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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1.15본문
Part 02. 빛을 찾아서
Chapter 14. 계시록의 7복 (2)
2) 주 안에서 죽은 자들
계시록에 보면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계14:13)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 안’이란 주의 은혜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의 은혜를 지키는 가운데 주를 위해 목 베임을 당한 순교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주 안에서 살아야 복이 있을 텐데, 왜 죽어야 복이 있다고 하는가? 위의 성경 말씀은 분명히 주께서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가혹한 요구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는 살려고 믿는 거지, 죽으려고 믿는단 말일까요?
계시록 14장에 이런 말씀이 쓰여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서 있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이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계14:1) 시온 산에 계신 주님을 중심으로 하늘의 군대가 둘러싼 광경을 사도 요한이 본 것입니다.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이들 하늘 군대의 이마에 하나님과 주님의 이름이 함께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 시대에 배출된 하늘 군병의 이마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쓰여 있고, 신약 시대에 나온 하늘 군병의 이마에는 주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기록하여 주님을 먼저 가져온 것은 신약 시대에 보다 더 강한 성령의 역사 가운데 은혜를 받고 그 반열에 선 사람들이 서열상 앞서기 때문입니다.(계20:4 참조)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그 하늘 군병의 이마에 천사를 시켜 당신의 이름을 새기게 하고, 신약 시대에는 주님께서 승리하신 보혈의 권세로 하나님의 권한을 이어받아 역사하게 되므로 그 하늘 군병의 이마에는 천사를 시켜 주님의 이름이 새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인을 친다.”(계7:3)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마에 새겨지는 이름은 달라도, 인을 치는 천사는 같습니다. 따라서 하늘 군대의 수가 차고 덜 찬 것은 이 인 치는 천사가 제일 잘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천사의 인침을 받으려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되지, 왜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여러분은 하늘의 이치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마에 받은 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편이라는 표시입니다. 마귀도 자기편에서 움직이는 자들의 이마에 인을 칩니다.(계13:17)
그런데 왜 순교해야만 인을 쳐주는가? 인을 치는 것 자체는 어려울 것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살아 있을 때 얼마든지 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 육 아울러 연약하므로 잘 믿는다고 해서 인을 쳤다가 나중에 죄를 지어 마귀의 밥이 되면 괜히 헛수고를 한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충성해도 죽는 순간에 두려워하거나 원망을 한다면 즉시 마귀의 소유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순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관상으로는 주님을 위해 목 베임을 당하여도 공포를 느끼거나 불평을 하면 마귀가 사로잡아가기 때문에 온전한 순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참된 순교자는 마지막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주를 사모하는 마음이 변치 말아야 하고, 주님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교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순교와 하늘에서 인정하는 순교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수천 년의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목 베임을 당하거나 사자 굴에 들어간 사람들이 다 순교자라면 벌써 하늘 군대 14만 4천은 차고도 남아 하늘나라는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순교하지 않아도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을 수 있는 자는 천사가 이마에 인을 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하늘에서는 신중을 기합니다. 연단에 연단을 거듭하게 한 연후에 틀림이 없다고 인정될 때, 즉 은혜를 받아 온전히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인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80% 이루어진 자에게 인을 치면, 나머지 20%는 죄에 떨어질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큰 은혜 가운데 접어들어 순교하지 않고도 그 반열에 설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 하더라도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14만 4천이라는 하늘 군대의 수를 채우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순교는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또 아무 때나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머리칼 하나도 다치지 않는 사회에서는 순교를 하려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교가 아무리 귀해도 성도에게 박해를 가하지 않는 시대에는 하늘에서도 순교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했을 때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어, 하늘에서 스데반의 죽음을 격려할망정, 벼락이라도 내려 그 목숨을 건지지 않는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마귀는 그를 돌로 쳐 죽이면 자기에게 유리한 줄 알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아무튼, 하늘에서 인을 한번 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충성케 하여 끝내는 죽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시대에는 성령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많은 순교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특히 계시록에 기록된 대표적인 일곱 교회에서 순교를 많이 하여 이런 인 치는 역사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즉 당시에 많은 신도들을 톱으로 잘라 죽이거나 사자에게 던져서 죽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때 성도가 무서워 도망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을 칠 수 없게 됩니다. 왜? 죽음이 무서워 도망치는 군대는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는 그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 군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순교하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하는 길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려고 합니다. 순교란 육적으로 생각하면 그보다 더 비참한 일이 없으나, 영적으로는 가장 큰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최대 목표가 바로 이 순교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님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 시대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불과 같은 성령을 받은 사도들과 그 동역자인 성도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주님을 증거하다가 변을 당하여 기꺼이 죽어 갔습니다. 땅에서 하나님을 제일 기쁘게 해 드린 시대가 바로 사도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십자가의 군병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는 예수를 믿는 사람을 무조건 잡아 죽이는 시대이므로 순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시대에는 순교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공산주의 국가라면 모를까, 적어도 자유 진영에 속하는 나라에서는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지 않으며, 잡아 죽이는 일은 더구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는 하늘의 군대를 한 사람도 배출시킬 수 없을까요? 있습니다. 하늘에서 예비한 이긴자의 역사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즉 이긴자를 내세워 그를 통해서 많은 성도들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풀기 때문에, 순교하지 않고도 그 반열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에게 한 주님의 언약이며, 이긴자는 일곱 가지 특권을 가지고 역사하게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이미 상세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이 오늘날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여러분 자신이 산 증인이 되어 주실 줄 압니다.
이 에덴성회는 여러분을 구원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십자가의 군병을 기르는 훈련소입니다. 이 군병은 영의 마지막 싸움터(아마겟돈)에 나가 싸우지만, 구원이나 겨우 얻는 신도는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뿐, 마귀와 싸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에게는 훈련이 필요 없지만, 군병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 훈련은 바로 주님에의 충성과 인내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를 위해 끝까지 참고 견디며 마음을 다하여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시련과 연단을 이기지 못하면 마귀와의 싸움에서 강적을 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과 일문일답을 나누고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던 대 선지자 모세는 자기 앞에서 술객이 버젓이 흉내를 내어도 속수무책이었지만, 바울이나 베드로는 성령을 부어 주고 마귀, 곧 악의 세력을 능히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이들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피 권세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고 증거했던 것입니다.(요10:8)
그런데 앞에서 말한 대로 구약 시대의 성령은 마귀 앞에서 맥을 쓰지 못하니, 순교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불의 성령만 받아 가지고서는 마귀를 완전히 꺾을 수 없었으므로, 순교해야만 하늘나라 군대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마지막 때에 이긴자를 통하여 내리는 성령의 능력은 불의 한 증거의 성령보다 몇 갑절 위력이 있어 순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불과 생수와 이슬 ― 이 세 증거의 성령이 그것이며, 이것은 여러분이 실제로 받아 보아서 잘 아실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주께서 포도원의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마20:1 이하) 즉 일꾼들이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는데, 주인이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점심때부터 일한 사람과 또 오후부터 일한 사람에게 똑같은 품삯을 주니까, 먼저 일한 자가 항의를 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꼭두새벽부터 열심히 일했는데, 어째서 점심때가 다 되어 일을 시작한 사람과 같은 품삯을 줍니까?” 주인이 대답했습니다. “그건 내 뜻이다.” 그렇습니다. 구약 시대의 순교자는 제일 많이 애를 쓰고, 신약 시대 불의 성령을 받은 순교자는 그 다음으로 애를 쓰고,
마지막 때 이긴자를 통해서 내리는 세 증거의 성령을 받아 순교하지 않고도 순교자와 같은 대우를 받은 성도는 제일 적게 애쓴 것입니다. 애를 많이 쓴 것은 결국 때를 잘 타고나지 못한 탓입니다. 그러니 주인이 하는 일에 항의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귀를 상대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기는 성령입니다. 이 성령의 기능은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가 다르고, 같은 신약 시대에도 한 증거의 성령이 내리는 시대와, 세 증거의 성령이 내리는 시대가 다릅니다. 오늘날 순교하지 않고 하늘의 군병이 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그러한 시대에 태어나 그런 은총 가운데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악의 세력이 눈 녹듯 녹아 나가고, 굳어진 심령이 다시 소생하는 이 마지막 역사는 여호와의 감춰진 비밀이며, 인간의 능력으로나 힘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되는 것입니다.(슥4:6) 이 역사는 또한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저물어갈 때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슥14:7) 환한 대낮이면 다른 새 역사도 필요 없고, 캄캄한 밤이면 다시 일으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씨를 뿌리는 때가 아니라 ‘이한 낫을 든’(계14:14) 이긴자가 알곡을 거두기 위해 역사하는 때입니다. 씨를 부릴 때는 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아무에게나 물 붓듯 부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추수 때는 알곡이 익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다듬고 성령으로 씻어 세우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며 따라만 오십시오. 여러분은 다 십자가 군병의 반열에 설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 역사를 시작한 후로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10년은 더 늙었습니다. 지금도 마귀는 나 하나를 꺾으려고 총동원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과 동고동락하면서 기필코 이 역사를 이뤄놓고야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