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Part 02 - Chapter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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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1.25
[4권] Part 02 - Chapter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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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2. 진리 안에서   

Chapter 12. 시험에 떨어지지 말라 (5)



5) 성도의 시험

사람의 일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곤고함과 수난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세상을 고해(苦海), 진세(塵世)니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한 세상에 남녀와 노소를 가릴 것 없이 각각 자기 나름의 힘에 겨운 짐들을 지고 가는 것이 우리의 일생입니다.

 

물론 우리는 환경과 여건에 따라 이 짐이 좀 가벼워질 수도 있고 또는 무거워질 수도 있기는 하지만, 주어진 이 고난의 멍에에서 아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짐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기 위해 기를 씁니다. 이것이 곧 우리 생활의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즉 괴로운 일은 되도록 피하거나 줄이고, 즐거운 일을 하려고 모든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즐거운 일은 극히 순간적인 반면에, 괴로운 일이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의 생애는 금세 지나가 버립니다. 그리하여 한 줌 흙으로 돌아가거나 재가 되어 훨훨 날아가게 마련입니다. 이보다 더 허무할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지으실 일이지.”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의 소견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런 세상을 원치 않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처음에 지으신 아담, 하와는 우리네와 같은 이런 죄 있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의 실수로 말미암아 이 땅은 저주를 받아땀을 흘리며 고생스럽게 살게 되었습니다.(3:19)

 

그 경위에 대해서는 이미 상세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죄악 세상을 회복하여 새 세계를 이룩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6천 년의 역사였습니다. 이것을 못하게 훼방하는 것이 곧 마귀입니다. 이 마귀의 간계에 대해서도 여러분은 많은 체험을 하고 있을 줄 압니다.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너희가 시험을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4:12-13) 베드로는 자기에게 닥치는 환난을 십자가의 고난에 비유하여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고난을 즐거워하라는 가르침은 그의 산 경험의 소산이라, 더욱 감명 깊게 들립니다.

 

우리는 여기서 즐거워하라는 말에 유의해야겠습니다. 베드로는 성도의 즐거움이 지닌 성격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컨대 고난 뒤에 누리게 될 그 나라에서의 영광으로 인한 희열(喜悅)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안이한 즐거움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고 따라서 기쁘지 않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순교입니다.

 

그러니 순교하여 하늘의 군대, 곧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상 이런 분들이 수두룩하였습니다. 바울 같은 분은 자진해서 더욱 많은 고난(시험)을 당하려고 했으며,(고후6:4) 야고보도 시험을 당하는 것을 기뻐했던 것입니다.(1:2) 이런 분들에게 죽음이 두려울 까닭이 없습니다.

 

이들은 다 사도들이지만,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속해온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저 네로의 광적인 기독교 탄압으로 말미암아 사자의 밥이 된 순교자들에서 오늘날 공산당의 총검에 쓰러진 순교자들에 이르기까지,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수는 아직 하늘의 군대를 편성할 수 있는 144천에 미달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그 나머지 인원을 단시일 내에 보충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여러분에게는 순교하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특별한 은혜 가운데 부름을 받은 성도들을 주의 피 권세로 씻어 세움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그 울타리 속에 거하는 여러분이 귀로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때와 장소를 잘 타고나야 하며, 또한 기회가 있을 때 은혜의 다림줄을 튼튼히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20:4 참조) 오늘날 여러분이 받는 이 은혜는 일찍이 유례없는 큰 성령의 역사이며, 여러분은 그 산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역사 가운데 거하고 있으므로 시험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물리치면 그만큼 여러분의 믿음은 자라는 것입니다. 즉 시험이 크고 오랠수록 여러분은 장성하게 마련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믿음이 자랄수록 시험이 큰 것입니다. 이긴자가 당하는 시험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긴자는 오랜 연단과 시험을 이겨야 하며, 그 후에는 주께서 지켜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긴자를 따라 그 반열에 설 때에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씻음을 받아 믿음이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천사가 지켜주는 것입니다.(12:7-11 참조) 그러나 그때까지는 고된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의 군대가 되어 저 마귀와의 마지막 일대 결전인 아마겟돈 전쟁에서 마귀를 능히 무찌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라야 이긴다.”(17:14)고 했습니다.

 

자기가 당하는 고난을 회피할 때 우리는 오히려 힘이 빠집니다. 따라서 기도의 목소리도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도 그랬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몇 시간 쓰라린 고난을 당하면 다시 사실 것을 아는 주님도 당신을 따르던 사람들 앞에서 무참히 당하기가 그토록 싫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육을 입은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물론 주님은 곧 생각을 가다듬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마는. 오늘날 주님은 영체이시고, 우리는 육을 입고 있습니다. 시험을 이긴다는 것은 말이 쉽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걸 이기고 또 이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주를 향한 뜨거운 호소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행 티켓(입장권)은 따놓은 걸로 알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오늘날 이 땅에서 이긴자를 통해 강력한 성령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을 받아 새 생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