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Part 04 - Chapter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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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1.28
[5권] Part 04 - Chapter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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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4. 예루살렘의 별 

Chapter 31. 하나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



하나님은 거룩한 존재로 우리에게 군림하여 당신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중에서도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되는 명령이 있는데,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이 명령을 어길 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버림을 받아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인간이 우상을 숭배했을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 경우에는 정상을 참작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차 없이 처단을 받게 됩니다. 우상, 곧 하나님의 적을 숭배하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죄는 제사를 드려 사함을 받을 수 있으나, 우상을 숭배했을 때에는 속죄의 길이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심지어 살인이나 강도질을 했을 경우에도 정상이 참작되어 구제되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람을 죽였을 때 제사장에게 가서 죄상을 고해바치면 제사장은 속죄의 제물을 지정해 줍니다. 이때 제사장이 살찐 송아지를 제물로 드려야 한다고 말하면 그대로 해야지, “비둘기는 안 될까요?” 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 경우에 송아지의 피가 대속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살인한 사람 대신 송아지를 희생시켜 죄인에 대한 노여움을 풀게 됩니다. 주께서 우리 피를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제물이 된 것도 이치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저주를 주님이 대신 받음으로써 우리는 죄에서 놓여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속죄란 생명을 되찾는 작업으로, 이때에는 반드시 피가 있어야 합니다. 생명은 곧 피기 때문입니다.(17:11) 그런데 이 피로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가 신, 구약 시대를 통하여 각각 하나씩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약 시대에 우상을 숭배한 죄와 신약 시대에 성령을 훼방한 죄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역사를 파괴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을 상대로 저지른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있으나, 하나님을 상대로 저지른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면 국가를 파괴하려는 간첩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상 뒤에는 언제나 마귀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마귀 이야기를 하나 할까요? 내가 10여 년 전에 전도사로서 단을 지킬 때의 일입니다. 아침 밥상을 들고 내 방에 들어온 교회의 식모 할머니가 갑자기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면서 쩔쩔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곧 할머니를 그 자리에 조용히 눕혀 놓고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고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 할머니가 갑자기 엉엉 울고 나서 제 정신을 차렸습니다.

 

내가 영문을 물었더니, 자기가 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새 혹시 꿈에라도 이상한 일이 있지 않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제야, 할머니는 어제 밤 꿈에 빨간 옷을 입은 웬 여자가 나타나 자기 귀에 대고 뭐라고 종알거리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귀는 사람을 상대로 곧잘 장난을 칩니다. 할머니가 내 방에 들어와 벌벌 떤 것은 그 안에 들어간 마귀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신을 보고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에게는 더욱 무자비하게 대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련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이들 이방인에게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우상을 섬기건 살인을 하건 그대로 팽개쳐 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이외의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를 따라 백성을 동원하여 이방인을 칠 때에는 으레 그 성읍의 거민을 칼로 죽이고, 그 중에 거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들을 칼로 멸하고, 여기서 빼앗은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한 물건을 전부 불살라 버리는 것이 반드시 지켜야 할 법도였습니다.(13:15-16) 이것은 모세가 미디안을 칠 때에도 그랬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원주민에게 쳐들어갈 때에도 물론 그랬습니다.

 

이런 성경 구절을 읽으면 아마 누구나 몸서리치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몰인정하고 무자비하실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만 계시고 마귀라는 대적이 없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세 당시부터 이 마귀의 도전을 받아 왔기 때문에, 작전상 이런 초강경책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정사정을 보았다가는 나중에 더욱 큰 화근을 남기게 됩니다.

 

그 실례를 우리는 현재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게릴라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것은 여호수아가 인정상 가나안의 원주민을 일부 살려 주어, 이스라엘 백성이 저들의 풍속에 따라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2:21 참조)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의 의중(意中)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미디안을 칠 때 이스라엘 특공대 두령들에게 하나님의 지시 내용을 전하고, 그대로 실천에 옮길 것을 신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인간의 탈을 쓰고 죄 없는 부녀자나 철부지 아이들까지 모조리 죽여 버린다는 것은 도적이 아닌 이상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 두령은 살려달라고 애걸하여 차마 창검을 댈 수 없는 몇 명의 아녀자들을 그대로 사로잡아 모세에게 끌고 왔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런 인정에 말려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이들 두령을 호되게 책망하고 즉석에서 포로들을 모조리 찔러 죽이도록 명령했습니다.(31:13-19)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적(現實主義的)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당신의 명령도 현실의 여건에 따라 거기 알맞게 변경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에 물자가 귀해져 큰 불편을 느끼게 되자 이방 땅을 점령한 다음에 이방인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 죽이고, 가축이나 재물은 빼앗아 오게 했습니다.(31:32-36)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거친 광야 생활에 시달려, 체질이 연약한 부녀자들이 많이 죽어 자손을 번식하는 데 지장을 가져오자, 점령한 이방 땅의 처녀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노총각들의 아내로 삼게 했던 것입니다.(31:17)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을 위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 하나님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면에서도 하나님 중심의 절대성(絶對性)을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