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Part 02 - Chapter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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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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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2. 새벽종이 울리면

Chapter 17. 믿음의 세 단계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리라.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20:4-5)

 

이 말씀은 계시록에서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깊은 영적인 내막을 잘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안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는 데 그친다면 이론에 불과하고 신학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선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장님의 신앙을 면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첫째 단계입니다.

 

안 다음에는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행위로 주 앞에 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에 행위가 없으면 무의미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둘째 단계입니다.

 

다음에는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의 피로 마음이 정결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계시록에서 진실한 자’(17:14)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셋째 단계입니다. 이 믿음의 세 단계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올바로 알면 움직이게 되어 있고, 움직이는 가운데 마음이 정결케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의 신앙이 자라는 것을 감안하여 단계적으로 조금씩 깊은 말씀을 던져 이미 여섯 권의 설교집으로 나왔고, 이제 제7집도 마무리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감춰진 말씀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가 흰 돌의 내용이 활자화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창세기에서 계시록에 걸쳐 주로 빈 데를 채우는 보충 설명에 치중했으나,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설교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나중에 터뜨릴 흰 돌의 내용은 설교 1집에서 7집까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알아듣기 어려울 것입니다.

 

나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전하였는데도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내 탓이 아니지만, 전하지 않아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했다면 나는 주님 앞에 책망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는 언제나 주의 것을 가지고 일해 왔습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한테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말씀도 권능도 내 것이 아닌데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존경이나 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 단상에서 10년 동안 목메어 외쳐 왔지만,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언제나 생수가 연결되기 때문에 갈증을 모르고 지내는 것입니다. 예배 인도도 이 단상에서는 지방 순회 때보다 한결 쉽습니다. 지방에서는 의심하는 자들이 많아 설교할 때에는 무척 힘이 듭니다.

 

듣는 자가 마음 문을 닫으면 그 세력이 반작용을 일으켜 온통 나한테 쏠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반교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는 성령의 은총으로 너끈히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설교를 준비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주께서 보여 주신 것이 녹음테이프처럼 머릿속에 들어 있어 입을 열면 저절로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집을 읽으면서도 내가 이런 말을 했던가?” 하고 스스로 감동할 때가 있습니다. 내 말이 아니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무리 신령한 말씀이라도 아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말씀은 주와 자기가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주님을 아는 동시에 주께서 자기를 알아 주셔야 합니다. 성경 구절을 좔좔 외우는 신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주일마다 수많은 목자들이 하나님을 부르고 대속의 제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열심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업이 어떻게 마무리 짓게 되느냐고 물으면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머리로 연구해서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으라고 부르짖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한다고 생각하며, 주께서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늘나라의 백성보다 하늘 군병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 소원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나는 그 동안 보혜사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한다.”(16:8)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여러분에게 죄가 무엇이고 의가 무엇이며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증거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종지부를 찍게 되는가를 가르쳐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에 서서 행위가 다듬어지고 마음을 정결케 하여 주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앞날에 대비하기 위한 정지작업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요긴한 것은 앞으로 될 일이지, 결코 지나간 과거가 아닙니다. 모세나 이사야, 베드로, 바울의 행적과 가르침은 우리에게 참고는 되지만, 앞날에 대비하는 결정적인 이정표는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주께서 보여주신 이 이정표를 여러분에게 제시해 왔습니다. 그 말은 내 말이 아니요, 여러분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 해당되는 하늘의 메시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가 터뜨린 말을 모방할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말씀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영수가 하늘의 새 소식을 전하는 나팔수에 그친다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하기는 새로운 말씀 자체도 축복임에 틀림없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영수가 말씀만 전하고 주께서 원하시는 하늘 군병을 실제로 배출시키지 못한다면 그 말씀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습니다.

 

하늘 군병은 서두에 인용한 말씀대로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20:4) 신 구약 시대의 순교자들이며,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않은”(20:4)

 

이른바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들로, 하나님과 주의 소원을 풀어 드릴 역군이자 전사입니다. 이들이야말로 하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이며, 우리가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하는 것도 이 하늘 군병이 될 자격을 얻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