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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6.27본문
Part 04. 우리도 이기리
Chapter 17. 우리의 할 일(1)
1) 모세와 여호수아의 교훈을 거울삼아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지난 육천 년 동안 역사해 왔으며, 이제 하나님께서 이를 마무리 짓는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 땅에 두 증인, 곧 이긴자를 보내어 당신께서 예고하신 말씀 그대로 마지막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에 대해 여러 차례 성경적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으며, 또한 성령이 이를 입증하고 있으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잘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내세워 역사할 때에는 언제나 요구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과 그를 따르는 성도들은 하나로 뭉쳐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이 요구를 이루면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렇지 못하면 노여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빤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면 안 될 듯한 일도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노엽게 해드리면 될 듯한 일도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특징입니다. 즉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가 되지 않아 걱정하십니까? 걱정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만 하면 저절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랑으로 뭉치지 못하고 형제를 미워하고 비방이나 한다면 날마다 점심을 싸들고 전도하러 뛰어다녀도 헛수고에 그치게 됩니다. 전도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니, 여러분도 이 점을 크게 염려해야 합니다. 앞선 역사가 왜 오늘날 저 꼴이 되었습니까? 그들에게 사람이 모자랍니까? 교회가 없습니까? 돈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여건은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이 되지를 않습니다. 지도자와 추종자들의 움직임이 아름답지 못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일관된 철칙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이스라엘의 젊은 2세들을 인도하는 방법이 모세와는 딴판이었습니다. 즉 여호수아는 모세보다 한결 리더십을 발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모세를 따르던 장년들이 광야에서 다 늙어 죽은 다음에 세우심을 받은 영도자로서 모세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였습니다. 그는 모세와 그를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까닭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으로 맞이한 큰 장애가 이 방의 군사기지인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여호수아는 장정들에게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6일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이들은 모세를 따르던 백성들의 경우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들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고 없는 동안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절하면서 법석을 떤 것은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께 큰 범죄가 되는지 미처 몰랐기 때문에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금송아지를 떠받드는 것이 잘 하는 일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툭하면 불평을 터뜨린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고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무지의 소치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수아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휘하의 제 2세대에게는 무엇보다도 순종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묵묵히 따랐으며, 이 때문에 약속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 응분의 자기 분깃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이들에게 정신 무장을 철저히 시키지 않았던들 여리고 성을 하루 이틀 돌다 말고 불평을 터뜨렸을 것입니다. “적을 쳐부숴야지, 왜 돌기만 하느냐?”, “괜히 물자와 시간만 낭비하지 않느냐?”, “싸우지 않을것을 뭐 때문에 무장을 했느냐?” 등등 저마다 한 마디씩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결과는 뻔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를 따르는 저들은 모세 때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묵묵히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사는 길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싸움에 대한 작전 내용은 알지 못했으며, 또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여호수아만 아는 일이었습니다. 이 경우에 여호수아는 그 내용을 섣불리 백성들에게 발설할 수 없었습니다. 적에게 누설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는 오직 순종만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하면, 네 빛이 암흑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다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사58:9-11) 이 말씀은 비단 이사야 선지자 신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오늘날 앞선 역사의 큰 은혜 가운데 접어들었다가 실망한 나머지 손가락질과 허망한 탄식 소리를 내는, 은혜에 주린 자와 믿음이 식어 괴로워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들의 심정에 다시금 은혜로 감동을 주고 그 빈 마음을 채워, 만족케 하여 생명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 은혜 가운데 젖어 그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을 받아 사랑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덕을 세우고,”(고전8:1)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으며,”(벧전4:8)
“사랑은 이웃에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롬13:10) 무엇을 보았다, 무엇을 받았다, 무엇을 맡았다 ― 다 소용 없습니다. 은혜를 받고 못 받은 것은 오직 사랑이 있느냐, 있으면 얼마나 있느냐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사랑이 충만하면 은혜를 받은 연고요, 사랑이 메마르면 은혜를 받지 못한 소치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은혜, 은혜 하는 것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사랑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신앙인이 될 수 있으며, “영혼을 만족케 하고 뼈를 견고케 하며 물댄 동산 같을”(사58:11) 수 있으며,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사58:12)라는 말씀이 응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 액면 그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의 일이라도 이것이 되지 않으면 주께서 굳이 역사할 필요가 없으며, 모든 것이 헛수고에 그치고 맙니다. 기껏 고생하고 하나님의 기억을 받지 못한다면 그런 억울할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앞선 역사를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희생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다시는 앞선 역사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과거의 모든 선지자들이 부러워하고 기대하는 큰 은총 가운데 부름을 받고도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미지근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우선 그릇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즉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지녀야 할 마음의 기본자세입니다. 전도도 좋고 주의 일에 열성을 내는 것도 좋지만, 이런 바탕이 먼저 마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백성들이 덕을 끼칠 때 힘이 솟아나고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기어코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날 주의 종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듯이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 단상에 서서 외친다 하더라도 똑같은 말씀이 나갈 것입니다. 나는 다만 주님의 나팔 노릇을 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이 큰 역사 속에 들어와 과연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지 깊이 반성해 보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근심케 한 일이 있습니까? 회개하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은 적이 있습니까? 선으로 갚으십시오. 믿음의 형제끼리 맺힌 응어리가 있습니까? 푸십시오. 하기 어려워도 하십시오. 그것이 주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그것이 주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날까지 6년 동안이 역사를 위해 청춘을 바쳐왔으며, 앞으로도 바칠 것입니다. 주의종이 자기를 희생시키면 많은 사람이 살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 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