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Part 02 - Chapter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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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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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2. 새벽종이 울리면

Chapter 14. 올바른 신앙 자세를 갖자

 

오늘날 하나님의 복음은 널리 전해져서 전 세계적으로 신자가 수억에 달하고, 교역자만 해도 수십 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양적으로 보면 크게 발전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신도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적인 알찬 열매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드온의 군대 32천 명 중에서 300명만 추려서 미디안과 싸워 이기게 한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7:1-7참조)

 

오늘날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144천의 하늘 군병의 수가 차는 것입니다. 이 수가 차야 마귀가 발등상 되어 하늘나라를 이룩하려는 오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하늘 군병은 주로 진실한 의미의 순교자로 충당되었으며,

 

오늘날 이 땅에 감람나무의 역사가 베풀어져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순교하지 않고도 그 반열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는 했으나, 이 섭리 안에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결코 쉽사리 그 혜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17:14)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을 공경하고 주님을 따르는 전 세계 뭇 기독교 신도들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며, 그러기 위해 정성과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가장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늘 군병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들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가는 길은 매우 평탄합니다. 그것은 좁은 문이 아니라 넓은 문입니다. 어려운 예수가 아니라 쉬운 예수, 편안한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를 믿어 돈도 벌고 출세도 하고 병도 나아야 축복 받은 줄로 알고,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그래도 무방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는 무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와 싸워서 능히 이길 수 있는 정예 부대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같이 연단하고 금같이 시험합니다.(13:9)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의 장애물 경주와 같습니다. 앞에 첩첩이 놓인 장애물을 하나하나 뛰어 넘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래야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2:10) 주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어려운 요구를 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전쟁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도전하는 적이 없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렇다면 아담, 하와가 원죄를 범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삼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 주님을 이 땅에 보내어 구태여 피를 흘리게 할 것 없이 옛날에 벌써 하늘나라는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4) 주님은 당신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짝하며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믿노라 하는 사람들은 영을 추구하면서도 세상에 깊숙이 젖어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잘 살고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데 치중하여 하나님의 일은 둘째 혹은 셋째요여가 선용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욕구 충족을 앞세워서는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신앙 자세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빠져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높은 자, 배운 자, 가진 자일수록 세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도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한 이 부자는 돈 많은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의 부자, 명예의 부자, 지식의 부자도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주로 가난하고 무지하고 천하고 병든 사람들과 상종하셨습니다. 이들은 환경이 불우한 만큼 자기보다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가난하고 무지하고 천하고 병들기를 원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면 육적인 축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믿음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객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기도의 제목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기도보다 주님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즉 내가 마음과 시간과 정성을 하나님께 좀 더 기울일 수 있게 해주십사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눈시울을 적실 만한 기도 말입니다. 지금은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때이며, 주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