늘은 그 형태부터가 우리가 보는 이 하늘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보는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이 반짝이고 있으며, 따라서 그림자가 나타나지만, 새 하늘에는 그런 천체가 없고, 그림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휩싸여 찬란한 광채 속에서 살아가는 곳이 곧 새 하늘입니다.
그럼 ‘새 땅’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새 땅은 흙으로 되어 있지 않고 매우 연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러므로 발에 저항을 느끼지 않으며, 마치 물 위로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주인이 공중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는 광경을 연상해 보시면 짐작이 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천국에는 14만 4천 개의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와 나라 사이는 초음속기(超音速機)로 몇백 년 가도 닿을 수 없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그 세계에서는 인간이 영체로 변모되어 있으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오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활양식이 이 세상과는 전혀 다릅니다. 물론 그 세계에서도 느낌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느낌은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매우 예리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뵐 수 없지만, 주의 아내가 되어 그 세계에 가면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14만 4천의 왕을 거느리고, 왕들은 백성을 다스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영의 세계를 바라보고 지상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며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우리가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막연한 곳이 아니라, 성령이 보장해 주는 분명한 실재(實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세계에 가서 어떤 대우를 받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떤 존재로 하나님께 등용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육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므로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세상과 가까워질수록 그 세계와는 멀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