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Part 01 - Chapter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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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0.26
[5권] Part 01 - Chapter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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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1. 말씀의 향연   

Chapter 11. 승자와 패자


주님의 말씀을 상세히 검토하고 종합해 보면, 구원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7:21, 10:38, 13:24 참조) 그것은 요컨대 믿음에 행위가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행위 중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을 가장 큰 계명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도 남는 일이지만, 여기 저촉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간은 신의 지배를 받게 마련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마귀의 신, 즉 악령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란 하나님의 편에 서느냐, 마귀의 편에 서느냐하는 마당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계명을 어기면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대신 마귀의 신이 거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친 것입니다.(5:44) 이것은 사랑의 극치(極致), 여기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하늘의 도에 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초인간적(超人間的)인 능력, 즉 하나님의 신이 임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19:30)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였습니다. 만일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묵묵히 참지 않고, 천군 천사를 풀어 당신을 십자가에 매단 자들을 모조리 처단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주님은 패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묵묵히 참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23:34)하고 간구하였습니다. 이것은 원수를 사랑한 큰 본보기라고 하겠습니다.

 

이 주의 사랑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긴 것이 스데반이었습니다. 그는 사울(바울) 일당의 돌팔매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7:60)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 바울은 나중에 주의 품에 돌아와,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3:10)라고 사랑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을 살인으로 간주한 말씀이 지닌 깊은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요일3:15) 사랑은 큰 무기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합니다. 그러나 미움은 우리에게 패배를 안겨줄 뿐입니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주 앞에 설 생각을 마십시오. 그는 마귀의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느냐, 미워하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라집니다. 모세를 비롯하여 60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겨우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밖에 약속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요컨대, 이 사랑의 계명에 저촉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마귀를 사랑하는 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찍이 이 땅에서 요원의 불길같이 일어난 성령의 역사가 무참히 사그라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는 영도자의 잘못도 있지만, 하나님의 큰 은총 가운데 부름을 받은 자들이 형제를 미워함으로써 주의 피를 모독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는 일어난 지 13년 만에 하나님께 낙인이 찍히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하나님은 서서히 은혜를 거두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은혜를 갑자기 거두면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하나님은 서서히 손을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통하여 전무후무한 은총을 베푸시는 것은 의로운 하늘 군대를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만 되풀이하게 되면 그 종과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역대의 하나님의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맡은 사명이 따로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맡았으며, 바울은 할례를 폐지시키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전자는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후자는 소임을 다했습니다.

 

바울의 훌륭한 점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일단 사명을 맡으면 어떤 애로가 있더라도 이를 기어코 이루어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 제일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죽음을 앞에 놓고 한때나마 망설였을 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힘을 주신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22:43) 주님에게는 십자가를 지시는 수난에 비하면 다른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주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건 말건, 주님을 따르는 무리가 수만 명이건 한두 사람이건, 그것은 다 지엽적인 일이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호소하고 계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다.”(12:33).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악물고 이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나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고, 내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뺨까지 내밀어야 합니다. ? 이것을 하지 못하면 내가 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