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Part 04 - Chapter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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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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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4. 우리도 이기리 

Chapter 18. 신앙은 싸움이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종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지난 육천 년 동안에 당신의 사람을 통하여 그때그때 하시고자 하는 일에 대해 새로운 지시를 내려왔으며, 또 지금도 내리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시대에 따라 이모저모로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979년 현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처음에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데 앞장섰던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이천 년 이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상대로 하신 가르침으로, 그들이 알아듣기 쉽게 표현한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오늘날과 같이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시대에 오셔서 역사하셨다면 당연히 오늘의 우리에게 적합한 말씀을 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의 내용도 상당히 달랐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에는 마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가려놓은데가 적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계시록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께서 이상 중에 보여주시는 것을 그대로 기록했으나, 주님은 순서대로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을 알기 어려운 원인의 하나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앞뒤를 맞춰서 풀이하지 않으면 알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한줄기를 잡으면 딴 줄기가 나오고, 한 매듭을 풀면 다른 매듭에 얽히고 하여 여간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맞게 연결지어 놓을 때, ‘머리는 여기고 꼬리는 저기라는 식으로 비로소 전체의 뜻이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경 말씀을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성령의 검으로 자기를 튼튼히 무장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마귀를 향해 권능을 행사하실 때 인간을 필요로 합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내세워 적을 꺾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우리를 당신의 은총 가운데 불러들이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신앙 자세가 올바로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십자가의 군병이 되어 주기를 원하고 계신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생스럽더라도 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즉 영을 무엇보다도 귀히 알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16:24)는 주님의 당부는 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대가가 무엇이냐? 우리는 베드로처럼 이렇게 물을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19:27) 해답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대가를 받으려면 우선 하나님의 섭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주인을 만나지 못한 농부는 그의 포도밭에서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며, 따라서 그 보수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께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러 세상에 오셨을 때 제사장이나 서기관들도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다만 주님은 하나님의 새로운 뜻을 전하고, 저들은 하나님의 옛 뜻을 전한 차이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새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옛것에 충실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이런 요구가 계신 것은 요컨대 마귀를 무찌르기 위한 전술의 일환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모로 인간에게 역사하시는 궁극의 목적은 마귀의 섬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도 이 하나님의 목적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뜻대로 살게 하려고 불러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 뜻대로 산다고 하면서도 자기를 위해 사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위한다면 자기 몫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을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귀가 주는 올무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쉬운 예수를 믿다가 마귀의 밥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라는 것을 다만 머릿속으로 믿고 슬슬 따라만 가면 구원을 얻으려니 하고 마음을 턱 놓고 있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의 싸움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적이 누구냐고요?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마귀가 적입니다. 여러분은 이 싸움에서 자기가 번번이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자기를 반성하고 회개하고 시정해나가는 것도 일종의 싸움입니다.

 

여러분은 우선 예배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즉 만사를 제쳐놓고 예배에 반드시 참석하는 성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이처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 나머지 주의 일은 자동적으로 하게 마련입니다.

 

예수를 계산하면서 믿지 마십시오. 마리아는 주님으로부터, 당신께서 얼마 후에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살을 깎아서 모은 값진 향유를 아낌없이 주님의 발에 들이부었습니다. 마리아는 저분이 세상에 안 계신데 내가 살아서 무엇 하랴 싶었던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아니 저 비싼 향유를 발에 붓다니!”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특히 유다는 마리아를 미친년 취급을 하고 항의까지 했습니다. 그 향유를 팔면 적어도 300데 나리온은 문제없이 받을 텐데, 그 돈으로 가나한 사람을 구제하면 얼마나 좋으냐고 말입니다. 유다로서는 이치에 닿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리아의 중심을 들여다보시고 가상하게 여겼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위해 자기 소유를 아낌없이 바치고, 유다는 앞뒤를 재었습니다. 만일 마리아가 유다처럼 재산을 앞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향유를 주님에게 바치지도 않았을 테지만, 바쳐도 공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진심에서 우러난 충성만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