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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0.26본문
Part 01. 말씀의 향연
Chapter 10. 그릇을 준비하라
다른 분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나는 주의 지시에 의해 단에 서기까지, 은혜 받기 위해 무척 고생했습니다. 처음에는 성령의 불을 받고, 그 은혜를 간직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혈기 한 번 부려도 은혜가 떠나가 냉랭하므로, 그 은혜를 다시 받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리하여 간신히 은혜를 연결 받았다가 실수하여 다시 놓치고는, 또 매달려 겨우 붙잡고 하는, 은혜의 불연속(不連續)이 되풀이되기를 2년, 그 후부터는 향취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향취 역시 늘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곧 사라지곤 하여, 다시 매달리면 이번에는 생수가 옵니다.
다음에 향취를 받고는 또 놓치고, 이러기를 한두 해 하니까 이슬의 은혜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 단계도 역시 불연속을 이루어, 놓쳤다가는 연결되고, 연결되었다가는 놓치고 하다가, 다음 단계에 가니 비로소 은혜가 떠나지 않고 하루 24시간 내내 연결되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하늘에서 지켜 주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무진 고생 끝에 마침내 여러분에게 물 붓듯 부어줄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단 이 단계에 도달하면 다음에 이 손길을 통해 성령을 받은 여러분은 나처럼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됩니다. 즉 은혜 받기가 한결 쉽고, 쏟은 후 회복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언제나 부어주는 은혜의 파이프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극에서 극을 달리게 됩니다. 즉 은혜를 받았을 때에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힘쓰지만, 일단 은혜줄에서 멀어져 세상에 흐르게 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이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 많이 보기 때문에 구태여 상세히 설명드릴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왜 이런 폐단이 생길까요? 그릇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담으려면 우선 그릇부터 깨끗이 씻습니다. 만일 때 묻은 그릇이나 허드렛물에 헹군 정도라면, 아무리 맛좋은 음식을 담아도 구미를 잃게 됩니다. 은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거의 다 전에 큰 은혜를 받고 기뻐 뛴 경험들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지금 어디 갔습니까?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주님은 은혜가 떠나면 그 빈자리에는 일곱 마귀가 들어간다고 우리에게 경고했습니다.(마12:45) 무턱대고 은혜 받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가를 깨우쳐주는 말씀입니다. 즉 체계가 제대로 서지 않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모르고 은혜만 받아 놓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결국 주의 피를 모독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십니까? 우선 이것부터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은 것부터가 당신께서 영광을 받기 위해서 였습니다.(사43:7)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모든 인간 중심의 신학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동기를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그만큼 하나님께 갚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은혜는 빚입니다. 세상에는 ‘빚진 죄인’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야말로 ‘은혜 받은 죄인’입니다. 은혜 받았다고 뭣도 모르고 좋아만 했다가는 큰일 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5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종 세 사람에게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겨 장사를 하라고 일러놓고, 타국에 갔습니다. 그가 오랜 후에 돌아와 보니, 5달란트를 받은 자는 그 동안에 5달란트를 더 벌어 주인에게 내놓고, 2달란트를 받은 자는 2달란트를 더 벌어 주인에게 내놓았는데, 1달란트를 받은 자는 그 돈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그냥 내놓았습니다.
주인은 그를 책망하고 그 1달란트를 빼앗아 10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라고 일렀다는 이야기를 주님은 비유로 들고 있는데, 이 비유야말로 ‘은혜 받은 죄인’이 취할 바 태도에 대해 잘 설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그만큼 하나님(주인)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앞선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은혜의 창파 속에 젖어 기뻐하며금반지 금비녀 할 것 없이 다 바치고 법석을 떨었으나, 오늘날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남아 있는 사람보다 실망하고 떨어진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말씀으로 서 있지 못하여 덮어놓고 좋아하다가 은혜줄이 끊기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에 장본인은 한동안 감격해도 하나님께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그만한 대가를 요구하고 계시는데, 혼자 좋아서 기뻐만 하는 것은 1달란트를 받은 종이 그 돈을 땅에 묻었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내놓았을 때처럼 하나님께 아무런 보탬도 되지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신 것도 그렇습니다. 잃었던 에덴동산을 회복하려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낸 것이지, 인간을 위해 떡과 고기를 먹여 주고 병이나 고쳐주라고 보내신 것은 아닙니다.
신앙이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며,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기 싫은 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해야 하고, 하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요4:24)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령은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는 것이고, 진정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있어야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은 하늘과 땅의 합작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이긴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이긴자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긴자를 세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자랑할 것이 없는 것처럼, 이긴자에게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과 주께 돌려야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하늘에 돌려야 할 영광을 자기가 취한다면 그것은 큰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민20:10-12 참조)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님의 활동 무대를 스불론이나 납달리 지방으로 정하고 가난한 농부나 어부를 상대로 하늘의 도를 전하게 한 것처럼, 이긴자의 양떼도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입니다. 돈 많고 권세 있어 떵떵거리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오묘한 진리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하늘에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가운데 돈 많고 세도 있는 사람을 부를때에는 일부러 패가망신을 시켜 하나님을 찾게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본인에게 큰 불행 같지만, 실은 하늘의 큰 축복입니다. 오죽하면 주님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마19:24)고 말씀하였겠습니까? 그만큼 돈이나 권력은 신앙에 큰 장해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그들도 12보좌에 앉게 하겠다고 분명히 약속했습니다.(마19:28) 이것은 그만한 권세가 당신에게 주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말을 천사가 변경해도 저주를 면치 못한다고 했습니다.(갈1:8) 그는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직접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긴자는 양떼들에게 구원을 보장합니다. 하늘에서 그만한 재료가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양떼들을 말씀으로 다듬어 각자 그릇을 마련하게 하는 준비 기간입니다. 이제 그 단계가 지나면, 그릇이 마련된 사람에게 은혜를 본격적으로 부어주는 때가 옵니다. 말씀에 서기까지는 어렵지만, 은혜를 부어주는 것은 쉽습니다. 두고 보시면 알겠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이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