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DATE. 2023.05.23본문
Part 04. 좁은 문을 두드려라
Chapter 32. 은혜의 다림줄을 잡아라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殿)의 지대(地臺)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슥4:9-10)
스룹바벨은 포로의 몸으로 바벨론에 매여 있다가, 해방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에 유대 총독으로 있던 사람이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전을 짓기 위해 그를 들어 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큰 은혜를 내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성전을 짓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게 했습니다.
본문 말씀에 나오는 다림줄은 하나님께서 직통으로 내리는 은혜의 줄기를 가리킵니다. 이 줄기는 어둠 속의 한 가닥 햇빛과 같이 마귀가 감히 건드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구약 시대의 많은 선지자들은 저마다 맡은 사명은 다르지만, 모두가 은혜의 다림줄에 의해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은 그 은혜의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 울타리 안에 부름을 받지 못한 백성들은 자연히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라도 실제로는 이처럼 언제나 똑같이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요? 하긴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떡합니까?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여기에는 물론 하나님의 뜻이 따로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건설이 그것입니다.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세우고, 주님도 보내고, 감람나무도 세우시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께서 마귀의 세력을 꺾는 전법(戰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일종의 전쟁 기록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전쟁은 일찍이 창세 당시부터 시작된 것으로,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내가 하나님의 권능을 과소평가하는 것으로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그 까짓 마귀를 처치하지 못하여 그렇게 오래 질질 끈단 말인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는 이에 대하여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도 마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기독교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처음으로 달나라에 발을 들여놓은 암스트롱은 하늘에서 공처럼 떠 있는 지구를 보고 인생의 보잘것없음을 새삼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달이나 지구는 광대무변한 천체에 비하면 실로 좁쌀 만한 존재도 될까 말까 합니다. 그래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천체는 과학의 힘을 빌려 점점 그 정체가 드러나고 있지만, 영의 세계는 그렇지 못합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불수레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아니, 과연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느냐 하고 다그쳐 물어도 자신 있게 대답할 신학자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머리로 연구하고 배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나 분명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아는 사람만 알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 주관적인 지식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이 주관적인 지식에 의해 자라고 깊어집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마귀가 에덴동산에 침투해 들어간 후로 세상이 마귀의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되찾기 위해 하나님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하고 계십니다. 내가 계시록 강해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하나님과 마귀는 7:6의 비등한 세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대하게 보지만, 마귀를 섬기는 사람들은 마귀를 위대하게 봅니다.
그럼 마귀는 물론 하나님도 섬기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런 사람들은 중립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중립 지대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의 편에 서지 않으면 마귀의 편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자신이 마귀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지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의 인간은 맨 처음에 지은 당시와는 판이합니다. 즉 인간은 육을 입은 죄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이 기도가 어떻게 상달될까요? 우리는 한국말로 기도합니다. 하나님도 그 말을 알아들으려면 한국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이 기도 소리가 하나님이 계시는 3층천까지 도달하려면 그 속도가 햇빛처럼 빨라도 몇 억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껏 해야 7, 80년 정도밖에 살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드린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려면 살아 있을 동안은 물론 손자 증손자 대에 와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기도 소리는 하나님이 즉시 알아들을 수 있는 영의 소리로 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가 제사 드리는 이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즉 하늘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와 찬송이 하늘에 상달되려면 이 장막을 뚫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마귀의 방해를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 장막을 지나서 인간과 접촉하고, 인간도 이 장막을 지나야 하나님과 접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이 교류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 장막은 하나님과 인간이 합작해서 뚫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는 은혜의 다림줄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이 줄을 타면 마귀의 훼방을 받지 않고 곧장 하늘에 상달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날개를 타고 땅에서 올라갈 때에는 하나님께로 가지만, 마귀로부터 내려오는 악령의 날개를 타고 올라갈 때에는 마귀에게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받는 제사와 마귀가 받는 제사를 구분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회개하면 성령을 받아 나와 하나님은 일대 일로 교류하게 되어 있는 것 아닌가? 신학자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말세에 이긴자를 세운다는 언약을 했겠습니까?(계2:17) 일대일의 교류는 이긴자가 나타나기 이전의 일이며, 그나마 주님과의 영적인 접촉은 매우 어렵고 드문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귀의 장막을 거쳐서 지상의 인간과 교류하지만, 공중 권세를 마귀가 잡고 있기 때문에 마귀는 그렇지 않습니다. 즉 마귀는 직접 쉽사리 인간과 교류합니다. 산에 가서 섣불리 도를 닦다가 마귀의 신을 받고도 그런 줄 모르고 좋아하는 사례(事例)가 많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배하기보다 마귀가 인간을 지배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나 거짓 선지자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의 다림줄은 마귀에게 직접 침노를 당하지는 않지만, 허점(虛點)을 보였을 때 마귀가 틈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통로(줄기)를 통하여 달갑지 않은 것이 하늘에 올라갈 때 하나님은 불가불 이 길을 막아 버리고 딴 길을 터야 합니다. 즉 종을 교체해야 합니다. 이때 땅에서는 그런 줄 모르며,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불러도 상달되지 않습니다. 은혜의 다림줄이 끊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까다로운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창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할 14만 4천이 여태 차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100명이 모여 예배를 드려도 그 제사가 하늘에 상달될 수 있는 아름다운 심령의 소유자들이라면 하늘에서는 만 명이 모여 예배드리는 가운데 겨우 열 명 정도의 제사나 하늘에 상달되는 곳보다 더욱 관심 깊게 살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리는 전무후무한 은총은 괜히 주시는 하늘의 선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