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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1.25본문
Part 02. 진리 안에서
Chapter 13. 감람나무에 대하여 (1)
1) 감람나무의 유래
성경에는 감람나무에 대해 여러 군데 언급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감람나무는 상징적으로 인용된 것으로, 거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많은 성경 연구가들이 감람나무에 대하여 간과해 버리거나, 언급하더라도 그 해석이 구구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성경에 처음으로 감람나무에 대해 언급한 것은 창세기 8장 노아 때의 일입니다. 아담은 인간의 제1 조상이요, 노아는 제2 조상으로, 우리는 이 노아의 고사(故事)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모르면 노아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본의 아닌 오해를 하기 쉽습니다.
“물로 인간을 멸해 버리다니, 그런 무자비한 하나님이 어디 있담!” 하고 생각하거나, “아니, 하나님이 인간을 쓸어버려? 지으실 때는 언제고. 그건 일종의 자기모순이야.” 일리는 있지만, 이쯤 되면 참으로 외람된 망언(妄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선 하나님의 처지와 그 고충에 대하여 잘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홍수로 멸했는가? 여기에는 하나님으로서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것은 당신이 영광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사43:7) 그런데 인간을 지어 놓고 보니 당신께서 영광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을 통해 불영광을 받게 생겼던 것입니다. 왜? 죄악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생각과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함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사.”(창6:5-6) 여기서 말하는 죄악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좋아한”(창6:2) 것입니다. 즉 노아 때 벌써 음란죄가 큰 두통거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였다고 했습니다.
후회란 뉘우침을 가리키며, 뉘우침은 자기가 능치 못하다는 느낌입니다. 즉 그것은 전능의 반대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이 땅에서는 전능치 못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마귀가 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물로 멸하고, 의로운 노아의 후손으로 하여금 좀 더 깨끗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죄악과는 인연이 없는 당신의 나라를 되찾으려는 조치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대국적인 견지에서 여호와의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목숨을 그야말로 초개와 같이 다루시지 않나 하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노아의 홍수는 여호와께서 인류에게 역사하신 가장 큰 사건으로, 오늘날 아라랏 산에서 방주에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는 잣나무 널빤지가 발견되고, 홍수 이전의 도시들(가우라, 우르, 기슈, 라루사 등등)이 발굴되는 등, 고고학적(考古學的)으로도 입증되고 있지만, 이 홍수의 영적인 의미는 성령의 인침을 받은 눈이 아니면 읽어도 모르고, 인침을 받은 귀가 아니면 들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노아는 당시에 하나님을 남달리 공경하는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후로는 남이야 뭐라고 손가락질하건 묵묵히 행동에 옮겼습니다. 그만큼 강직하고 끈기 있고 또 지조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푸른 하늘 아래 태평세월을 구가하는 판국인데, 홍수가 난다고 큰 초등학교만한 배를 만들면서 날마다 법석을 해대니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었겠습니까?
아니 비웃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미친 사람으로 돌려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오직 이상 중에 받은 하나님의 지시 하나만을 철석같이 믿고 배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노아는 자기를 조롱하는 친척과 친구 그 밖의 이웃들에 대해 속으로 코웃음은 칠망정 화는 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조만간 홍수로 멸망당할 터이니까. 노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에 따라 아내와 아들 및 자부들만 홍수를 면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노아가 전도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가 이웃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도한 줄 알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선지자가 전도해서 한 사람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노아가 며느리만 보고 손자를 보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봤자 홍수가 앗아갈 터이므로 미리 단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요새 말로, 피임을 하도록 아들 내외들에게 철저히 일렀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노아 사이에는 새로운 언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노아의 직계 가족과 한 쌍의 모든 생물들을 통하여 세상을 새롭게 변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언약이나 방주의 규모나 구조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하나님과 노아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습니다. 배는 바다나 강가에서 만들어 물위에 띄우게 마련이지만, 노아의 경우는 방법이 좀 달랐습니다.
즉 노아는 바닷가나 강변에다 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육지의 허허 벌판에서 만들어 홍수가 나면 저절로 뜨게 했습니다. 그리고 짐승도 산 속에 들어가 쌍쌍이 잡아온 것이 아니라, 떼를 지어 방주로 몰려오는 것을 노아가 가려서 한 쌍씩 배에 넣었던 것입니다. 이것도 물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하게 되며, 또 그래야 합니다.
노아의 대홍수가 멎고, 방주에서 날려 보낸 비둘기가 맨 처음 입에 물고 돌아온 것이 다름 아닌 감람나무 잎사귀였습니다. 즉 감람나무는 물속에서 제일 먼저 햇빛을 본 나무였던 것입니다.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방주로 되돌아왔다는 것은 아직 지구 위에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주일이 지나 다시 방주에 있는 비둘기를 밖으로 내보냈더니 이번에는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물이 어지간히 가셔서 땅 위에 먹을 것이 있다는 소식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귀한 기름이 흘러내리는 감람나무를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는 상징적인 인물로 표시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호14:6, 슥4:12 참조) 이 감람나무는 주의 지시에 따라 택한 백성들을 죄의 홍수 속에서 건지기 위해, 영적인 방주 안으로 불러들이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