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Part 03 - Chapter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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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2.15
[4권] Part 03 - Chapter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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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3. 은혜의 동산   

Chapter 18.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


세상에서 뭇 사람들에게 제일 심각한 문제는 역시 죽음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을 가릴 것 없이, 죽음 앞에서는 손을 들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고귀한 가치인 진, , (眞善美)와 같은 것도 요컨대 우리가 한 생애를 살아가는데 요긴한 구실을 담당하지만, 죽음에 삼킴을 당해 땅속에 묻혀 버리면 아무 가치도 없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죽은 자에게 고귀한 인격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죽은 자에게 피카소의 그림이 무슨 구경거리가 되겠습니까? 세상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죽은 자에게는 힘이 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볼 때, ‘()’는 실로 만인의 최대 함정이자 두통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어도 진리와 덕과 아름다움은 살아남는다고 반박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남는 것은 추상적인 생명으로 죽은 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로 거기 남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인생은 허무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을 이기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이 바로 그 길입니다. 즉 주의 피로 씻음을 받아 구원에 이르는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느냐? 증거를 대라.”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해 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11: 1)라는 말씀 그대로, 신앙은 영생을 확신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세계를 확인하게 합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공경하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기가 죽어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지성(知性)을 능가하는 신비한 능력에서 오는 것으로, 이 능력은 다름 아닌 성령의 조화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대부분은 이와 같이 해서 내세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영의 세계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즉 그들의 확신은 확신에 그치고, 그 세계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감감한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물론 그들의 목자들도 모세나 바울을 비롯한 많은 하나님의 사람의 경우처럼 하나님과 자상한 교류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6천 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들어 쓰시는 많은 종들이 하나님의 가르침과 지시에 따라 역사해 왔는데, 이것은 오늘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을 나타내신 것과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3:5)라는 성경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오늘날에는 이적이나 기사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 구절은 그 앞뒤 맥락으로 미루어 보아 전에는 바울 시대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없었지만, 이제는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의 큰 은총을 베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3층천에 가서 하늘나라를 돌아보고 왔습니다. 바울이 영의 세계에 밝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물론 바울은 평소에도 이상 중에 주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지만, 3층천에 가서 그 나라를 구석구석 목격하고 나서 더욱 그 세계에 정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그처럼 세상을 헌신짝 같이 버리고 주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갈 길을 다 달려간것은 그가 남달리 영의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의 세계에 대해서는 성경에 우리가 알아듣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니, ‘보석이니 하는 낱말을 인용하여 단편적으로 언급해 놓았습니다마는, 그 세계는 바울이 이상 중에 3층천에 가서 목격한 것처럼 눈으로 보아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군병이 되려면 사전에 어느 정도의 윤곽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에 대하여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영의 세계는 우리가 좀처럼 머릿속에 그리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이 땅덩이에 달라붙어 한동안 복작거리다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마는, 죄에 떨어지기 전의 아담, 하와때만 해도 이들의 활동 무대는 우주요, 에덴동산이 거처의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하긴 오늘날 우주 시대에 접어들어 달나라에도 인간이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마는, 타락 이전의 아담, 하와는 일종의 영체라 지구와 달 사이를 눈 깜짝할 사이에 내왕했던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태양이나, , 공기, , 꽃과 같은 그런 현세의 것들이 없습니다. 그곳은 우리의 입으로 뭐라고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호화찬란하며, 천국 백성들은 물론 육신을 갖고 있지 않지만, 감각이나 감정 같은 것은 우리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합니다. 즉 희로애락(喜怒哀樂)에 대한 감수성(感受性)이 매우 예리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지옥을 불 구렁텅이로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간이 알아듣기 쉽도록 편의상 그렇게 표현했을 뿐입니다. 마귀는 불 속에 집어넣을 수도 없지만, 집어넣는다고 해서 데거나 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계 인구가 다 달려들어 몰매를 안겨도 마귀 한 마리를 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마귀를 때려눕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영은 육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유도 10, 당수 초특급이라도 안 됩니다. 영은 영이 아니고서는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2:28)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여러분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습니까? 마귀를 이기라고 부어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 마귀를 무찌르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입니다.

 

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마귀의 영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전자보다도 후자를 받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세상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4:6) 우리는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그릇된 신앙관을 갖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누구나 다 구원 얻으려니하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마귀가 장악하고 있는 이상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마귀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쩔쩔매는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피 권세입니다. 그리고 이 강한 피 권세는 성경 말씀 그대로 주의 종을 통하여 물 붓듯이 내리고 있습니다.(2:17) 그것이 곧 여러분이 받고 있는 보혜사 성령의 은혜입니다.

 

이 성령은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무기입니다. 여러분은 이 무기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17:15) 선한 싸움에서 이기면 성령이 같이하고, 패하면 마귀가 같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원리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과 물과 피로 거듭난 자가 이긴다고 했습니다.(3:5)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이긴자는 마귀의 밥이 될 수 없습니다. 즉 마귀가 괴롭힐 수는 있지만 사로잡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겼다, 졌다 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그를 지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이 지시한 자기의 사명을 이루건 말건 이긴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건 말건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례 요한이 주님을 의심하건 말건 주의 길 예비자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적인 인물은 다 그런 것입니다.

 

이영수가 밉든 곱든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으로 만들어 주신 이상, 하루 24시간 내내 지켜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감히 이 단에 서지 못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나를 짓밟으려고 해도 주님은 당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합니다.

 

내가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21:6-7) 이 말씀이 실제로 응해져야 합니다. 에덴성회는 양떼들에게 이 생명수를 먹여 주는 곳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열심히 공경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40일씩 단식기도를 하고 성경 구절을 줄줄 외웁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어떤 목사님은 계시록을 만 번 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수를 구경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생수의 역사는 주께서 언약 가운데 하시는 일이며, 이 때문에도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고로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시는 인물일수록 핍박이 심하였습니다. 오죽하면 주께서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9:58)고 한탄하셨겠습니까? 바울과 베드로가 당한 고난을 생각해 보십시오. 옛날에는 육적으로 많은 괴로움을 받았으나, 오늘날에는 영적으로 크게 시달림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때가 때인 만큼 마귀의 화살이 밤낮으로 사람의 마음속을 겨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믿음이 겉돌기 쉬운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인자가 다시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18:8)는 주님의 말씀이 응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금생(今生)뿐이라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다.”(고전15:19)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역사에 먼저 참여하여 고생을 달게 받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여러분을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희생은 그 나라에서는 물론, 이 세상에서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