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Part 04 - Chapter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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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5.23
[4권] Part 04 - Chapter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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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4. 좁은 문을 두드려라  

Chapter 34. 지상의 주님과 천상의 주님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16:7-8)

 

이것은 주님의 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함께 일찍이 말씀으로 계시면서 우주의 창업에 동참하셨지만(1:26) 이 땅에는 육을 가지고 불가불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고’(2:9)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시장기도 느끼고, 고민도 하고, 눈물도 흘렸으며, 사람들은 자기네와 같은 인간으로 대하였습니다.

 

그는 흠과 티가 없는 성결한 분이었으나,(8:46, 고후5:21, 9:14) 잠시 죄인의 위치에서 우리와 같은 새까만 죄 덩어리들을 위해 대속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만일 주님이 죄인의 위치에서지 않으면 대속이 되지 않습니다. 대속이란 누가 죄를 지어 곤장 열 대 맞을 것을 죄 없는 자가 대신 맞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주님에게 곤장 한 대라도 맞아야 할 죄가 있다면 인간의 죄는 곤장 아홉 대 분만 탕감이 되고, 한 대에 해당되는 죄는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죄가 많을수록 대속의 제물은 온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흠과 티가 없는 당신의 아들을 제물로 삼으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은 바’(3:13) 되신 것입니다.

 

그는 육을 입고 인간의 모습을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품에 계실 때와는 달리 마귀의 제재를 받습니다.(4:1)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 다음가는 위치에 계시지만,(7:55) 마귀의 세계에서는 그런 영광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육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주님이 잠시 천사보다 못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땅에 계실 동안 그의 행동거지(行動擧止)는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입을 통해 엄격히 제한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주님에 대한 선지자들의 예언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이 예언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였습니다.

 

가령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고, 갈릴리에서 설교를 시작하고, 병을 고치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등등의 행적이 다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 주님에게 마냥 자유를 주면 육의 제약을 받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언동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아니, 주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통제 하에 들어계셨지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시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26:39) 하고 간구하고, 가능하면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곧 이어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먼저 기도는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주님은 인간으로 땅에 오셨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에 가까운 언동을 취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늘보다도 땅에 더 가깝게 움직이는 것이 됩니다.

 

주님은 천국에 대해 물론 잘 알고 계셨지만 함부로 발설하지 않고 비유로 암시만 주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각본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만큼 지상에서의 행동에 구속을 받은 분도 없습니다.

 

만일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처지였다면, 바다의 풍랑을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정도가 아니라, 바다를 송두리째 뒤엎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 본위가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 중심으로 행동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에, 다른 보혜사가 와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주님의 피 권세로 되는 일이지만, 주님이 땅에 계실 때에는 없던 엄청난 권한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7:39)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주님 당시에 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던들 구태여 십자가를 지실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굳이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성령으로 하여금 세상을 책망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께서 육신을 입고 땅에 계실 때에는 잠시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여, 세상을 책망하기에는 시기가 일렀던 것입니다.

 

세상을 책망한다는 것은 요컨대 세상을 정죄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20:23) 이 말씀 역시 성령의 정죄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12:32)고 했는데, 이 말씀 그대로 베드로의 말 한마디로 성령을 거슬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5:9)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16:12-14)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주께서 땅에 계실 때 미처 못 하신 말씀을 보완하여 보다 더 충실을 기하는 것이 원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울의 신학에서도 찾아보게 됩니다. 바울은 주님보다 더 깊은 말씀을 터뜨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바울이 한 일이 아니라, 바울 안에 거하는 성령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여러분은 때때로 주님을 직접 만나 뵙고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사람들을 부러워할 것입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세대에, 그리고 같은 고장에 태어나 그 모습을 눈으로 보고 말씀을 귀로 들었으니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그러기에 주님도,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다.”(13:17)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혜사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는 세대가 오히려 더 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응해지기 때문입니다. 내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주님 생존 시의 베드로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연후의 베드로의 믿음과 행동을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