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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1.16본문
Part 03. 이기는 그 날까지
Chapter 18. 섭리와 경륜
하나님의 역사는 대체로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택할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대에 인품이 제일 고결하고 학식이 많아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인격자를 당신의 종으로 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역대의 종들은 그렇지 않고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며, 때로는 당신의 적대자까지도 등용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 자체이기도 합니다.(사43:7) 하나님께서 인간이 인간의 존경(영광)을 받는 것을 싫어하시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담, 하와가 죄진 이후의 인간은 도저히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죄 덩어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당대의 훌륭한 인격자라는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등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그의 고귀한 언동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장본인에게서 우러난 것으로 알고, 그를 더욱 존경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은 그만큼 더 가려질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택하실 때 가장 꺼리는 일입니다.
바울은 극(極)에서 극으로 간 사람으로, 예수를 믿는 자를 잡아 죽이는 데 앞장섰을 때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나는 바울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나는 사람을 죽이기는커녕 소송 한 번 해본 일이 없습니다. 바울은 주님 앞에 내놓을 것이라고는 죄와 부끄러움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말이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갈 리가 없습니다.
분명히 주님의 부름을 받기는 받았는데, 사람들은 그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하필 바울 같은 놈을 들어 쓰시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생각과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역설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롬9:6-7)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네 자손이 하늘의 별들처럼 땅의 모래알같이 많이 퍼져 번성할 것이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언약을 철석같이 믿고, 앞으로 아내가 자식을 무더기로 낳을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 봐도 아내 사라는 태기가 전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물론 사라도 하나님께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럴 수가 있나?’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셨나?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내가 개꿈을 꾸었나?’ 아브라함은 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세월은 흘러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10년이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아내에게서는 여전히 소식이 감감하므로, 아브라함은 할 수 없이 아내의 권유로 여종 하갈을 첩으로 삼아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 아들을 얻은 줄 알고 무척 기뻐하여 금이야 옥이야 하고 정성껏 길렀습니다. 장차 이 아들을 통하여 그 자손이 ‘하늘의 별들처럼, 땅의 모래알같이’ 퍼지게 될 터이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나타나, 아내 사라가 아들은 낳을 터이니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으라고 일렀습니다. 이삭이란 히브리말로 ‘웃는다’는 뜻으로,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지지 않아서 웃었습니다.(창17:17) 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창18:12) “아니 내가 이제 와서 아이를 낳는다니?”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아내가 한꺼번에 몇 쌍둥이씩 대량 생산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예상과는 달리 리브가도 오래도록 잉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 내외는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무수히 변성할 것을 약속해 놓고도 이렇게 대대로 자식을 낳지 못해 애타게 했을까요? 여러분, 전에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내가 이렇게 물으니까 비로소 ‘하긴 이상한 일이군.’ 하고 생각할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계획이 따로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모태에서부터 당신의 축복을 받아 태어난 약속된 인물(야곱)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삼으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자식을 마구 낳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정이 따로 계셔서, 하갈이 낳은 아브라함의 아들을 정식 아들로 인정하기 않고, 당신께서 은총을 베풀어 낳게 한 사라의 아들 이삭으로 대를 잇게 하였습니다. 그럼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역사와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섭리(계획)안에 있는 언약된 자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삭과 리브가의 기도에 응답하여, 에서와 야곱 두 쌍둥이를 낳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쌍둥이는 좀 색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모습이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즉 형 에서는 전신이 불그스름하고 털이 많은 반면 야곱은 피부가 부드럽고 매끈매끈했으며, 에서는 성질이 거칠어 사냥을 즐기고 야곱은 성격이 온순하여 가축을 길렀습니다.
그러니까 한 배에서 거의 서양 사람과 동양 사람이 동시에 태어난 셈입니다. 여기에는 ‘그 복중에서부터 두 민족이 나누이게 하려는’(창25:23) 하나님의 섭리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각각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태어났지만, 형에서는 동생 야곱을 섬기도록 예정되어 있었습니다.(창25:23)
왜 하나님은 동생이 형을 섬기도록 하지 않고, 그 반대가 되게 하였을까요? 에서와 야곱의 경우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언제나 강한 자보다 약한 자를 우대하는 것이 상례(常例)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 더욱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가리켜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은 폐하려 하시나니”(고전1:27-28)라고 말했습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축복을 빼앗기고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강자가 약자에게 밀려나게 되었으니, 핍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공통된 현상입니다. 사도 시대를 예로 들면, 베드로는 강자로 군림하고 바울은 약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앞선 역사는 강자의 위치에 있고, 나중 역사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만간 이 불균형은 깨어져 나중에는 거꾸로 되게 마련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되는 일입니다. 나는 구태여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오늘날 우리의 처지와 결부시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알려드릴 뿐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가운데서도 극히 한정된 범위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은 부분적으로 베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접어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 울타리 밖에서 아무리 하나님을 섬겨 봐야 헛수고에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두려운 성경적인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