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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0.19본문
Part 04. 우리도 이기리
Chapter 17. 우리의 할 일 (2)
2)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자
기독교는 어떤 이념(理念)이나 교리, 또는 교훈에 그치지 않고, 성령에 의해 영계와 부단히 교류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 예를 이사야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의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정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사4:1-4)
이 말씀에서도 우리는 살아서 역사하시는 여호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어느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외적의 손에 붙여 많은 사상자를 내겠으며, 이로 말미암아 혼기를 잃은 처녀들이 무더기로 한 남자에게 가서, 먹고사는 것은 손수 마련하겠으니 명색으로나마 자기를 아내로 삼아, 처녀 귀신이 되는 수치나 면하게 해달라고 애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예언은 이사야 당대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이방 앗수르의 손에 붙여 그런 참화를 당하게 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이처럼 무자비하게 치셨을까요? 당신께서 아끼는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方伯)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에 흘러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을 하고, 시온의 딸들은 음탕하고 사치에 빠졌기”(사3:15-16)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사야의 입장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통고를 받는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 죄송하고 두려워 몸 둘 바를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의 백성을 쓸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난리 중에도 “예루살렘에 생존한 자 중에서 녹명된 사람들”(사4:3)을 깨끗이 씻어 ‘거룩하다’ 칭함을 얻게 하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라, 건설을 위한 파괴를 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살아남은 자는 믿음이 독실하여 하나님의 은총 아래 환란 가운데 건짐을 받아 그 명단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녹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난리 중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 7천 명을 남긴 옛일을 상기하게 됩니다. 당시에 엘리야가 우상을 섬기는 왕비 이세벨의 핍박을 받아 동굴에 숨어 하나님께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壇)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다 죽이고”(왕상19:14) 오직 자기만 남았다고 하자,
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7천을 남기리니”(왕상19:18) 하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심원하여, 인간의 머리로는 이루 다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육적 이스라엘 백성을 치리하신 한 장면이지만,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식도 원칙적으로 동일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세상에 매여 자행자지(自行自止)함으로써 기대에 어긋났을 때, 환란을 일으켜 당신의 백성 중에서 녹명된 자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조리 쓸어버리는 조치를 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이 입에서는 달지만, 배에서는 쓰게 되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아 다시 예언할 경우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계10:10-11 참조)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다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일을 다시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움직임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있고, 빼앗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엄숙한 현실을 주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뽑힘을 받아 거룩하게 된 수가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 수가 많이 배출되면 하늘에서 더러움을 씻는 생명수의 샘물이 넘치도록 흘러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총을 아낌없이 내려주시도록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뜨겁게 공경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명목상으로나마 남편이 되어 달라고 애걸하는 그런 비참한 광경은 벌어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차츰 궤도에 오르고 있으므로 내년쯤가면 하나님께 좀 더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크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제사(예배)를 기꺼이 받으시고 새로운 지시를 계속해서 주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의 움직임은 이처럼 긴밀한 함수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까이 하시는 것입니다.(약4:8) 서로 이해하고 협조해 나가면 우리의 역사는 반드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