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Part 03 - Chapter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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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1.05
[4권] Part 03 - Chapter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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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3. 은혜의 동산  

Chapter 16. 선지자, 사도, 이긴자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것도 뒤에서 슬슬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에 들도록 믿는다는 것은 어렵다기보다는 자기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좀 모자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마음을 돌려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을 멋대로 조정하지 못합니다.

 

오늘 이 시각에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무수한 신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부르고 성령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저마다 바울의 제자입니다. 즉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세대마다 선지자를 지상에 보내어 역사하였으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초대교회 때에 사도들을 통하여 한 세대 동안 크게 역사하셨을 뿐, 오늘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교역자들은 많이 배출했으나 성경에 언약된 하나님의 사람, 곧 이긴자(2:26 참조)는 근 2천 년 동안 이 땅에 나타나지 않았었습니다.

 

만일 위에서 말한 큰 일꾼들 중에서 성경에 기록된 이긴자가 나타났었다면, 뭇 신도들에게 성령을 물 붓듯 부어 의로운 자를 많이 배출함으로써 인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럼 사도 시대의 베드로나 바울 또는 사도 요한과 같은 큰 인물은 어떠한가? 그들은 신령하고, 은혜가 많고, 주님과 교류하고, 새로운 말씀도 터뜨리기는 했으나 이긴자는 아니었습니다.

 

만일 베드로나 바울이 이긴자였다면, 주님이 사도 요한에게 이긴자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사도 요한도 그렇습니다. 그가 이긴자였다면 구태여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어 이긴자에 대한 언약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계시록을 쓸 때에는 바울의 사명이 끝난 뒤였습니다. 이긴자는 성경적인 인물이므로 성경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계시록 2, 3장에 기록된 내용과 그밖에 간간이 단편적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14:5-7, 11:6, 21:6-7)이 실제로 실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긴자가 나타나면 권능도 권능이지만 새로운 말씀이 터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2:17) 따라서 바울의 신학이 더욱 심화 또는 시정되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감춰진 여호와의 비밀이 드러나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며, 이 비밀은 주님의 특별한 계시에 의해 밝혀집니다.

 

여기서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 비밀의 내용이 독단적인 어떤 편견이 아니라, 보편적(普遍的)인 진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경적인 보증이 따르게 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베드로와 바울은 각각 다른 주장을 폈습니다. 즉 베드로는 할례를 받아야 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쳤으나, 바울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자유의 율법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법도이지만 바울의 가르침이 베드로의 그것보다 한결 깊습니다. 이긴자가 나타나면 바울의 가르침보다 더욱 깊은 말씀을 터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이긴자가 곧 온 세상의 주곧 하나님을 모시고 선 감람나무요, 예수의 두 증인입니다.(4:14, 11:3) 이긴자의 권능에 대해서는 계시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그 가장 두드러진 것은 예언하는 날 동안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는것입니다.(11:6)

 

이 권능은 구약 시대에 모세와 엘리야가 여호와로부터 받은 것으로,(4:9, 왕상17:1 참조) 이 두 분은 두 감람나무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 두 가지 권능이 육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신약 시대인 오늘에 와서는 영적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못하게하는 비는 하나님이 부어주는 성령의 비로서,(2:28 참조) 이긴자, 곧 두 증인으로 하여금 이 성령의 비를 사람들에게 주고 안 주는 권한을 갖게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물을 피되게 한다는 피도 역시 구약 시대의 육적인 피가 아니라, 오늘에 와서 영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으로, 마지막 때 이긴자를 통하여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물이 피되게 하는 경우를 좀 더 실감나게 육적으로 보여 준 것이 바로 생수의 축복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한갓 성경 말씀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날 이 땅에서 비로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기 모인 여러분은 거의 다 체험했을 터이므로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에덴성회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을 믿게 하는 곳이라기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을 더욱 잘 믿게 하는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한 십자가 군병의 훈련소가 바로 이 에덴성회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도 아직은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또 좀 안다고 하더라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기 전에 우습게보거나 심지어 자기 나름의 속단을 하여 훼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주님 당시에 사람들이 모세나 다윗은 우러러보았으나, 그들은 주님을 거의 다 목수의 아들 또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이단자로 단정해 버렸던 것입니다. ? 주께서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오늘날도 다를 것 없습니다. 바울은 우러러보지만 이긴자는 우습게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도 당시에는 미친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 자기가 모세보다 더 크다고 했기 때문입니다.(고후 3:7-9)

 

하긴 은혜를 아는 사람은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앉아 있는 것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하여 그 많은 교회를 이웃에 놔두고, 멀리 셋방살이하는 이곳까지 올 수 있겠습니까? 정신이 말짱한 사람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선지자, 사도, 이긴자는 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하여 땅 위의 사람들에게 역사해 왔으며, 또 오늘날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맡은 사명은 다르지만 똑같이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긴자는 주님이나 세례 요한처럼 성경적인 인물이라는 것이 선지자나 사도와 다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나라에서는 서열이 이긴자, 사도, 선지자의 순서로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