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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4.25본문
Part 03. 새벽별이 빛날 때
Chapter 07. 하나님과 모세
구약 시대에 처음 예언한 선지자는 모세였습니다. 그 이전의 하나님의 사람들, 즉 에녹이나 노아, 아브라함 등은 예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언약만 맺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선지자는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리할 수 있는 권능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으나, 광야의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말을 순종하기는커녕 불평이 대단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큰 불평은 인간의 2대 욕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애굽을 나온 지 한 달 만에 애굽에서 갖고 온 식량을 다 소비해 버리고 굶게 되자, 하늘에서는 만나를 내려 그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이 만나는 날마다 아침 이슬이 내릴 때에 하루치의 식량이 될 만큼 내렸습니다. 한꺼번에 여러 날 분을 주면 백성들이 게을러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치리(治理)는 이렇게 빈틈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늘에서 주는 그런 양식을 날마다 받아먹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려 주는 만나도 처음 얼마동안은 신기하기도 하고, 또 맛도 고소하고 달짝지근하여 먹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무척 고맙고 감격스러웠으나, 날이 가고 달이 가서 해가 바뀌는 동안에 차츰 시들해지고 나중에는 먹기 싫어지고 짜증이 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양식은 인간의 정욕을 점점 쇠퇴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육과 가까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인간의 2대 욕망이 감소되어 살 재미가 없었습니다. 가정에서는 내외간에 의가 상하여, 당신 때문에 이 지경이라는 둥, 모세 그놈의 말에 귀가 나발 만해 고스란히 속았다는 둥,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화살은 자연히 모세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이러다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다 죽겠다. 이 고생을 시키려고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느냐!” 하고 툭하면 모세를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막에서 식구들끼리 울며불며 떠들어대는 소리를 여호와께서 듣고 크게 노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고했습니다.
“주님, 어찌하여 저는 이런 꼴을 당해야 합니까? 차라리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제가 이 사람들을 낳았습니까? 저는 혼자서 이 사람들의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민11:11)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세의 하소연이자 트집이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장로와 유지들 70명을 모이게 하여라. 내가 그들에게도 권능을 주어 네 짐을 나누어 담당하게 하마.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한 달 동안 고기를 먹여줄 터이니 그런 줄 알고 미리 알려라. 너희 중에 함께 거하는 나 여호와를 멸시하고, 애굽에서 나온 것을 후회하며 떠들어대니, 될 말이냐?”(민11:16-20 참조)
모세는 놀랐습니다. “이 백성 가운데 제 발로 씽씽 걸어 다니는 장정만 해도 60만이 넘는데, 어떻게 한 달 동안이나 고기를 먹일 수 있단 말씀입니까? 세상의 양과 소를 다 잡고, 바다의 물고기를 다 쓸어모아도 안 될 줄 아옵니다.”(민11:21-22)
여기서 우리는 의아한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홍해도 가른 모세가 이 얼마나 얼빠진 반문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알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합니다.
“모세야, 나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안 된다는 거냐? 그럼 내 말이그대로 응하는지 두고 보아라.”(민11:23) 모세는 코가 쑥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백성들에게 이 말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기는 했으나, 정말일까 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 70명을 장막 근처에 불러 세우자, 언약대로 이들에게 성신을 주어 능력을 행하게 했습니다. 이 능력은 물론 모세에게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비유해 말하면, 모세는 바다를 갈라놓을 수 있었으나 이들은 개울이나 갈라놓을 정도라고 할까요.
하나님께서 예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막 근처에 강풍으로 메추라기를 날려 보냈더니, 힘깨나 쓰던 자들은 더욱 욕심을 부려 많이 주워 갔습니다. 이들이야말로 모세에게 앞장서서 원망을 하던 불평분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재앙을 내려 이들로 하여금 식중독에 걸려 고꾸라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한 번 본때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노하신 ― 더디 노하
시지만 ― 하나님의 한 측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자비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屬性)에서 이러한 양면(兩面)을 아울러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일방적으로만 알았다가는 나중에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하리라.”(출32:9-10)
여러분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은 공의로운 줄 알았는데, 왜 당신의 선민과 이방인들 사이에 그렇게 엄청난 차별 대우를 하실까? 똑같이 당신이 지으신 아담, 하와의 후손들인데….” 하고 의문을 품는 경우가 간혹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착해서 예뻐하시고, 이방인이 악해서 미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착하고 악한 것은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에게 특별히 관심을 갖고 일일이 간섭하시면서 큰 은총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에게 경륜이 따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마귀를 완전히 무찌르고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 전략상 선민을 택하여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의 언약(창17:8)을 이행하기 위해 세운 종이 모세였습니다. 그는 어느 의미에서는 전무후무한 종으로, 이적과 기사는 주님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일단 언약을 맺으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표징’이 바로 할례이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할례를 받을 것을 당부했습니다.(창17:10)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땅히 할례를 받아야 하며, 할례를 받지 않은 자는 하나님께 아무리 정성껏 제사를 드려도 상달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제사는 아무 효력도 발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무할례자의 제사도 받아들이려면 과거의 언약을 일단 폐기해야 합니다. 이 언약을 폐기시킨 분이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맺은 언약은 계명이며, 모세는 두 가지 언약, 즉 할례와 계명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만일 모세가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범죄가 되며, 이에 따르는 책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이책벌 중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언약의 폐기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위기에 직면한 것을 앞에 인용한 본문 말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하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새로 당신의 백성의 조상으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내세운 하나님께서 왜 모세에게 이런 폭탄선언을 하게 되었을까요?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10계명을 받기 위해 40일 동안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절하는 주책을 부렸던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큰 죄를 저질렀으니,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선언대로 모세로 큰 나라가 되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모세의 한 가족만 제외하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조리 진멸하는(출32:10)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고스란히 폐기되고, 모세를 통하여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크게 당황하였습니다. 오랫동안 광야에서 자기와 고락을 같이해온 믿음의 형제들이 하루아침에 흙으로 돌아갈 참상을 생각하니, 너무나 끔직하여 가슴이 미어질 듯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분노를 그치시고 그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출32:11-13)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런 내용의 기도를 할 줄 아시고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고 미리 당부했으나 그래도 호소하는 모세의 이기도를 들으시고는 뜻을 돌이키고 당신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만일 모세가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하나님께고하였던들 일은 그것으로 끝장이 나는 겁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미흡한 점도 없지 않았으나, 이런 점에서는 위대한 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지시대로 금송아지의 소동을 부린 무리 3천 명을 골라내어 목을 자르고,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 죄를 사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만일 자기 기도를 받아 주지 않으시려거든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 달라고 했습니다.(출32:32) 그러니까 이 말은 모세가 하나님의 종노릇을 못하겠다는 생떼요, 최후통첩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을 지시하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연대책임을 물어 서서히 그 죄를 보응하겠다고 일렀습니다.(출32:34) 모세는 이것까지는 말리지 못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헤맨 끝에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다 광야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같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물론 주께서 중보의 역할을 하시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한결 원활하게 되었지만, 치리의 원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이상 중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역사에 동참하여 주의 피를 모독한 백성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류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처음 이 단상에 섰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노를 풀어드려야 한다.”고 여러분에게 호소한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의 노를 풀어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