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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0.19본문
Part 05. 진리의 등대
Chapter 28. 수난과 대속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요10:35-36)
이 말씀을 읽을 때 오늘날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들리지만, 주님 당시에는 참람된 말의 정도를 넘어서 ‘웃기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예수가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그처럼 귀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이 말 한 마디 때문에 주님에게 돌팔매를 던지고, 침을 뱉고, 끝내는 십자가에 매달기에 이르렀습니다.
주님은 물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기 위해 죽은 사람을 살리고, 물 위를 걷고, 떡 두 덩어리와 물고기 다섯 마리로 5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게 하시고, 무수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문둥병이 낫는 등, 여러 모로 희한한 권능을 행하여 보여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도 매우 신령하여 아무도 감히 책잡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산더미같이 몰려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주님을 위대한 예언자나 선지자 정도로 알았을 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째로 주님은 가문이 좋지 않았습니다. 즉 주님은 대대로 제사장의 직분을 맡아온 명문인 레위 지파의 출신이 아니라 유다 지파의 출신이었습니다. 둘째로 주님은 태어나기는 성경에 미리 예언한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지만, 줄곧 나사렛 동리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사렛 사람으로 통하여 성경과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셋째로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기 전에 길 예비자가 먼저 오게 되어 있는데, 당시에 세례 요한이 길 예비자인 줄 저들은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비성경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넷째로 주님은 율법(모세)을 무시하고 파격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제사장이나 서기관, 바리새인 등 소위 당시의 세도가들은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도 막상 그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깃들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뭇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 대접을 받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으로 오인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하나님은 마귀와의 싸움에서 주의 피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대뜸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고 받들도록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미리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한 바가 있었습니다. 즉 주님은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 조금도 흠모할 만한 것이 없고, 오히려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버림을 받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사53:2-3) 그러나 당시에 제사장들도 여기까지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적, 기사만 해도 그렇습니다. 주님은 물론 놀라운 권능을 행하였지만, 이런 희한한 능력을 보여준 선지자는 주님 이전에도 얼마든지 있었던 것입니다. 즉 지팡이로 홍해를 가른 모세도 있었고, 태양을 멈추게 한 여호수아도 있고, 죽은 자를 살린 엘리야도 있고,(왕상17:21) 보리떡 20개와 한 자루의 채소로 백여 명을 먹이고도 남게 한 엘리사(왕하4:43)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이적과 기사도 저들에게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일 만큼 결정적인 작용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스스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한다고 해서 저들이 “참람된 말을 한다.”고 공박한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은 주님이 위대한 선지자라면 납득이 가지만, 하나님의 아들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이 당신이 누구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주님을 3년 동안 가까이 따라다니면서 주님의 모든 언동을 직접 보고 들은 제자들까지도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긴가민가했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더 말해 무얼 하겠습니까?
주님이 어떤 존재임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목숨을 내걸고 주님을 증거한 후의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안 하는 것이 구원과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아무리 열심히 섬겨도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치 않으면 그것은 자기 혼자의 믿음이요,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제쳐놓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님이 오시기 이전, 즉 구약 시대는 인정을 받을 수 있어도, 주님이 오신 후에는 주님을 거쳐야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양의 문’이며, 따라서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지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요 강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요10:1)
믿음이란 주님과 나 사이에 성립되는 것입니다. 즉 주님과 나 사이에 성령으로 연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주님을 알고, 주님이 나를 알아주실 때 비로소 진정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주의 종이란 주님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능력을 소유한 자를 가리킵니다. 예컨대 바울과 베드로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들은 사람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부어줌으로써 주님과 연결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마음속으로 주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영적 교류가 실제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땅에서 아무리 주님을 불러도 은혜의 연결을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전무후무한 이긴자 감람나무의 역사가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역사 안에서 은혜 받은 사람은 죽어서 그 시체가 스데반과 같은 순교자처럼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다른 데서 예수를 수십 년 열심히 믿던 사람도 죽으면 시퍼렇게 변하는데, 이 은총 가운데 접어든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아도 이런 놀라운 혜택을 입게 되는 것만으로도 이것이 무슨 역사라는 것을 잘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주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주님 당시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다.”(요14:12)는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응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긴자가 나타나 역사하는 시대이며, 성령이 이것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바로 이긴자의 시대라는 것을 믿습니까? 믿되 얼마나 믿는지, 한 번 자문해 보십시오.
만일 여기에 거리끼는 것이 있다면 은혜가 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는 이 물음에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이미 대답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