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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5.23본문
Part 04. 좁은 문을 두드려라
Chapter 33. 할례와 율법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요긴한 것은 은혜의 큰 줄기를 잡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흔히 ‘체계’(體系)라고 합니다. 성경의 장절(章節)을 줄줄 외우다시피 하지만 그 대맥(大脈)을 헛짚고 있다면 아직 체계가 올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할례와 율법의 관계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할례가 무엇이며, 하나님의 역사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 드렸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후 세례 요한 때까지 2천 년 동안 계속되었던 것입니다.(창17:9 참조)
아브라함의 자손 야곱을 통하여 12지파가 형성되고, 이 12지파가 번성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으며,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대로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이룩하려는 당신의 경륜을 펴나갔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 위해 인간을 지으셨지만, 아담, 하와가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거리가 멀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받게 되었습니다. 그 밖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게 되었으며, 따라서 마귀의 지배하에 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지시하여 피의 언약을 맺고,(창17:10)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에서 4백 년 동안 시달림을 받고 4대 후에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낼 것을 약속하여,(창15:13-16) 그대로 실천에 옮기셨습니다. 즉 대선지자 모세를 내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게 하고, 여호수아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 인도해 들이게 하였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번거로운 일을 했을까요? 그것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개화된 이집트의 문물에 접하게 하는 동시에, 이방의 고된 생활을 통하여 연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는 민족의 전통을 보장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모세 때부터는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할례를 폐지하신 분은 실은 주님이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법도에서 이미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할례를 폐지하려면 모세의 율법을 고쳐야만 했습니다. 할례가 율법에 흡수되어 있었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2천 년 기나긴 세월을 두고 전해 내려온 하나님의 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주님이 직접 손을 쓰신 것입니다.
여러분, 네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주께서 자주 율법을 치신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새 것(자유율법)을 들고 오셨으니 낡은 것(모세율법)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모세의 율법을 그대로 두고 자유의 율법을 선포하는 날이면 속된 말로 비빔밥이 되어 혼란만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그러니 주께서 환영을 받을 리가 만무합니다.
율법을 바꾸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율법주의자들의 안목으로 보면 주님의 가르침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니,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너무 요란하면 “내가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더 온전케 하러 왔다.”(마5:17)고 설명하시기도 했습니다.
하긴 자유의 율법은 모세의 율법보다 온전한 것이니, 주님의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의 배후에는 그런 쓰라린 사연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율법이 세례 요한 때까지라고 말씀하였습니다.(눅16:16)
여러분은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딱하게 생각됩니까? 여러분들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 매어 있으며, 세상에 매어 있는 한 영의 것을 알기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라면 안 그럴 텐데….’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니….”(요10:8) 이것도 주께서 율법을 치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그때 여러분도 옆에서 이 설교를 들었다면, ‘우리 주께서 지나친 말씀을 하시는구나! 왜 구태여 바리새인들을 자극하는 언사를 쓰실까?’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생전에 겨우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만 강력히 증거하고 승천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라는 것을 여러 제자들 중에서 맨 먼저 시인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흐뭇한 마음으로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맡겼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극히 당연하고 간단한 사실을 당시의 사람들은 그만큼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16:12) 그래서 주님은 하고 싶은 말씀을 거의 다 뒤로 미루었습니다. ‘할례 폐지론’ 같은 것도 생전에는 변죽만 울리고 나중에 바울을 내세워 본격적으로 외치게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활약할 무렵에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수만 명에 이르렀으므로 말이 먹혀 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모세의 율법, 그리고 할례를 폐지시켰습니다. 그러나 사정만 허락했던들 이것은 주께서 직접 하시고자 했던 일입니다. 그것을 바울이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성경 말씀대로 주님보다 더 큰일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요14:12) 하나님의 아들도 자기를 인정해 주는 자가 적으면 맥을 못 썼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고 따르는 수가 많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시고 나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들에게 불과 같은 성령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 120문도는 주님이 전도하여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끝까지 인정한 수입니다. 그리고 그 불의 성령을 내려 주신 것은 요컨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널리 전파하여 주를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법도 아래서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하는 성령의 역할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긴자를 통하여 역사하는 불과 생수와 이슬 같은 세 증거의 성령은 단지 불신자에게 예수를 믿게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명이 따로 있습니다.
만일 사도 시대처럼 예수를 믿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라면 오늘날 내리는 성령의 은사도 불과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역사를 주관하는 성령의 은혜는 그보다 몇 배 강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직접 받아 보았으므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것을 보아도 하늘에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른 것이 무엇이냐? 이에 대해 나는 전에 이미 여러분에게 귀가 따갑도록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요컨대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하는 십자가의 군병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