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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6.18본문
9.24 주의 고난에 동참하라
1979년 1월 14일 일요일 설교 중에서
목적을 변경하지 않고 싸움을 마쳐야 자기가 목적한 것을 달성하게 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목적을 변경하지 않는 자는 성공합니다. 성공을 향하여 갈 때에 거기에는 말할 수 없이 빗발치는 괴로움, 어려움,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그러나 거기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겨내며, 목적을 변경하지 않는 생활이 영위될 적에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신앙 안에서의 싸움이 우리가 싸워야 할 좋은 싸움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중심이 서 있지 않으면, 남이 볼 적에 잘하는 것 같다가도, 변하는 것이 순간입니다. 그런고로 나도 과거에 고생할 적에, 말할 수 없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십 리, 이십 리 길을 눈보라 속에서 영하 18도, 19도의 추위를 물리치고 갈 적에도, 주를 사모하는 뜨거움이 마음속에 용솟음칠 적에는 추운 것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랑이라는 것은 무서운 겁니다. 이 세상에서 남녀 간의 사랑이 가장 뜨겁다고 봅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면 상대를 만나기 위해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라도 찾아갈 겁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린다고 해도 되지도 않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가라고 해도 백 미터도 가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사람은 부모가 말려도 추운 줄도 모르고 몇 십리를 쫒아갑니다. 이것은 사랑의 열기를 말하는 겁니다.
주를 사랑하는 정신적인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이 실질적으로 상대를 뜨겁게 사모하고 사랑한다면 맨발로도 뛰어갈 것이요,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를 따라가는 발자취가 바로 그겁니다. 견디고 끝까지 참으십시오. “천국은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였습니다.
어제 이상 중에,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다가 현기증이 나서 기도하시는 말씀이, “아버지여, 왜 나를 사람의 형태로 만들어, 나로 하여금 이러한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까?” 당신도 모르게 원망의 기도가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전과는 또 다른 장면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역사가 힘들고, 저 자신이 지시를 받아놓고도 어려움을 겪고, 마음의 근심을 누구에게 토로할 데 없고, 이 어려운 것을 어떻게 끌어나가야 하나 하는 답답함에 통곡할 적에, 약해지지 않도록 주님은 저에게 그러한 장면을 보여주신 겁니다.
오늘날 우리 역사에 누구하나 동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놔야 합니다. 그래서 비웃고, 조롱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그게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서, 그들이 부끄러워서 머리를 숙이고 들어와 일찍이 이 역사 속에서 주의 종과 함께 주의 고난에 동참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되는 그때를 바라보고 우리는 뛰어야 합니다. 전진해야 합니다. 쓰러지는 자는 일어나야 하고, 다쳐서 다리가 부러진 자는 부목을 대고 다리를 끌고서라도 쫓아와야 합니다. “다리가 부러졌으니, 더 이상 못가겠습니다. 기 운이 지쳤으니, 더 이상 못가겠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님은 갈보리 산에 현기증이 나서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못 올라가는 상황에서, 로마 병정이 끌고 가는 줄에 끌려서, 끝까지 올라가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게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각기 메인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저는 여러분들에게 편안한 예수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주께서 지시하시고 가르쳐 주신 어려운 것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 역사는 전진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