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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0.27본문
Part 02. 빛을 찾아서
Chapter 13. 언약과 섭리 (4)
4) 주님의 언약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반석 위에 세우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제자들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3년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보고 듣고 배웠지만, 주님 생전에는 이들의 움직임이 어디까지나 육적이고 타산적이며 또 자기중심적인 세속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주님을 안다고 자부했지만, 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 말씀에 치중해서 믿음을 키워 나가는 사람들이고, 하나는 은혜의 체험에 치중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입니다. 전자는 지적이고, 후자는 정적입니다.
그러므로 전자는 이론상으로는 납득이 가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 반면에, 후자는 이론은 어쨌든 뚜렷한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이론과 체험을 겸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양자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이론보다도 체험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영의 세계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불과 같은 성령을 받은 후부터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주님을 증거하지 않았던들 기독교는 햇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비로운 신앙 체험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뭔고 하니, 마귀도 이런 흉내를 내어 사람을 미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사이비 종교를 비롯한 온갖 거짓 것들이 판을 치는 발판이 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런 가짜와 진짜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용의주도하신 주님은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라.”(마7:20)고 우리에게 미리 당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진리와 비진리를 가르는 척도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마음이 아름다워지게 마련이고, 악령을 받으면 마음이 고약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열매를 보면 어떤 나무에서 진액을 받아먹고 자랐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자라야 들어간다.”(마7:21) 믿음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 학문도 깊이 들어갈수록 어렵지만,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주의 피 값으로 거저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탈입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요3:3)고 말씀했습니다. 이 거듭난다는 것, 즉 중생이란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성령을 받아, 죽을 생명이 영원한 생명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고 생각과 행동이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입술로만 주를 부르는 사람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쟁이가 더 고약하다는 욕을 먹는 것은 예수를 제대로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노라고 하면서 죄는 죄대로 지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란 자기의 죄 많은 목숨을 주의 정결한 목숨과 바꾸는 큰 사업입니다. 믿음은 위안의 수단이 아닙니다. 위안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선하게 살려는 수도의 방편이 아닙니다.
학교 선생도 선하게 살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아 새 생명으로 탈바꿈을 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힘이 되는 것이 주의 보혈이지만, 인간의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님은 예언 그대로 이 땅에서 피를 흘리기 위해 육을 입고 오셨으며, 생전에 몸소 예언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예언들은 이미 거의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당신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것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마무리 짓는 하늘나라를 이룩하는 과정에 대해 주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신 예언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예언을 기록한 계시록은 난해하여 신학자들도 감히 제대로 해석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간혹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풀어서 적지 않은 물의를 빚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주님이 재림하는 연대와 날짜를 푼답시고 아무 해 무슨 달 어느 날에 주님이 오신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예언을 하여 사람들을 현혹케 하다가, 그 날짜가 되면 주님이 오시기로 되어 있었지만 여차저차해서 연기되었다고 핑계를 대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주께서 오시려면 일정한 여건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마귀를 발등상 시키기 위하여 새벽이슬 같은 주의 군병이 마련되는 것으로,(시110:1, 3) 땅에서 이것이 먼저 마련되어야 합니다.
주님 생시에 제자들이 주님에게 재림과 세상 끝에 대하여 물었을 때, 주님은 다니엘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때인 줄 알라.”(마24:15)고만 대답하였습니다. 왜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을까요? 당시 환경과 부합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주님의 초림도 시대적인 배경과 맞아야 했습니다.
가령 이사야는 주님이 “만인의 죄악으로 인하여 찔림을 받는다.”(사53:5)고 예언했으므로, 주님은 죄인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극형에 처하는 사형제도가 실시되고 있는 시대에 태어나야 하며, 스가랴는 주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다.”(슥9:9)고 예언하였으므로 나귀를 타고 다니는 환경에서 태어나야 예언과 부합되는 것입니다.
주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큰 종, 즉 예언적인 인물은 으레 시대적인 배경을 업고 나타납니다. 엘리야의 분신으로 온 주의 길 예비자 세례 요한은 메시아가 이 땅에 나타나기 얼마 전에 태어나야 예언과 부합됩니다. 만일 메시아가 나타나는 그 시대와 장소에 태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 길 예비자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자기가 엘리야의 분신으로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요한에게 “당신이 엘리야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아니오.”하고 부인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요1:21)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만일 주님이 모른다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격을 의심받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례 요한이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라는 것을 증거했습니다.(마17:12) 요컨대 세례 요한이 진짜라야 주님도 진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전에, 마지막 종은 다니엘서에 예언된 4대 강국이 형성될 때에 나타난다고 말한 것도 그 시대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고 한소리입니다. 이와 같이 시대적인 배경이 현실과 부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 모르면, 주님 당시의 일을 오늘에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오늘에 해당되는 일을 구약 시대에 적응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선지자들이 당신에 대해 예언한 말씀을 많이 인용하여 당신이 그 주인공임을 언명했습니다. 성경은 당사자가 아니면 봐도 모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주님에 대해 부분적으로 예언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어느 한둘만 가지고서는 주님의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그 주인공이신 주님이 오셔서 그 하나하나의 예언을 모아 짝을 맞출 때, 비로소 그 전모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기록된 예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주인공이 나타나서 뚜껑을 열어야 청사진을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