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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3.20본문
9.11 공로보다 기본자세
1986년 10월 4일 토요일 새벽, 13주년 설교 중에서
백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보다 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이게 기독교의 원리인데, 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억울하게 만들어 놓고도 눈 하나 깜박 안 합니다. 그것이 최고의 은혜를 받았다던 앞선 역사 안에서 비일비재하게 움직여졌던 일들입니다.
이런 것은 신앙 자체의 출발점부터가 잘못된 겁니다. 그런 잘못 속에서 숫자가 몇 십만 명이다, 백만 명이다 하는 것이 사람들끼리는 자랑할 수 있는 문제가 될지 모릅니다. 그러한 숫자를 끌어나가는 지도자가 남의 눈에는 훌륭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허나 공의를 주창하시고, 자비를 가르치시고, 희생을 요구하시고, 커질수록 고개가 숙여지는 밀알의 역할을 하라고 요구하시는 하나님과 주님 앞에는 그게 올바르게 보일 리가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것을 따르는 자들이 실질적으로 느끼고 사느냐? 느끼지 못합니다.
왜 그러한 풍토가 만들어지느냐? 바로 “나”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은, “나를 항상 버리고 주를 따라 가겠네” 하면서도, 자세는 그렇질 못합니다. 자기가 주님보다 항상 앞서서 존재하고 있으니, 거기에 순수성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걸 죄인 줄 모릅니다.
이것이 앞선 역사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거기에 은혜가 많으면 뭘 하고, 거기에 숫자가 많으면 뭘 하고, 거기에 열성이 좋으면 뭘 합니까? “산을 옮겨서 바다에 던질 만한 믿음이 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신앙이 아무리 좋다 하면 뭐합니까? 열심이 아무리 좋다 하면 뭐합니까? 너무 가치가 없는 겁니다. 신앙의 기준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했다 하고 나름대로 공로를 앞세우지만, 신앙의 근본자세가 안 만들어져 있는 사람은, 자신은 공로가 있는 것 같아도 하늘에서는 인정을 안 합니다. 기본적인 게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게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부탁하는 게 그겁니다. “마음을 착하게 가져라. 어질고 착해야 한다. 그렇질 않으면 고생한 공로가 아깝게 사라진다.” 그것을 제가 항상 여러분들한테 가르치는 원인이 거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