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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4.25본문
Part 02. 말씀의 갑주를 입고
Chapter 05. 이것이 이긴자이다(2)
3) 천사와 이긴자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나는 우상을 섬기는 집안에 태어나 예수라는 ‘예’자(字)도 모르다가 앞선 하나님의 역사에 부름을 받아 그 안에서 신앙의 잔뼈가 굵어진 사람입니다. 내가 주의 지지가 없다면 어디다 대고 감히 그 역사를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 두고보시면 알겠지만, 우리의 역사는 불원에 궤도에 올라 본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증인으로 삼고 말합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최고로 깊고 오묘한 역사, 아무리 강한 마귀의 세력도 무찌르는 역사가 베풀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결코 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주께서 아버지의 것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주의 것으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귀가 열려 내 설교를 듣거나, 눈이 뜨여 내 설교집을 읽는 사람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설교집을 보시면 은혜가 연결되어 그 말씀에 감동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이때 인간 이영수는 사라지고, 주님과 독자와의 교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일 앞선 하나님의 역사에서 은혜 받은 사람이 이 입술과 이 손길을 통하여 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가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테스트(시험)가 끝나 사실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환한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언제든지 직접 와서 보고 듣고 받고 하여 사실 여부를 즉석에서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은 사람이 달나라를 내왕하는 우주 시대이며, 인지가 발달될 대로 발달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부슨 재주로 지금까지 6년 동안 줄곧 새로운 말씀을 터뜨릴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일찍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약 200명가량 되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설교하신 것이 만민들에게 하신 말씀이었던 것처럼, 나는 이 단상에서 오늘날 전 세계 40억을 향해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내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또 귀를 기울일 때가 올 것입니다. 내가 이 단상에서 하는 말은 결코 이영수 개인의 말이 아니라, 바울의 말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갈1:12)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질투와 미움을 받아 애굽 땅으로 팔려갔으나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셨기 때문에, 결국 요셉을 팔아넘긴 형제들이 곡식을 구하러 요셉 앞에 와서 굽실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요셉은 저들을 알아보고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역사에 한 그림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를 미처 모르고 멋대로 떠들던 자들도 조만간 이 울타리 안에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섭리 속에 들어와야 비로소 마음의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계시록 7장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7:1-3)
본문에 나오는 네 천사는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권세를 갖고 있는데, 동쪽 해 돋는 데서 올라온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까지 지구를 해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을 친다는 말씀은 하늘 군병으로 인정받는 일로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만 4천이니.”(계7:4) 인 치는 천사가 하늘 군대의 수 14만 4천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인을 치며, 그 수를 채울 때까지 바람을 붙들고 있는 네 천사에게 지구를 해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 군대가 완전히 편성되어야 비로소 네 천사가 지구를 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가 말세입니다. 그러므로 이 네 천사가 움직이지 않는 한, 지구는 영원히 태양의 주위를 돌아가게 마련이며, 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워도 엄밀한 의미에서 말세는 아닌 것입니다.
위에 열거한 성경 말씀은 사도 요한이 주님의 계시를 받고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하나님의 선민들로 구성된 이 일곱 교회 안에서 이긴자가 나타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늘 군대의 수는 이긴자가 땅에서 채우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계3:12, 14:16 참조)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주께서 원하시는 이긴자는 이 일곱 교회중에서 나타나지 않았으며, 따라서 주님은 당대에 재림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긴자가 나타나면 ‘해 돋는 데서 올라온 천사’와 힘을 합쳐 하늘 군대를 급속도로 배출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양자(兩者)는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즉 해 돋는데서 올라온 인 치는 천사는 이긴자에게 인 치는 여건, 다시 말해서 하늘 군대가 배출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이긴자는 하늘 군대를 배출시켜 천사에게 인을 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인 맞은 자의 수는 이 천사가 제일 잘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명단은 당연히 이긴자에게 알리게 되어있습니다.
이 천사가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하고 자기가 하는 일을 복수(複數)로 표시 한 것은 이처럼 이긴자와 긴밀한 합작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인을 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하늘 군대 14만 4천이 차게 되면 이긴자는 본문에 나오는 네 천사에게 통고하며, 이때 네 천사는 자기가 맡은 소임을 다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환란을 일으켜 지구를 송두리째 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년 세계가 이루어지기 직전의 환란이며, 계시록은 이때의 시작을 가리켜 “여섯째 인을 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계6:12-17 참조)
네 천사가 일으키는 환란은, 바꿔 말하면, 마귀에 대한 대대적인 도전입니다. 그런데 왜 14만 4천이라는 하늘 군대의 편성을 마쳤을 때 비로소 네 천사가 이렇게 움직이게 될까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것은 마귀의 왕초가 아니라 그 부하입니다.(눅4:6 참조)
그러므로 그 왕초인 용까지 능히 소탕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병력이 찼을 때 크게 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마귀에 대한 본격적인 소탕전인 아마겟돈 전쟁 이전의 일입니다.
그럼 이긴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하늘 군대가 전혀 생겨날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 치는 천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들 속에서 하늘 군대의 자격자를 찾아내어 인을 칩니다. 요컨대 순교자들이 이에 속합니다.(계20:4) 이 작업은 인 치는 천사가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 사천 년 가까이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사람들이 성경에만 의존하여 겨우 불의 성령이나 받고 하나님을 공경할 뿐, 하늘의 특별한 은총 가운데서 신앙을 키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이래라 저래라 일일이 간섭해도 될까 말까 한데,
이런 지시가 전혀 없이 어떻게 그 영광의 반열에 서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몇 명, 독일에서 몇 명…, 이리하여 결국 하나님을 부르는 자는 무수히 많지만, 인 맞은 자는 얼마 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긴자가 나타나면 양상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하늘에서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단시일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을 칠 수 있도록 재료(은혜)를 제공해 줍니다. 이에 대해서는 계시록 2장과 3장에 걸쳐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이것이 실제로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천국 인을 치는 큰 역사를 일으킬 이긴자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나타나기를 원했으나, 그렇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나타나면,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4)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 나라에 이스라엘과 같은 특혜(特惠)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긴자의 특혜를 받는 자들을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전자는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환도뼈가 휘도록 천사와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후자는 이긴자가 나타났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긴자가 나타나면 인 치는 천사는 나라와 족속과 백성들 가운데 돌아다니면서 인 칠 사람을 찾던 번거로운 일을 중단하고, 이긴자와 행동을 같이하면서 인 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즉 온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곱 눈이 박힌 ‘한 돌’(슥3:9)의 역할을 ‘이기는 자가 받는 흰 돌’(계2:17)이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수보하는 종으로서의 이긴자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修補)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58:12) 하나님의 역사에는 빈틈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마귀가 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하나님은 이를 교묘히 물리치고, 결국은 당신의 계획을 착착 진행시켜 나갑니다.
설사 한동안 형세가 불리한 듯하여도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승리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컨대 여호수아의 시대나 다윗의 시대, 바울의 시대도 그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큰 경륜을 펴나갈 때에는 으레 이들 수보하는 종을 대비해 두었다가 그를 내세워 기어코 당신의 뜻을 이루고야 말았습니다.
이들의 앞선 종 모세나, 사울, 그리고 베드로는 저마다 혼자서 그 사명을 완수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웠던 것입니다. 대적하는 마귀의 세력이 그만큼 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다윗과 바울을 수보자로 삼아 그 뒷수습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긴자의 시대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으며, 이 역사가 수보자에 의해 마무리지어가고 있다는 것은 그 섭리 안에 동참한 여러분이 그 동안 수많은 신앙 체험으로 익히 알고 계실 줄 생각합니다.
이긴자는 두 감람나무를 가리키며, 계시록에 이긴자가 단수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두 증인’이 세대교체를 하여 각자의 시대에 독자적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감람나무 역사도 영적인 씨를 뿌리고 그 수확하는 역할과 사명은 각각 달라도, 하늘의 계획은 빈틈없이 이루어져가고 있습니다.
이 역사는 하나님의권위를 위해서도 반드시 소기의 성과를 올려야하며, 또 하늘에서는 그렇게 되도록 뒷받침을 하고 있습니다. 즉 권능과 은혜와 말씀에서 다른 어느 시대에서도 유례를 볼 수 없는 혜택을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어느 종들도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걸쳐 이긴자만큼 종합적으로 상세히 그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다만 단편적으로 지시를 받고 역사하는데 그쳤습니다. 하나님은 마귀와의 대결에서 작전상 그만큼 당신의 섭리를 숨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막연히 하나님을 열심히 공경하다가 숨을 거두면 그 품에 안기려니 생각하고 있었을 뿐, 자기가 가는 그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 하늘나라에 대해 알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창세기에서 계시록에 걸쳐 감추어둔 여러 군데 빈 공간을 채워 말씀에 튼튼히 서게 하고, 여러분이 직접 받아서 잘 알고 계신 바와 같이, 전무후무한 성령의 은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에서 큰 은총을 입었다가 쏟은 후에 7배나 악한 죄의 구렁텅이에 빠져(마12:45 참조) 믿지 않는 사람보다도 못한 비참한 처지에 이른 자들을 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낌없이 은혜를 주신 9만 명 중에 은혜에서 떨어져 어둠 속을 헤매는 자들이 수두룩하니, 이들을 건져서 하나님 편에 세우고 이 역사를 마무리 지으라는 지시를 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뛰었습니다.
이긴자란 보혈의 권세로 온전히 죄의 씻음을 받아, 마귀가 다시는 범접을 못하도록 성령이 불담으로 지켜주는 주의 종으로, 은혜를 뭇 성도들에게 물 붓듯 부어주어 하늘 군병의 일정한 수를 채워야 하는데, 이것이 실제로 되지 않으면 그는 아무 존재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이긴자란 어떤 여건 속에서도 마귀에게 사로잡혀 은혜가 끊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긴자가 여느 성도들처럼 못 갈 데 가서 씌운다거나, 부정한 음식을 먹고 빌빌거린다면 죄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긴자가 이처럼 허약하다면 우선 하나님부터가 불안하여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이긴자를 광물로 비유하면 금강석과 같습니다. 쇠붙이는 연탄가스에 녹이 슬지만, 금강석은 녹이 슬지 않습니다. 인간 금강석을 쇠붙이처럼 녹스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이긴자는 언제나 이긴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사명을 감당케 하려면 그만한 보장을 해 주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의 예언자라면, 사도 요한은 이긴자의 예언자입니다. 예언자가 그 주인공보다 크지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은 마치 오픈 게임이 본 게임보다 보잘것없고, 예고편이 본편보다 재미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러분은 거의가 아직 이긴자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가슴으로 절감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무리를 향해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다.”(마13:17)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면 여러분은 실감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기독교 역사상 유례가 없는 큰 은총 가운데 부름을 받았지만, 아직도 거의가 그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가끔 이상 중에 여러분이 예배드리는 광경을 보기 때문에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꾸준히 달리는가 하면, 어떤 분은 파도처럼 믿음에 기복이 심합니다. 그리하여 6개월 전에 앞장섰던 사람이 어느새 뒤로 처지고, 뒤로 처진 사람이 얼마 후에는 앞장서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앞선 이긴자의 역사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갖고, 믿음을 잃은 자들을 수보해 세울 것을 나중 이긴자에게 당부하신 것은 당신이 베푼 특별한 은총이 헛되이 짓밟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가 마귀에게 크게 손상되었을 경우에 쓸어버리고 새 역사를 베푸는 방법도 강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세 시절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등졌을 때, 하나님은 저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모세를 새로운 믿음의 조상으로 내세워 그 후 손들을 선민으로 삼아 역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출32:10 참조) 이때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시키려고 인도해 내었다고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32:12) 이때 하나님은 모세의 간곡한 기도에 응답하여 뜻을 돌이키셨던 것입니다.
내가 이 역사를 처음에 시작할 무렵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노를 풀어드려야 한다고 외친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잘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다 헛수고에 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너를 따르는 내 백성들이 기특하다.”는 말씀이 내려오면 우리의 역사는 저절로 발전할 것이고, “너를 따르는 백성들이 왜 그 꼴이냐?” 하고 책망이 내려오면 우리의 역사는 자연히 가로막히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에덴호’라는 한 배에 탄 믿음의 형제로서 피차에 연대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늘 기도하는 가운데, 약한 자가 있으면 붙들어 주고, 미처 모르는 자가 있으면 일깨워 주며, 주저앉은 자가 있으면 일으켜 세우면서, 내가 아니면 이 역사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심정으로 각자 자기 위치와 부서에서 주의 일을 위해 달려야 합니다.
죽어가는 남의 심령을 구원의 방주 안으로 인도해 들이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믿음 안에서 불이 붙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불붙어 뜨겁게 달아오르려면 이 역사를 똑바로 아는 것이 선결 문제입니다. 이 역사가 무슨 역사인가에 대해서는 성령이 오랫동안 이모저모로 보여 주고 들려주고 가르쳐 주었지만, 그래도 아직 잘 깨닫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이긴자를 아십니까? 아마 그 동안 받은 은혜로 대충 짐작은 갈 것입니다. 그러나 알기는 아는데 아직 가슴이 뜨겁지 못하고 손발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 것은 머리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알아서 믿음을 얻게 되고, 그 믿음이 행위로 옮겨질 때 비로소 알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긴자를 알고 계시다면, 그에 대한 모든 걱정은 주님께 맡기고, 여러분은 오직 그 은혜를 믿음의 양식으로 삼고 묵묵히 따르십시오. 그리고 꾸준히 전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올바른 신앙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