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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5.23본문
Part 04. 좁은 문을 두드려라
Chapter 29. 주의 종은 고독하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제일 먼저 배격해야 하는 것은 안이한 신앙관, 다시 말해서 누구나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신앙 자체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데서 오는 폐단으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불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하나란 하나님이요, 또 하나는 마귀입니다.
즉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이나 놀라운 은총이 어떻다는 것은 잘 알지만, 하나님의 적수로서의 마귀의 능력과 농간을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착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이런 마귀의 정체는 성경을 상고하면 잘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한복음 3장 16절에 있는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곡해하여 터무니없는 구원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됩니다. 주께서는 이런 폐단을 미리 막기 위해 일찌감치 ‘좁은 길’을 가라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마7:13)
‘믿는다’는 성경 말씀은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을 계산에 넣고 생각해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예수를 믿던 지하(地下)의 신도들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입니다.
또 주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제물이 되었으니, 그 피로 죄가 다 씻겨 없어졌으며, 따라서 구원은 내 것이라고 마음을 턱 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구원의 길을 터놓기 위해서이며, 결코 앉아서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이를 한사코 가로막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도 생전에 “내 살을 먹지 않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영생이 없다.”(요6:53)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엄격한 구원관부터 가져야겠습니다. 이것이 크신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부름을 받아 십자가의 군병이 되려는 여러분에게 내가 먼저 당부하고 싶은 말입니다. 이 하늘의 군대는 평범한 세대에는 몇 사람 배출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고 단번에 많은 군대를 무장시켜서 공중권세를 잡은 악령과 일대 접전을 벌일 수 있는 십자군을 길러 내는 것이 우리의 역사인 것입니다. 나는 결코 일종의 편파적인 선민의식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드러난 사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의 한 심부름꾼으로서 주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여러분에게 전했으며, 여러분은 그 말씀이 달고 오묘하여 욕을 먹으면서도 나를 따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역대의 하나님의 종 가운데 나처럼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와 그 움직임에 대하여 상세히 가르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활자화(活字化)된 세 권의 설교집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이 단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이보다 더 자상히 가르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은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육에 매인 몸이라, 내가 한껏 영의 세계에 대하여 말씀드려도 얼른 실감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으며, 바울 때에도 그랬습니다. 다행히 여러분은 거의가 일찍이 큰 성령의 은사를 받은 연고로 ‘듣는 귀’가 있어 어느 정도 내 말이 수긍이 가니까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하고 싶은 말을 별로 하지 못하고 주님의 경우처럼 비유로 귀띔이나 하다가 외톨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기야 주의 종 치고 외톨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내가 가는 길이 남달리 고독한 것은 맡은 바 사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만 음으로 양으로 주님과 사귀는 것을 낙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또 그것으로 만족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로 감각에 의지하여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은 실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활동 무대는 한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때때로 신기한 이적을 베풀어 당신의 살아 계신 증거를 우리에게 감각적으로 알게 한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영의 세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흔히 무슨 동화와 같은 것을 연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얼른 마음에 새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 것 제쳐놓고 주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이것은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결코 일조일석에 되지 않습니다.
은혜줄을 잡았다가는 놓치고, 놓쳤다가는 다시 잡고 하는 긴 연단 속에서 비로소 믿음이 반석 위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일종의 전쟁으로, 오늘날 영적인 세 단계(불, 생수, 이슬)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은혜가 끊이지 않고, 언제나 줄곧 연결되기까지는 실로 저 백마고지(白馬高地)를 뺐고 빼앗기는 혈전(血戰)을 방불케 하는 무수한 고난을 거듭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은혜가 끊이지 않기까지 사생결단을 내려는 심정으로, 때로는 얼굴을 땅바닥에 비벼 대면서 주님께 울부짖고, 때로는 소나무 가지를 휘어잡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은혜는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노력과 은혜가 정비례한다는 말은 물론 아닙니다. 나는 다만 믿음을 제대로 가꾸어 나가려면 응분의 노력과 매달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더구나 이곳 에덴성회에는 마귀가 유난히 극성을 떨고 있으므로 누가 언제 사로잡힐지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일찍이 많은 주의 종들은 각자 맡은 사명이 어느 특정한 분야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집을 짓는 것을 예로 든다면, 마루를 놓는 종, 지붕을 이는 종이 따로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집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집의 어느 한 분야가 아니라, 전체의 구조를 다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만 하더라도 이 단상을 통하여 창세기에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다 쪼개져 나가는 것입니다. 인간 이영수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현재 지성소에 가 있는 순교자들도 우리의 이 역사가 열매를 잘 맺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히11:13) 여기 ‘이 사람들’이란 역대의 수많은 순교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땅에서 외국인이나 나그네와 같은 푸대접을 받으며 살다가 주를 위해 목 베임을 당하여 영광스러운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하게 되었으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아 약속된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우리의 이 역사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멀리서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들을 위해 예비해 놓은 성(히11:16)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할 때 비로소 약속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성’을 아름답게 짓는 것이 바로 이 역사입니다.
지금은 한 사람씩 일꾼을 불러들이는 때이며, 불원에 알곡을 거둬 성을 완성하는 때가 오게 됩니다. 이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 대열에서 낙오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여러분은 알곡으로 서서히 여물어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