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가는길] Chapter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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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2.23
[하늘나라 가는길] Chapter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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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공로 쌓는 일 


11.4 매달려야 받는다

1977년 11월 16일 수요일 저녁, 4주년 설교 중에서


 찬송을 부르는 것 또한 하나의 싸움입니다. 신령한 것을 자기 속에 넣고, 자기 속의 더럽고 누추한 것을 물리치는 것이 바로 찬송입니다. 

 제가 과거에 은혜 생활 할 적에는 찬송을 불러도 무서울 정도로 불렀습니다. 겨울에 예배를 보더라도 온몸이 땀으로 젖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불러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매달리고 가슴을 쳐야 하는 것입니다. 한 시간을 찬송을 불러도 안타까워서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기름부음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의인으로서의 칭호를 받아 완전히 이긴자가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렇게 몸부림치지 않아도 성령이 주야에 동행하기에 그렇지 않지만, 나 자신이 안타깝게 은혜를 연결 받으려 할 때에는 보통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길을 가도, 어디를 가도, 눈보라 몰아치는 강추위에도, 울면서 매달렸습니다. 하늘에서 주시지 않고서는 못 견디도록 매달렸습니다. 귀찮게 여기실 정도로 주 앞에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일주일 내내 제 멋대로 살다가, 잠깐 한 시간 앉아서, 적당히 찬송 몇 마디 부르고, 설교 듣고 돌아갑니다. 매일 똑같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3년 아닌 30년, 40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오늘은 예배를 보러 갈 때 내 속에 무엇 하나를 만들어야겠다. 내 속에 무엇 하나를 이루어야겠다.’ 라는 각오를 가지고 오십시오. 싸워야 합니다. ‘어저께는 내가 예배 시간에 왔다가 냉랭하게 그냥 갔었지. 오늘 이 시간에는 그냥 왔다 그냥 가면 안 된다. 어떻게 해서라도 하늘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가야 한다.’ 여기에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피를 억지로라도 생각해야 합니다. 주께서 보혈을 방울방울 흘리시는 그 십자가 밑에서, 그 피를 받아 마셔야 죄가 사해 지기 때문에, 그 십자가를 붙들고, 갈보리 산에 올라가신 우리 주님께서 고난당하신 장면을 그 눈으로 실제 보는 심정으로, 주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옷 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는 심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제가 분명히 주의 은혜를 받아야 죄를 사함 받는다는 것을 알았고, 이제 그 귀한 진리를 알았는데, 저는 이렇게 냉랭하오니, 이 냉랭함을 면할 길을 주시옵소서. 제가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 대해 들었고, 2천 년 전에 흘리신 그 피가 오늘날 다른 보혜사로 임한다는 것을 배웠으니, 저도 남에게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그 은혜의 맛을 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제가 무슨 죄가 많기에 저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직접 받을 수가 없습니까? 설사 제가 주 앞에 의가 없다 할지라도,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제가 이렇게 매달리는 하나를 귀히 보시사,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 허공을 바라보며 제가 그리스도를 찾으며 아우성을 치는데, 어찌하여 은혜를 주시지 않으십니까? 이 세상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부처 앞에 매달려도 소원이 풀어진다 하온데, 살아 계신 주 앞에 이렇게 매달리는데 왜 저에겐 아무 응답이 없습니까?” 매달려야 합니다. 남이야 어쨌든, 자기 자신이 살고 봐야 합니다.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지금까지 이런저런 고통을 다 견딘 것도 당신 앞에 기억 받고자 한 것이니, 주께서 저를 보살펴 주시옵소서. 온 세상을 제가 다 얻어도 주님이 저를 멀리 한다면 그게 저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에겐 주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매달리고 안타까운 심정을 호소할 적에 그것이 상달이 됩니다. 

 그때 주님의 은혜가 같이합니다. 그때 그에게 뜨거움이 임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감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감동이 생길 때에 자기 자신이 주를 바라보고 울부짖는 것은 100%, 티 하나 섞이지 않은, 흠 없고 순전한 성호가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계산이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한 백지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