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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4.25본문
Part 01. 세기의 증언
Chapter 02. 여호와의 도전자들 (1)
여러분이 익히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성사업에 마귀는 이모저모로 교묘히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 간계를 간파하고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마귀는 교계에도 상당히 침투하여, 믿는 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앞잡이가 되는 수가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큰 역사가 베풀어질 때에는 마귀가 더욱 극성을 떠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참고로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도전한 마귀의 몇 가지 행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발람
발람은 박수, 술객과 같은 잡신을 입은 거짓 선지자였으나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요긴하게 이용하시기도 했습니다.(민23:1-24:9) 그러니까 좋게 말하면 작은 선지자와 비슷한 역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길을 내주지 않는 아모리 백성들을 칼로 무찌르고 모압 평지에 진을 쳤을 때, 모압 왕 발락은 두려운 나머지 미디안 백성과 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여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사자에게 금은보화를 들려 거짓 예언자 발람에게 보냈습니다.
만일 모압과 미디안이 힘을 합쳐 거짓 선지자의 대표 격인 발람을 앞장세워 대적하는 날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곤경에 빠질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발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당신의 편을 들게 했습니다.(민22:12) 하나님은 이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마귀의 앞잡이도 이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기에서 건져내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결국 본성을 드러내어 모압과 미디안 부녀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과 음행하게 하고, 바알 신을 섬기게 하여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했습니다.(민31:16) 하나님께서 이용할 때에만 교류하고, 일단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은혜를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위기를 넘기고 발람이 쓸모없게 되자 던져버린 것입니다. 발람은 원래가 마귀의 앞잡이로 하나님을 대적해 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들을 가까이하여 그들의 우상 앞에 절을 하게 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목매달라고 명령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수들에게 각자 휘하에 거느린 자들 중에서 바알을 섬기는 무리를 색출하여 즉시 목매어 죽이도록 지시했습니다.(민25:4-5) 그리하여 광야에는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떼죽음의 참화가 벌어졌습니다.
그들 중에는 모세와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해온 동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이라, 눈물을 머금고 피의 숙청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저들이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내린 명령을 어긴 죄과였습니다. 이런 난리를 거듭한 결과, 이스라엘의 60만 장정 중에서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오직 두 명 밖에 없었습니다. 출발은 어마어마했으나 결과가 너무나 보잘것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이론이 필요 없습니다.
모세의 경우처럼 결실이 없을 때 아무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버가모 교회의 식구들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고 또한 행음하게 한 발람의 가르침을 따른 자들이 있다.”(계2:14)고 경고했는데, 이런 상서롭지 못한 폐단은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 고라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장애물의 하나는 당을 짓는 일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그들의 명예욕에 호소하여 등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그럴 듯한 구실과 이유를 내세워 자기의 비행을 감싸온 것이 공통된 현상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事例)를 우리는 모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고라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라는 모세와 사촌간이며, 레위 지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는 본래 오만하고 명예욕이 강한 자였으므로, 마귀가 그 성격적인 결함을 틈타 모세와 아론에게 도전하는 앞잡이로 내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은 이것을 자기 의사인 줄 알고 날뛰었습니다. 자기가 마귀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고라는 자기의 명예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아론을 밀어내고, 자기가 대신 영도자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모세와 아론이 하는 일을 사사건건 비판하고 불평을 일삼는 한편, 다른 사람을 선동하여 동지를 규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두머리 노릇을 하려면 지지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구약 시대에 제일 큰 하나님의 종이며 율법의 선포자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정성에 있어서는 다윗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짓기는 했으나 눈물이 병에 가득 찰 정도로 통회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권능은 대단했으나 영적인 깊이에 있어서는 다윗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또한 지혜나 인내심도 다윗만 못했으며, 통솔력이 부족하고, 때로는 하나님께 불평도 하였습니다.(민11:11-12)
이처럼 인간적인 약점을 지닌 모세였으므로, 고라와 같은 야심가의 도전을 받을 만도 했습니다. 고라는 차츰 자기 세력을 확대하여 약 250명 정도의 지지 세력을 확보하게 되자, 모세와 아론에게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에게 대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큰 죄임을 고라는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고라는 어느 날 모세와 아론이 곤경에 처한 틈을 타서 이렇게 공박했습니다.
“당신네들은 도대체 자기 분수를 모르오. 하나님은 당신네 둘만 위하는 줄 아오? 우리네 백성들과도 동행하여 은혜를 베풀고 있소. 그러므로 거룩하기로 말하면 우리도 당신네 못지않소. 그런데 어째서 당신네들은 스스로 우리 백성들 위에 서려고 하오?”(민16:3)
이것은 모세에게 ‘당신만 하나님의 종이냐? 나도 당신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이 말을 듣고, 고라와 그 일당에게, 내일 아침 여호와 앞에서 향로에 불을 담고 향을 피우면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당신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실 터이니, 이것으로 누가 하나님의 참된 종인가를 분간하자고 제의하고 나서, 고라와 그 일당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원망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아론의 지위를 탐내느냐?”
모세가 말을 마치자 고라의 추종자가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인도해 들이지도 못하고, 포도원 하나도 마련해 주지 못하면서 무슨 주제에 우리의 왕(지도자)이 되려고 하는 거요?”(민16:13)
모세는 화가 나서 여호와께 그대로 보고했습니다.
“주님이시여, 보시다시피 고라와 그 일당들은 제 말을 듣지 않을 뿐 더러 저에게 대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들에게서 나귀 새끼 한 마리 취한 적이 없고, 저들을 한 사람도 해친 일이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앞으로 저들과는 상종하지 마옵소서!”(민16:15)
이튿날 고라와 그 일당이 불이 담긴 향로를 들고 나와 회막문(會幕門) 앞에서 향을 피우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고 하자, 여호와의 영광이 회중에게 나타나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였습니다.
“내가 이 무리들을 순식간에 멸하려고 하니, 너희는 얼른 몸을 피하여라!”
그러자 모세와 아론은 그 자리에 엎드려 여호와께 간구했습니다.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시여, 어찌하여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온 회중을 멸하려 하시나이까? 원하옵건대 무고한 자들의 목숨은 해치지 말아 주옵소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모세에게 일렀습니다.
“그럼 주동자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이외의 무리들은 장막에서 몸을 피하게 하여라!”
모세는 회중을 해산시키고 나서 고라와 그 측근들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세워 일을 맡겨 주셨기 때문에 내가 나서는 것이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처참하게 죽을 터이니, 이것으로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한 줄을 알게 될 것이다.”
모세가 말을 마치자, 땅이 갈라져 고라와 그 가까운 일당을 모조리 삼켜 버렸습니다.(민16:31) 그 후부터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자손만이 대대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주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내노라 하고 잘 믿는 체 해도 주님이 알아주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 주님께 잘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를 죽이고 주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야 합니다. 고라처럼 내가 빳빳이 살아 있는 것은 제일 금물입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합니다.
3) 바알
구약 시대에 애굽에 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나라의 풍습에 물들어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그곳 이방인을 쓸어버리고, 당신이 영광을 받을 수 있는 복된 나라를 이룩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큰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가나안 원주민들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열심히 섬기는 다른 신이 바로 ‘바알’이었습니다.
바알이란 ‘주’ 또는 ‘소유자’라는 뜻으로 자비와 파괴의 신이며, 그 노함을 풀기 위해서는 어린이를 제물로 불살라 바치기도 했습니다.(렘19:5)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 바알 신을 섬기는 백성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조리 학살하라고 지시했으나, 여호수아가 인정사정에 이끌려 그들의 일부를 살려 주었기 때문에, 나중에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히려 올무가 되고 화근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들 살아남은 이방인들과 어울려 사는 동안에 차츰 그들의 습성을 따르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그들의 신(바알)까지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의 제사법은 모세의 율법에서 가르치는 제사법과 유사한 데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 신의 제단에 제물을 차려놓고 예사로 그 앞에 절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에 와서는 왕 자신이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바알 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왕상16:31) 하나님은 이것을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하늘에서 내세운 선지자가 엘리야였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 앞에 나타나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아합 왕이 우상을 섬긴 죄과로 말미암아 나라에 심한 가뭄이 들 것을 예언했으며, 바알 선지자들의 무능을 폭로하여 그들을 전멸시켰습니다.(왕상18:40) 한편 아합 왕은 하나님이 진노를 받아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왕상22:40)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가서,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그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基業)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좇았느니라.”(렘2:7-8)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그들의 신(하나님)을 신 아닌 것과 바꾼” 당신의 백성들에게 경고한 말씀입니다. 바알 신을 제일 열심히 섬긴 것이 예레미야 시대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웃지 못할 진풍경은, 저들은 바알 신을 섬기면서도 입술로는 하나님을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저들은 그것이 큰 죄가 되는 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 딴에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한탄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을 섬기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 하느냐?”(렘7:9-10)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성전에 바알 신을 모셔놓고 그 앞에 분향을 하면서도 구원을 얻는 줄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최악의 상태에 이른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잘못 섬기면서 그런 줄 모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럴 폐단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자기 영광을 취하는 자의 경우가 그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드리는 제사(예배) 가 하늘에 상달될 리가 만무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않으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렘6:20) 이렇게 되면 하나님과 그 백성들 사이에는 아무 상관도 없게됩니다. 이 경우에 제일 난처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은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외면하시니, 선지자는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긍휼을 베풀어 줍소서!” 하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렘7:16)고 지시하였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그 종의 기도를 중지시켰겠습니까! 이쯤 되면 가장 불행한 입장에 놓이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세대의 백성들을 상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렘7:29)
그러나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 교류하는 선지자 예레미야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목메어 외쳤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는데, 웬 놈이 무슨 잠꼬대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렘7:25-26)는 말씀그대로였습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보낸 종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하나님은 당신을 청종치 않는 것으로 간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전하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한 ‘악’은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치 않고 그 영광을 가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선’이란 그 반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알은 가나안의 주신(主神)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최대의 악의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이마에 바알의 인침을 받은 자는 심판을 거치지 않고 지옥 불에 던져지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감안할 때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신의 지배를 받게 마련입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신이 아니면 마귀의 신에게 매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빛의 자식이 아니면 어둠의 자식이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무신론자이므로 하나님도 섬기지 않고 미신도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분명히 ‘어둠의 자식’입니다. 이 세상은 마귀의 손아귀에 놓여 있으며,(눅4:5-7)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하면 자동적으로 마귀에게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인간은 신을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 마귀의 신을 물리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한 자는 ‘한 신’을 이루며, 이때 마귀는 범접하지 못하고 쫓기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인간의 혼에 담길 때 이런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인간을 불러 긍휼을 베풉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신이 인간에게 오면 그는 비로소 귀한 존재가 됩니다. 질그릇에 보배가 담긴 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보배가 사라지면 그 질그릇은 아무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마귀가 대신 도사리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事例)의 하나를 우리는 솔로몬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왕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이방 왕비들의 권면을 받아들여 잡신을 섬기고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두 번이나 솔로몬에게 나타나 “다른 신을 좇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솔로몬은 듣지 않았습니다.(왕상11:10) 그가 죽은 다음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두 동강이 나는 비극을 초래한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