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Part 02 - Chapter 1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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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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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2. 새벽종이 울리면

Chapter 19. 주님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1)

 

1) 마귀 발등상

하나님의 섭리에는 어려운 일이 많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령의 힘으로 물리쳐 나가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고귀한 피를 흘리셨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순풍에 돛 단 듯이 뜻대로 쉽사리 풀려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주께서 피를 흘리신 것은 마귀와 능히 대적할 수 있는 무기를 인간에게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무기가 또 다른 보혜사 성령입니다. 이 성령은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을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성령을 힘입어 마귀와 싸우는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10:12-13)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인간의 죄를 위하여 영원한 대속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모든 일이 성취된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처럼 기다리시는 것은 성도가 마귀를 발등상 시킬 여건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지구는 하나님께서 100% 다스리지 못하시고, 마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성경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올바른 신앙관을 가질 수 없습니다. 지구는 마귀의 손에 들어가 있습니다.(4:6) 하나님께서 보호하지 않는 자의 생사와 화복도 마귀가 주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육에 매여 영의 세계를 알기 어렵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를 따르는 제자들까지도 그 정체를 알지 못해 반신반의했지만, 마귀는 대뜸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8:29) 그리고 성경에는, 주께서 광야에서 금식 기도를 하실 때 사단이 주님을 시험한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주님의 간증을 제자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이 마귀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대하는 태도가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습니다. 마귀는 주님에게 천하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4:6-7) 하고 꾀였습니다.

 

옛날 에덴동산에서 뱀이 아담과 하와를 꾀는 것과 같은 수법입니다. 이때 주님은 마귀에게, “천하만국이 하나님의 것이지, 어째서 네 것이냐?”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즉 주님은 천하만국이 마귀의 것임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은 세상을 어둠으로 비유하여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12:46) 하고 말씀하였습니다. 세상은 어둠, 곧 마귀가 다스리고 있음을 전제하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둠 속에 있던 자가 빛 가운데 들어오면 되지 않느냐고 간단히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어둠은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빛 가운데 있는 자를 이모저모로 괴롭힙니다. 여기서 빛과 어둠은 인간을 사이에 놓고 격렬한 투쟁이 전개됩니다. 그러므로 중간에서 크게 부대끼는 것은 인간입니다.

 

지상에서 마귀를 발등상 시킬 수 있는 하늘 군병을 배출시키면 그때 비로소 주께서 등장하여 마귀의 소탕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십니다. 지금 하늘에서 마귀와 대결해서는 승산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주께서 이 성도의 세력이 확대되고 강화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만큼 마귀의 세력이 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마귀는 지체 없이 이것을 통해 침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세상에 쏠려 있지 않나, 내가 주의 편에서 움직이고 있나, 내가 마귀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았나 하고 항상 반성해야 합니다.

 

쓰러져도 주의 일을 하다가 숨을 거두겠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단상에 선 나부터가 사선을 넘는 각오를 하고 이 역사를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