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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2.26본문
9. 의식구조
9.5 구설수
1989년 2월 16일 목요일 설교 중에서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주의 종을 대하면서, 제가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저는 권위주의자도 아니고, 또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위에서 열 개를 보여주시면, 두 개나 세 개를 알려드립니다. 보여주시지도 않은 것을 보여주셨다고 하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일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위에서 어떤 말씀이 어떻게 내려올지, 솔직히 모릅니다.
저는 양떼를 이끌어갈 때에, 만에 하나라도 거짓말 한 일이 없는가, 이 역사를 미화시키는 차원에서 말을 한 것은 없는가, 뒤돌아보는 사람입니다. 또 개인감정으로 기분 나빠서, 단에서 그걸 섞어서 설교한 적은 없는가, 반성해 봅니다. 이런 경우에, 내가 그랬었구나, 할 때는 뉘우칩니다. 참 내가 부끄러운 일이다, 성직자로서 공의롭지 못했구나, 이걸 자인합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땐 뉘우치기도 하고, 본인에게 사과도 했습니다.
악을 가슴 속에 품고 사는 것처럼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없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겁니다.
제가 하나님의 손길을 볼 때에, 반드시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이건 믿는 자로서 아주 철칙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귀 담아들어야 합니다. “호리라도 갚지 않으면 너희가 형벌 가운데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남에게 구설수를 들을 적에는 내가 구설수를 듣게끔 했기 때문입니다. 그걸, 나는 안 그랬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또 남이 나를 원망하는 일이 있을 때는, 어떤 면에서라도 내가 남에게 흡족함을 주지 못한 게 있었구나, 이걸 자인해야 합니다.
그것을 느끼고, 깊이 반성하고 생활해도, 지나고 보면 온전치 못 하고 아쉬운 게 우리입니다. 정말 힘듭니다. 바울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원하는 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원치 않는 악만 자꾸 나에게서 나오는구나.” 그 사람은 하늘의 뜻을 알고서 그 뜻 가운데서 살고자 무던히 노력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이제 너희가 나를 본받아라.” 이런 자랑스러운 인물이 되었습니다.
신앙인들끼리는 남의 말을 할 때 항상 주의를 해야 합니다. 남을 섭섭하게 하면 자기가 반드시 섭섭함을 당합니다. 남을 억울하게 하면 언젠가는 억울함을 당합니다. 이것이 신의 섭리라고 저는 확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랑하는 양떼들에게 간곡히 당부하는 것은, 못된 사람, 신앙이 투철하지 못한 사람을 본받지 말라는 거, 자기도 그렇게 될까봐 경각심을 갖고 도리어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