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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1.25본문
Part 02. 진리 안에서
Chapter 12. 시험에 떨어지지 말라 (4)
4) 바울의 시험
역대 하나님의 사람 가운데서 제일 많은 시험을 겪은 분은 바울입니다. 그는 주님의 부름을 받은 후로 순교할 때까지 줄곧 시험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실로 바울의 행적에서,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크게 들어 쓰셨으며, 그의 사명이 얼마나 중차대(重且大)하였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런 큰 인물이기 때문에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거꾸러뜨리려고 그야말로 우는 사자같이 덤벼들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향하여 자기가 열심히 신봉한 유대교의 신도들에게 주님을 증거하기에 앞서 자기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나 이 성(城)에서 자랐으며, 율법사로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의 문하(門下)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에 의해 엄한 교훈을 받고, 오늘 당신네들처럼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던 사람입니다.”(행22:3)
말하자면 그는 학식이나 신앙에 있어서 남에게 본이 될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앞날이 촉망되는 젊은이로 명예도 지위도 약속된, 이를테면 순탄한 출세가도(出世街道)를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가 원한다면 처자식 거느리고 유명한 감독이나 율법사쯤 되어 평안히 잘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먹고 입을 걱정이 따를 리 없고, 그가 시험 같은 것으로 시달릴 까닭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가 주님의 특별한 사도로 부름을 받아 하루아침에 주를 증거하는 새 일꾼으로 전향하게 되자, 한 번도 편한 잠을 자보지 못할 정도로 들볶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말을 빌면, ‘수고를 넘치도록’ 했던 것입니다.(고후11:23)
그는 감옥에 무상출입을 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성경에서 읽는 그의 서신들 중 몇은 이 감옥에서 썼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번 곤장을 맞았으며, “도적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 가운데서 헐벗고 굶주리며, 떨며 늘 교회를 위해 염려”(고후11:26-28)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다 감당키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그는 실로 이러한 연단 속에서 “정금(精金)보다 희귀하게 되어”(사13:12) 자기 갈 길을 다 달려갔던 것입니다.(딤후4:7)
그는 이상 중에 하나님 앞에 불려간 영광을 차지한 사실을 14년 후에 이렇게 발설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14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고후12:2) 바울은 여기서 자기가 겪은 일을 제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듣는 사람이 의심할까봐 되도록 간접적으로 돌려서 표시한 것입니다.
여기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요컨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그가’에서 그는 바울의 육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혼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혼이 몸 안에 있었으면 산 것이고, 몸 밖에 있었으면 죽은 것입니다. 이때의 바울은 주님이 성령에 이끌려 시험을 당했을 때와 방불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즉 바울의 몸은 땅에 있고, 혼이 둥둥 떠서 하나님 앞에 가게 됩니다. 바울은 이 일을 무슨 보물단지나 되는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몰래 가슴에 품고 있다가, 14년이 지나 자기를 따르던 양떼들의 수가 많아져 자기 말이 잘 먹혀 들어갈 때에 비로소 조심스럽게 발설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때 하늘나라를 목격하고 주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가르침도 받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깊은 단계의 영적인 말씀을 많이 터뜨린 것은 이처럼 주님을 가까이하면서 여러 가지 계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고후12:2) 주의 종으로서 이상 중에 하늘나라에 가본다는 것은 가장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칫하면 자고(自高)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찌르는 가시’를 주셨습니다.(고후12:7) 이 가시는 누구나 얼른 알아볼 수 있는 육신의 결함을 가리킵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갈4:14)라는 말이 이것을 단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더구나 바울과 그 ‘자녀’(양떼)들을 이간시키는 데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갈4:17) 그래서 바울은 이런 자들의 농간으로 양떼들을 만나면 약해지기도 했습니다.(고후10:10) 이렇게 되면 자연히 바울도 사람을 만나기 싫어지고, 하나님의 사람과 양떼들 사이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찌르는 가시를 받았다는 것은 과히 명예로운 일은 못됩니다. 왜냐하면, 만일 바울에게 이런 가시가 없었기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적지 않은 지장을 초래할 약한 구석이 있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바울은 불우한 역경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기꺼이 순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지성소에 가 있는 역대 하나님의 사람 중에서 단연 수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역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도중하차를 당하고 만 분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이것은 모두가 그들이 세상으로 흘렀기 때문입니다. 즉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사람이 실수하는 것은 주로 돈과 여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점에서는 가장 모범적인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1등 공신(功臣)은 아무래도 하나님이 주신 가시를 꼽아야 할 것입니다. 이 ‘가시’는 그가 일생을 독신으로 지낸 이유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바울이 받은 시험도 없지 않았으나, 무난히 이겨나갔습니다. ‘가시’의 신세가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많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가 받은 은혜와 권능과 고난에 있어서 바울은 단연 타(他)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또한 양떼들에게서 받은 존경도 그렇습니다.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갈4:14) 이것은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한 말입니다.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고후12:19)고 말하는 바울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닥치는 시험은 바울 당대의 유가 아닙니다. 하긴 나라에 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 사람을 마구 잡아 가두거나 곤장을 안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여간 거세게 몰아치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도 미혹하려는 것이 바로 오늘의 실정입니다.
여러분은 옛날과는 달리 마음에 때가 많이 묻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순수성이 덜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바라는 좋은 조건입니다. 마귀는 바보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괴롭습니까? 불안합니까? 마음이 흔들립니까? 그러면 그것이 어디서 오는 무슨 농간인지 먼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저버리면 짜증이 납니다. 약해집니다. 마음이 시험에 빠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적(敵)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시험을 당한 끝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시험은 육적인 것이었으나,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영적인 시험이 따릅니다. 이것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