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Part 04 - Chapter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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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5.16
[4권] Part 04 - Chapter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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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4. 좁은 문을 두드려라 

Chapter 28. 양과 염소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깊은 영적인 말씀을 많이 못했습니다. 제자들까지도 포함하여 듣는 사람들이 육에 사로잡혀 좀처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귀한 말씀을 던져줘도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거나 곡해한다면, 숫제 입을 열지 않느니만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별로 깊은 말씀을 하지 못하고 보혜사 성령에게 미루었습니다.(14:26)

 

그러나 주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심판 때에 양과 염소를 좌우로 가르겠다는 마태복음 25장의 언약의 말씀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여러분, 양과 염소는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이 양과 염소의 비유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에서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좌우로 갈라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마다 교회 문을 드나들 때에는 다 비슷한 신자이지만, 크게 구분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 양과 염소의 구분의 결과는 영적으로는 실로 하늘과 땅 만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쪽은 영원한 하늘나라로, 또 한쪽은 영원한 불 구렁텅이로.

 

생전에는 고만고만하게 보였는데 이렇게 큰 차이가 생기게 되니, 양쪽이 다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똑같이 주님에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한쪽은 자기가 생전에 하나님께 별로 충성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분에 넘치는 은총을 받고 뜻밖의 일이라 이의를 제기하고, 또 한쪽은 자기가 하나님께 크게 잘못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억울한 벌을 받고 뜻밖의 일이라 이의를 제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양에 속하는 신도에게 너는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기쁘게 하였다.” 하시고, 또 염소에 속하는 사람에게는 너는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섭섭하게 했는데, 이것은 다 나에게 그렇게 한 거나 마찬가지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종이 한 장의 차이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25:35-참조)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중에는 일생을 하나님을 믿노라고 애는 애대로 썼는데,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다니, 그런 예수 안 믿겠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자기 나름의 견해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주종(主從)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인간이 있는 것이지,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계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지, 인간이 하나님을 지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당신을 공경하게 했습니까, 아니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아 공경했습니까? 대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이상 중에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이래라 저래라 지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을 위해서이며, 결코 아브라함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동기부터가 당신이 영광을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43:7) 마귀를 소탕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힘을 빌려 한몫 보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위로를 얻고, 마음이 평화로워 행복하게 잘 살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믿음에서 오는 이 부수적인 이득을 배격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것은 신앙의 작은 소득이지 목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때문에 하나님께서 줬다 안 줬다 하시겠습니까? 그 축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욕이 돌아갈 때 하나님은 축복은커녕 오히려 형벌을 내리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무수히 보아 왔습니다.

 

기독교는 인간 위주의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 위주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위주로 살아야지 자기 위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자기류의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계에서 이것을 별로 알려고 하지 않고, 덮어놓고 믿으면 되려니 합니다. ?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모르느냐? 주님과의 진정한 교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도 시대에는 주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도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고, 스데반이 돌팔매를 맞으면서 기꺼이 죽어간 것은 주님이 그것을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성도가 죽는 것을 귀히 보십니다.(116:15) 무릇 주께서 원하시는 일과 결부되지 않는 모든 움직임은 아무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뜨겁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아무도 그 열성을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최대의 흉악범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사실입니까! 그런데 그는 주님을 대하고 나서 비로소 자기 잘못을 크게 뉘우치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바울이 다메섹에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한평생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답시고 끝까지 주를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데 앞장섰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바울은 죽도록 하나님께 자기류(自己流)의 충성을 했겠지만, 그 말로(末路)는 비참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의 신앙에서 탈피하여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늘 말하지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마당에서 언제나 명심해야 하는 것은 마귀의 존재입니다. 주의 섭리가 아닌 것은 마귀가 하루아침에 다 사로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령한 에덴동산도 침범할 수 있는 것이 마귀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들어와서 믿어도 어려운 것이 신앙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마귀가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4:8-9)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가 쉽습니까,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가 쉽습니까? 은혜를 웬만큼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일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설사 은혜를 많이 받고 열심히 달리는 사람이라도 자칫하면 마귀의 올가미에 걸려 넘어지기 쉽습니다.

 

더구나 세 증거(불과 생수와 이슬)의 성령이 역사하는 이긴자가 나타난 오늘에 와서는 한 증거() 정도의 성령을 받아 가지고는 맥을 쓰지 못합니다.

 

겉으로 보면 그들의 열성은 여러분보다 몇 갑절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 않습니다. 새벽기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헌금 잘 하고, 사랑이 넘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거기서는 주님의 새로운 지시에 의해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고 원치도 않는 일을 하기 쉽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여 몸소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았습니다.(삼상13:9-14) 하나님께서 사울이 제사장의 직분을 담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본위의 열성은 하나님과 무관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돈을 마련해 가지고 교회를 세우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사회사업도 합니다마는, 이긴자 감람나무가 나타나면 일일이 주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게 됩니다. 그 구체적인 내막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보아서 잘 아실 줄 믿습니다. 나는 행동으로 여러분에게 이 역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입증해 보여 주었으며, 또 보여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