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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1.25본문
Part 02. 진리 안에서
Chapter 14. 믿음은 스스로 키워야 한다 (1)
1) 베드로의 성장 과정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명심해야 하는 것은 자기 믿음을 감찰하는 일입니다. 즉 여러분이 각자 자기 믿음의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사원을 두어 나라 살림을 제대로 하고 있나, 어디 좀먹는 구석이 없나, 하고 살피게 하는데, 믿음에 있어서도 이런 감사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자라고 있습니까? 아니면 후퇴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경우를 들어 잠깐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베드로는 세례 요한에게서, 예수가 구세주이며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고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놓을 테니 회개하고 그를 따라야 산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는 그 동안에,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장모의 열병이 낫고(눅4:39) 또 귀신들린 자가 주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눅4:34)라고 증거하는 등, 기이한 일들을 직접 목격하고 놀라기도 했으나, 아직 예수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여 긴가민가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본격적으로 따르게 된 것은 게네사렛 호수에서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져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을 때부터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신령한 하늘의 도를 전하고 병이나 고치는 선생님으로 알고 있었는데, 고기도 썩 잘 잡게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 잡노라고 해도 헛수고를 했지만,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치겠습니다.”(눅5:5) 이것은 베드로가 고기를 잡지 못하고 다른 어부들과 함께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는 것을 주님이 보시고, 좀 더 깊숙한 데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으라고 지시하시자 베드로가 주님께 한 말입니다. 베드로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어부입니다.
고기를 잡는 일에는 주님이 당하지 못한다고 자부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고기를 잡는 것까지도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웬만한 사람 같으면 “선생님, 저는 고기를 잡아 살고 있는 어부입니다. 그런데 저더러 그물을 잘못 쳤다고 하십니까? 선생님 말씀대로 그물을 쳐 봐야 별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일단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지게 고기가 많이 잡혔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비로소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주님의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정체를 분명히 알고 두려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는 말이 베드로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이 때문입니다. 즉 주님을 알아보고 감히 주 앞에 나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 말아라.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좇아라.”(눅5:11) 베드로는 두말 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나서 건너가는 신중한 사람이었던들 그는 때를 놓쳐 일생을 고기나 잡고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세상 일은 그렇습니다. 너무 영리하고 되바라지기만 해도 큰일을 못하는 법입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단순하며 좀 어수룩한 데가 있어 적극적으로 주의 일을 도왔습니다. 요새 말로 극성파라고 할까요. 아무튼 그는 주의 수제자로 주님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 되는 영광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주님의 언행을 유심히 관찰하는 동안에 날이 갈수록 ‘주님은 보통 분이 아니구나.’ 하는 심증(心證)이 굳어졌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믿음은 점점 자라게 되었으나, 아직 주님이 누구라는 것을 분명히는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물을 던져도 고기가 많이 잡히는 분으로 두렵게 섬기는 정도에 그쳤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설교를 하시면서 “여러분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요6:53) 하고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나오는 ‘피’와 ‘살’은 물론 비유로 사용하신 것이며, 듣는 사람에게 오해를 주기 쉽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주께서 이 말씀을 던지자 군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역시 수군거렸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다니, 이게 될 말인가?” 제자들이 이 모양이니,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 말씀에 걸려 떨어진 사람이 수두룩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도 나한테서 떠나려고 하느냐?”(요6:67)
제자들은 마음이 착잡하여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윽고 베드로가 입을 열었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영생을 얻는 도리를 말씀하고 계신데, 저희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저희는 주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신 줄 믿습니다.”(요6:68-69)
주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할 날짜가 임박해 오자 이처럼 주님의 입에서 점점 차원이 높은 영적인 말씀이 터져 나가니, 주님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도 구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루는 주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날 누구라고 하더냐?”(마16:13)
“네,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 또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나 선지자의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내심 어이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하는데, 반응을 들어보니 이렇게 중구난방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렇게 새삼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부터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윽고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 이것은 새삼 대답할 필요도 없는 대답입니다. 이렇게 주님과 제자들 사이에 불필요한 대화가 오고갔다는 데서도, 우리는 고전하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때 처음으로 주님을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기거를 같이하면서 직접 대화를 나누는 수제자가 왜 이렇게 아둔할까?’ 하고 이상한 생각도 들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아둔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안 그럴 줄 아십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더도 말고 베드로 정도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면서 주님의 언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가운데 믿음을 여기까지 키워왔던 것입니다.
‘고기잡이에도 능한 선생님’에서 ‘신령한 말씀을 하시는 주님’으로, 다시 ‘구세주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렇게 주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 베드로의 말에서 우리는 그가 자라온 신앙의 자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날이 갈수록 믿음을 높은 단계로 끌어올릴 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