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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3.29본문
Part 03. 은혜의 동산
Chapter 24. 순종과 축복
성경을 상고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다스리기에 얼마나 고심하시며, 인간이 얼마나 우매하고, 또 마귀가 얼마나 간교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영의 세계에 눈이 어두운 인간을 사이에 놓고 성령과 악령이 서로 자기 소유를 만들기 위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먼 옛날에 있었던 남의 일이 아니라, 인지가 발달된 오늘이라고 해서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로 40년 동안 광야에 유리하게 하신 고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한 그 세대가 필경은 다 소멸하였느니라.”(민32:13) 이 말씀에서도 여호와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내세워 애굽에서 고생하는 당신의 백성을 기름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라고 일렀으나, 저들이 당신의 계명 제1조를 어겨 우상을 숭배했으므로 그 죄과를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방인은 범죄하건 말건 전혀 관여하지 않으며, 아무 채찍도 가하지 않지만, 당신의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즉 반드시 책벌을 내리며, 그 시기는 빠르기도 하고 늦기도 하지만 결코 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책임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11:15)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고기를 먹고 싶다고 투덜거릴 때 모세가 하나님께 고한 기도의 한 토막입니다. 오죽하면 모세가 차라리 자기를 죽여주십사 하고 하나님께 간구했겠습니까?
저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일으키신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보고, 하나님께서 모세는 물론 자기들과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열광적으로 “하나님 만세!”, “모세 만세!”를 외쳤지만, 그때 뿐, 며칠이 지나면 또다시 모세에게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저들의 큰 불찰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죄악임을 미처 몰랐으니 말입니다. 당시에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모세의 말을 우습게 여겼던 것입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민14:11) 하나님께서 노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명령에 전혀 순종치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저들은 모세가 홍해를 가르거나 손을 들어 적군을 물리치면 모세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지만, 얼마 지나면 다시 변덕을 부렸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호와께서는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다.”(민14:22)고 탓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에게 온전히 순종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치 않은’ 연고로, 끝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에 대하여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형편이 웬만하면 순종하고, 조금만 고생스러우면 순종치 않는 사람을 여호와께서는 버리십니다. 왜? 그런 뜨뜻미지근한 믿음으로는 마귀의 밥이 되기에 알맞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인들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마귀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도전해 오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마귀는 성냥 한 개비로 아름다운 궁전을 불태워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烈祖)와 세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로다.’”(삿2:20-21) 이것은 사사 시대에 들어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게 된 것을 보고 진노하신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의 이방인을 다 쓸어버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일부 남겨 둔 것이 화근이었던 것입니다. 늘 말하지만, 우리가 자비하신 하나님만 알고, 분노하시고 보복하시는 하나님을 모르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비하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면 무한정 자비하시지만, 불순종하면 그렇게 무자비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신11:26)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에게, 양면 작전이라면 어폐가 있지만, 아무튼 ‘축복’이 아니면 ‘저주’를 내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신, 구약을 통하여 일관된 여호와의 기본 태도이며, 다만 그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즉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의 눈 밖에 나면 구약 시대에는 육적인 축복을 거두고 신약 시대에는 영적인 축복을 거두는 반면에, 당신의 백성이 눈에 들면 구약 시대에는 육적인 축복을 하고 신약 시대에는 영적인 축복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과 육은 긴밀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육적으로 축복을 거두면 영적으로 메말라가고, 영적으로 축복을 거두면 육적으로 시들어가게 마련입니다. 다만 구약 시대는 여호와께서 육적으로 역사하였기 때문에 그경위(經緯)를 눈으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으나, 신약 시대에는 우리의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불순종했을 때 적의 손에 붙여서 환난을 당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당신의 백성들의 주위에 이방인들 ― 애굽, 앗수르, 바사, 로마 등 ― 로 하여금 위기를 조성케 했던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저들의 손에 붙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주변 정세를 돌아보십시오. 우리나라 정세가 긴박한 것은 국제 정치의 역학 관계(力學關係)에서 빚어진 것 같지만, 실은 그 등 뒤에 여호와의 손길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