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Part 01 - Chapter 0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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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0.26
[5권] Part 01 - Chapter 07 (2)

본문

Part 01. 말씀의 향연   

Chapter 07. 천당과 지옥 (2)


2) 사망 권세를 무찌르는 길

 

우리가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들과 부딪치게 됩니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공통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 죽음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죽음은 만인의 귀착점이기 때문입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가장 믿음직스럽게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며, 죽음이란 또 다른 삶에 이르는 하나의 관문임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는 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에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13:44) 이 말씀은 초보적인 가르침이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천국은 남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다고 했습니다. 즉 천국은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보물과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이건 적어도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긴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는정도에 대해 한 번 돌이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천국이 세상에 둘도 없는 보화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느냐, 아니면 그런가 보다 하고 막연히 느끼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의 신앙을 측정하는 하나의 척도가 됩니다. 전자와 후자는 신앙 자세에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 보화를 발견한 후에 숨겨 두었다고 했습니다. 이건 당연합니다. 자기만 알고 입을 굳게 다물어야지, 그렇지 않고 남에게 섣불리 발설하여 그 말이 밭 주인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그 밭을 팔지 않으려고 할지도 모르며, 팔더라도 아주 비싼 값을 달라고 할 터이니 말입니다. 이것은 물론 하나의 비유이지만, 여기에 은혜 받는 비결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남에게 자랑하면 다음부터 은혜가 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랑이란 내가 이렇다 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으로, 교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역대 선지자들이 은혜에서 떨어진 것은 이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를 다윗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차츰 교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나랏일을 처리해 나가기 위해 인구 조사를 했습니다.(삼하24:10)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이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께서 전에 나에게 이상 중에 당부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네가 은혜에 대하여 때가 되기까지 입을 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계속 받고, 또 그 은혜를 간수하려면 남에게 은혜 자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물론 전도하거나 믿음의 형제를 격려하기 위해 간증을 하는 것까지 금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간증담은 은혜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 전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그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보화가 묻혀 있는 것을 알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내막을 모르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 밭과 자기 집 할 것 없이 전 재산을 몽땅 털어 그 밭을 장만했으니, 그들의 비웃음을 살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그는 그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 전 재산을 투자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그가 이렇게 투자를 해서 그 밭을 손에 넣지 않았더라면 그 보물을 발견해도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투자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천국에 보내기 위해 옥체까지 찢겼으니, 우리도 주님께 보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즉 주님은 당신을 섬기고 따르는 우리에게 일종의 반대급부(反對給付)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행동으로 보여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에 매이거나 자기 육신을 사리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찾아온 어떤 관원에게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예수에게 가서 자기는 율법을 다 지켰으니,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18:22)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물이 아까워 예수를 섬기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18:25)는 말씀은 이 관원을 두고 하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천국에 가려면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교회에 바쳐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재산을 몽땅 바치고 이튿날부터 거리에 나가서 동냥하며 살아갈 겁니까?

 

과거에 더러 그런 폐단이 있어서 물의를 일으켰는데, 이것을 오히려 주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은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시지 않습니다. 즉 주님은 영의 것보다 육의 것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6:24)는 말씀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주님 제일주의로 사는 것이 중요하며, 재물을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뚜막에 있는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속담처럼,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의 역사에 도움을 주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주님은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에 나오는 자기 소유는 하나의 상징으로, 거기에는 물질 뿐만 아니라 시간과 사상, 감정을 통틀어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선의(善意)의 자기희생을 의미합니다.

 

이 자기 희생이 없이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금물입니다. 그것은 주님 제일주의가 아니라, 자기 제일주의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나에게 돈을 벌게 해 주시오.” “취직이 되게 해 주시오.” 또는 병이 낫게 해 주시오.”하고 저마다 자기 이득을 앞세우고 있는데, 이것은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도보다 주님께 희생하겠으니 힘을 주십시오!”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즉 자기 십자가를 벗으려고 하지 말고, 감당하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자기를 위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