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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0.27본문
Part 02. 빛을 찾아서
Chapter 13. 언약과 섭리 (3)
3) 이사야와 아모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남왕국 유다의 대 선지자로, 지금부터 약 2,700년 전에 활동한 분입니다. 그는 당대에 될 예언도 했으나, 수백 년 후에 있을 주님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습니다. 즉 주님의 오심과,(40:3-5) 주님의 동정녀 탄생,(7:14) 주님의 수난(53:3 이하) 등을 예언하여 인류에게 큰 소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다운 예언은 이사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후에 나타난 많은 선지자들도 주님에 관한 예언을 조금씩 곁들였지만, 모두가 단편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무릇 예언에는 곧 이루어질 것도 있고, 주님에 대한 예언처럼 수 백 년 후에 비로소 성취될 것도 있습니다. 아니 때로는 몇 천 년 후에 이루어질 일, 예컨대 신천지 창조(사65:17)와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예언 중에서 먼 장래에 될 것은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 법입니다.
불원에 이루어질 일, 가령 이사야가 앗수르의 유다 침입을 예언한 일과 같은 것은(사8:7-8) 이사야 생존 시에 그대로 이루어졌지만, 듣는 사람들은 좀처럼 곧이들리지 않는 것이 예언이 지닌 생리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는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기가 일쑤이며, 심한 경우에는 미치광이라는 욕도 먹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선지자가 마음대로 적당히 꾸며댄 말이며, 결코 하나님의 예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신18:2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예언을 반드시 이루시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사48:11)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예언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거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의 견해요, 인본주의적 발상입니다. 인간은 이 정도로 교만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사55: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흔히 자기의 작은 자(尺)로 하나님의 일을 재다가 스스로 시험에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인간을 지으신 의도부터가 당신께서 인간을 통해 영광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사43:7)
여기서 주객이 완전히 구분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계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혼동하여 생각하는 데서 오는 폐단은 예상 외로 큰 것입니다.
아모스는 통일된 이스라엘 왕국이 남, 북조로 갈라진 후 북왕국이 전성시대를 이룬 여로보암 2세 때의 선지자입니다. 당시에 북왕국은 이웃 나라들과 무역을 하여 매우 부강해졌으며, 수도 사마리아는 크게 흥청대었습니다. 그러나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씀 그대로, 북왕국은 이 돈 때문에 날로 부패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게 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선지자 아모스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악을 보복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이름을 더럽히며, …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시는”(암2:6-8) 등등의 죄악을 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실 만도 합니다.
아모스는 이런 달갑지 않은 소식부터 전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사명 자체는 반가울 리가 만무합니다. 아니 선지자도 인간이므로 언짢은 소식을 전하거나 어려운 사명을 받게 되면 엄두가 나지 않아, 될 수만 있으면 나서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 성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이 성을 치신다는 경고를 하라는 명령을 받고 도망쳐 버렸으며, 모세도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자기는 언변이 없어 못하겠다고 일단 사양했던 것입니다.
요나가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그런 방정맞은(?) 소리를 한다는 것은 매 맞아 죽기에 알맞은 일이며, 모세가 이방인의 나라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거는 일대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설사 하나님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누가 선뜻 나서서 “네!” 하고 고분고분 순종할 용기가 나겠습니까? 그들이 머뭇거리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만일 거역하면 신상에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암3:1)고 서두를 꺼내고, ‘하나님께서 너희에 대해 여차저차 하시려고 한다.’는 내용의 메시지(예언)를 전하였습니다.
한번은 여호와께서 이상 중에 아모스에게, 메뚜기가 이스라엘의 들에 새로 돋아나는 풀을 모조리 먹어 치우는 광경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쓸어버리겠다는 예고입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그렇지 않아도 연약하기 짝이 없는데, 다 쓸어버리면 어찌하오리까? 원하옵건대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암7:2) 하나님께서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잠자코 있겠다.”
그런데 얼마 후에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로 온통 살라버리는 광경을 아모스에게 보여주었습니다.(암7:4) 그들이 죄를 뉘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또 먼저와 같은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용서해 주었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간곡히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모스의 말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상 중에 아모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손에 다림줄을 들고 계셨습니다.(암7:7) 세심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성읍을 아주 멸하시기에 앞서 백성들의 동태를 측량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용서치 않겠다고 말씀하였습니다.(암7:8) 이 무렵에 아모스에게는 핍박이 닥쳐오기 시작했습니다.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라는 자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아모스라는 자가 순진한 백성들을 꼬여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니 큰 걱정이라고 모함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모스에게는 벧엘을 떠나 다른 데 가서 예언하라고 협박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역사에는 으레 이런 쓴 뿌리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새 역사가 시작된 지 어느덧 4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이 상상도 못할 새로운 말씀이 얼마나 많이 터져 나왔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이 역사를 손가락질하며 훼방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어쩌자고 그렇게 끈덕지게 가로막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아직 긴가민가한 분이 있습니까? 나를 못 믿겠거든, 내 입을 통해 나간 말씀을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