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가는길] Chapter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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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10.30
[하늘나라 가는길] Chapter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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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긴자란 무엇인가? 


7.2 이긴자가 되기까지

1977년 8월 28일 일요일 설교 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 이긴자가 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경로를 거쳐 왔는가, 여러분들에게 저를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불가불 내가 너희에게 자랑할 것이 있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여러분들이 앞으로 신앙을 지키는 데 본이 되게 하기 위하여, 주께서 원하시는 움직임이 무엇인지를 알려드리기 위해서, 조금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신령한 것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주의 신령함이 귀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위대하고 주님이 아무리 위대한 행적을 행하신 분이라 할지라도, 신앙 안에서 자기와 교류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 주님도 그 하나님도 자기에게 아무 필요가 없는 겁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바로 자기와 하나님, 자기와 주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그 나머지는 다 필요 없는 겁니다. 나와 주님 사이의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가 문제입니다. 주위에 불어 닥치는 모든 것은 다, 자기와 주의 교류를 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거나 도움이 되는 것에 불과하지, 원칙적인 핵심은 못되는 겁니다. 


 인생은 불행하게도, 나면서부터 죄를 가지고 죽을 생명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영생을 얻으려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는 주님과 연결이 되어야만 합니다. 죽어 마땅하고 멸망을 받아야 하는 인생들이 건짐을 받으려면, 주님께 매달려야 하는 겁니다. 육적인 것들은 다 가외입니다. 


 이때에 주를 가까이하게 하는 조건은 의가 될 것이요, 주를 멀리하게 만드는 조건은 죄가 됩니다. 죄와 의라는 것은 바로 주를 중심해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싸워서 이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다시 말해서, 주를 깨달아 섬길 적에, 그 사람과 주님과의 교류가 얼만큼 만들어 지느냐,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때에 먼저 할 것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 나와 있는 율법이 바로 모세율법이거늘, 이 모세율법에 대해서 일점일획도 어김이 없이 지켜야 하는 것 입니다. “안식일을 지켜라.” 그럼 이 안식은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야 되는 겁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여라.” 자기 마음이 실제로 못된 마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이를 악물고 참고 견디며 그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겁니다. 


 어느 장소에 가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 지, 먼저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 아무리 고통과 괴로움이 부딪쳐도, 하나님께서 하라는 일을 깨달았을 때에는, 하다가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순간까지라도 해야 합니다.


 제가 은혜를 받을 적에는, 가난한 집안인 고로, 동생들과 어머니를 모실 적에, 상자에 밥을 싸가지고 공장을 갈 때 10여리 길을 버스비를 아끼면서 걸어 다녔습니다. 


 밥을 싸가지고 아침에 나가면 40분, 50분 걷는 동안에 주님을 찾는 겁니다. 집 문턱을 나서서 직장에 갈 때까지 안 울어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을 찾고 의지하는 사이에 십 리, 이십 리 길이 먼 줄 모르고 다녔습니다. 


 겨울에도 모진 바람이 불 때, 영하 17도, 18도 되는 그 추위 속에서도, 다 떨어진 옷과 구두를 신고서 주를 찾을 적에,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분명히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기억해 주실 줄 압니다. 저는 비록 가난하고 먹을 것 없는 사람이지만, 제가 있는 정성을 다해서 주를 섬기겠습니다. 졸개 같은 저라도 보살펴 주시옵소서.” 매일같이 그렇게 했습니다. 


 저녁 늦게 와서 피곤한 가운데서도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납니다. 제단에 나가서 또 기도를 하면서 억지로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주의 보혈이 아니면 죄 씻음 받지 못한다고 했으니, 저는 잘 모르지만, 주의 피가 있어야만 죄 씻음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저에게 주셔야겠습니다.” 계속 매달리다 뜨거운 것이 흘러서 보면, 코피가 흐릅니다.


 제대로 못 먹지, 제대로 못 자지, 하루 종일 피로가 쌓이는 일을 하지, 거기다가 쥐꼬리만한 월급 타서 십일조 바치고 나면, 먹고 싶은 거 제대로 한 번 못 먹습니다. 거기다 심부름 값으로 몇 푼 생기면, 누가 알까봐 아무도 모르게 가서 주님 앞에 헌금을 드립니다. “얼마 안 되지만, 이것이 쓰일 적에 당신 앞에 영광이 되도록 해주시옵소서.” 자나 깨나 주님만을 생각합니다. 


 안 해본 것 없이 다 해 본 사람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별의별 일을 다 해본 사람입니다. 이력서를 써가지고 아무데나 들어가서 써달라고 해 보질 않나, 그런 거 아무도 모릅니다. 


 명동 한복판을 걸어 다닐 때, 남들은 히히거릴 때, 울면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저 하나만이라도 하나님을 찾겠습니다. 이 많은 남녀노소가 자기 위주로 살 때에, 저는 하나님이 계신 걸 아니, 제가 드리는 이 영광을 받아주십시오.” 


 조용한 시간에 산등성이 같은데 혼자 앉아서 소나무를 잡고 우는 겁니다. “이 산천초목을 지으신 하나님이시여, 이 풀과 이 나무 잎사귀도 자라게 하신 하나님이시여,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아닙니까? 제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간구하는데, 왜 모른 채 하십니까? 저에게 당신이 있다는 걸 나타내주시옵소서.” 


 하숙생활을 하고 혼자 살 때도 한 번도 밤에 잠자리에서 주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 한 시간 자는 자리에 주님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눈물이 흘러 베개를 적시는데, 그 간구함이 상달이 될 적에 이상 중에 신령한 것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토록 안타깝게 울부짖은 후에 위로하심이 나타나는 겁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하다가 죽는 일이 있어도 합니다. 하기 전에 따져본 적이 없습니다. 하기 전에 이해 타산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시간까지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종의 직분을 맡고 있는 이 순간에도 여호와께서 하라 하시면 이유를 따지지 않고 합니다. 내일 죽는 한이 있어도 하라면 합니다. 어떤 계산을 하고 하는 게 아닙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또 다른 직장을 구하려면 배운 것이 많아야 이력서를 가지고 취직을 하는데, 잠깐만 직장을 못 가져도 집 안은 곧 굶게 됩니다. 이럴 적에는 제단에 몰래 가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고로, 주를 찾습니다. 허공을 바라보며, “아는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으니, 주님이 길을 열어 주셔야만 굶지 않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길을 열어 주십시오.” 매달리는 겁니다. 


 그 매달림이라는 것은 100분에 1도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사형수가 재판장 앞에 무릎을 꿇고 매달리듯이, “날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당신이 무슨 일을 시키든지 하겠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나에게 이 어려운 고비만 넘겨주신다면 당신 원하시는 뜻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면케 해 주십시오.” 한 시 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다 행여나 다른 사람 눈에 띄면, 누가 기도를 열심히 한다는 소리가 날까봐,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갑니다. 매달리면서도 안타까우면 양복 같은 것을 벗어서, 아무도 없는 고로, 맨 무릎으로 맨 땅에다가 머리를 처박아 가면서 기도를 하는 겁니다. 눈이 허리까지 쌓인 산을 찾아가서도 하늘을 보면서, 바람이 부는데도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하나님이시여, 주시옵소서. 분명히 주님이 계신 것을 알았으니, 당신과 교류를 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매달리는 겁니다. 그러면 그 어려운 고비가 넘어서 조금 길이 열립니다. 그러다 또 변동이 생깁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지난번에도 어려움이 닥쳐서 내가 기도할 때 길이 열렸거늘, 앞으로 어려움이 와도 말씀을 드리면 또 길을 열어주시겠지, 하며 그 다음에 또 어려움을 당하면 또 말씀을 드립니다. 또 기도를 하고 매달립니다. 


 여름에는 기도할 장소가 없으면 남의 밭이건, 수풀이건 들어갑니다. 모기와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가운데서도 여호와를 찾는 겁니다. 그럼 그 어려운 가운데서 찾을 적에, 주님의 은혜는 그 어떠한 장소에서라도 같이 하시는 겁니다. 


 때로는 뜨거움이, 때로는 시원한 바람이, 때로는 생수가, 때로는 이슬이 쏟아지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주시는 겁니다. 그 순간에는 모든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얽매였던 죄의 사슬들이 끊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이 되면 또 어려움이 시작됩니다.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연단이 옵니다. 그러한 시련을 수년간 겪고 또 겪는 가운데서도, 갖가지 헤아릴 수 없는 어려움이 와도, 직장에 가서 일을 하며 사회 사람을 대하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순간, 주께 의지하는 겁니다. 


 “제가 오늘 하루도 움직이는 중에 잘잘못한 모든 것들을 깨우쳐 주시사 나로 하여금 당신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주시옵소서.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당신이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한 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세월이 다 지난 다음, 갖은 괴로움이 지난 다음,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과정을 겪게 하신 후에, 비로소 주께서 말씀 하시는 겁니다.


 “네가 이제까지 말할 수 없이 고생을 하고 눈물을 겪고 지냈지만, 앞으로는 길이 풀리리라. 네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만사형통이 이루어지리라. 내가 지금까지 너를 연단 속에서 봤거늘,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는 것을 알았노라.” 


 그토록 어려움 속에서 기도하고 매달려도, 굶지 않을 정도밖에는 허락해 주시지 않았던 하나님이신데, 그 다음부터 약속하신 대로 길이 열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여호와께서 모든 권한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네가 이제까지 어떠한 경우에도 나를 멀리하지 않은 것을 내가 알았으니, 이제 너는 이 한계 속에서 자유를 가져라. 대신에 역대 하나님의 종들이 목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다 이렇게 고생을 했으니, 너도 나의 일을 위해서 고생을 해 다오.” 


 그토록 원하고 안타깝게 기도를 하고 매달려야만 겨우 받았던 은혜가, 그러고 난 다음에는 어느 장소에 가든지, 어떠한 환경속에 있든지, 내가 간구하지 않아도 변함없이 주시는 겁니다. 변함없이 같이 하시는 것을 느낄 적에, 이겼다하는 그 말씀 하나를 듣는 순간, 모든 괴로움이 사라지는 겁니다. 


 이때부터 시련은 주께서 주시는 시련이 아니고, 이긴자로서 감당 해야 할 시련입니다. 온 세상의 악의 세력이 시시각각으로 불어 닥치는 겁니다. 마귀들이 하수같이 몰려올 적에, 여호와께서, 입김을 불라 하신 대로, 그것을 여호와의 기운으로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겁니다. 


 “세상을 이길 자가 누구냐?” 거듭나야 한다는 겁니다. 모임이 있다 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어떤 악조건에서도, 직장을 다니면서도, 그 시간에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몸이 괴롭고 고달프더라도, 잠깐 갔다가 도로 오는 경우가 있더라도, 지극히 적은 자에게 조그마한 약속을 해도, 약속 장소에 안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약속을 했으면 반드시 나갑니다. 헛된 맹세나 헛된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누가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 이것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 자세를 갖는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면서 항상 기도 제목이 “이 세상의 많은 예수쟁이들이 당신을 섬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존재가 된다 할지라도, 나 하나만큼은 당신을 영화롭게 해 드리겠습니다. 나 하나라도 절대로 당신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인물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하나님과 주님이시여, 나를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말씀을 드릴 적에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신호로 성령의 줄기를 연결해 주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