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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1.16본문
Part 03. 이기는 그 날까지
Chapter 20. 예언된 시대의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시는 역사(役事)는 크게 셋으로 구분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예언된 시대에 일어난 일로, 하나님께서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역사인 것입니다.
첫 번째 예언된 시대는 모세 때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12:7)고 하신 언약대로, 모세를 내세워 애굽에 가 있는 당신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두 번째 예언의 시대는 주님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그들의 형제 가운데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터이니,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하신(신18:15, 행3:22) 언약을 비롯하여, 많은 선지자의 입을 통해 메시아의 강림을 예언한 대로 주께서 오셔서, 구원의 길은 마련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 예언의 시대는 이긴자의 때입니다. 즉 주께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로 보여 주시고 들려주신 언약대로 이긴자가 나타나 생명수 샘물을 유업으로 주리라는 예언대로 값없이 생수를 전해주며, ‘이한 낫으로’ 알곡을 거두는 오늘의 역사가 그것입니다.(계21:6-7, 14:16)
그런데 이 세 예언된 시대의 모든 주인공은 주님입니다. 즉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들인 것은 앞으로 주의 피 권세로 그들을 구원할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이며, 이긴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마무리 짓는 것도 주의 보혈로 말미암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의 역사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39-40)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읽으면 별로 감명 깊지 않으나, 주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때의 정상을 계산에 넣으면 참으로 기가 막힌 주님의 한탄이자 경고입니다. 본문 말씀에 성경이 주님 자신을 증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창세기에서 말라기에 이르는 39권을 요약하면, 결국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주님을 빼 버리면 아무 가치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의 백성들, 특히 교권을 쥐고 ‘서로 영광을 취하는’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새파란 시골 청년이 불쑥 나타나 이런 폭탄선언을 했을 때, 그 말이 어떻게 들렸겠습니까? 여러분 중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그렇게 몰라보고 푸대접하다 못해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처사를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큰 이적을 보여 주고 신령한 말씀을 들려주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들 중의 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면 안 그러겠다는 자신이 있습니까? 주께서 그렇게 당하신 것은 오히려 당연하기까지 합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하나님을 제일 잘 믿노라고 앞장선 부흥사, 선교사, 신학자, 교역자 할 것 없이 거의가 ‘자기 영광’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명성이 따르고, 돈이 붙고, 영화가 돌아오지만, 하나님은 이런 것을 합당이 여기지 않습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제일 우리에게 요긴한 것은 계시록입니다. 계시록은 성경 66권의 총결산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시록은 이긴자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계시록의 중심인물이 이긴자입니다.
그러므로 이긴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계시록을 올바로 해석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계시록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계에서는 계시록을 덮어 두다시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긴 계시록을 해설한 책이 더러 나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남의 생각을 빌어 왔거나 자기 짐작대로 써 놓은 것으로, 전혀 줄기가 서 있지 않습니다. 터뜨릴 자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단12:9, 계2:17참조)
예언된 역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오늘날 뜻있는 사람들이 계시록을 간혹 상고하지만, 이 계시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며, 자기 영광을 취하고, 하늘의 군대가 되기 위해 이긴자를 찾아 그 은총 가운데 들어오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의 설교가 우물 안의 개구리 소리로 들린 것처럼, 오늘날 이긴자가 나타나 외쳐도 별로 반응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몰라본 것이 죄인 것처럼, 이긴자를 외면한 것이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둠이 빛을 가린 격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마10:41)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는데, 이 경우는 정반대입니다.
예언된 시대가 오면 당연히 큰 변혁이 오게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앞선 자가 뒤에 서고, 뒤진 자가 앞서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긴자의 역사에 ‘자기’가 살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순간이라도 나를 앞세울 때 떨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큰 은총을 힘입어 이름이나 내고 떵떵거리는 것은 가장 금물입니다.
우리는 모름지기 겸손한 마음으로 주의 인격을 자기 인격으로 삼기 위해 줄기찬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은혜를 연결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속에 주의 인격을 이루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