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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1.12본문
11.8 모임 참여
1979년 10월 14일 일요일 새벽, 6주년 설교 중에서
여러분들이 앞으로 신앙을 지킬 적에, 왜 주님의 사랑이 골고루 주어지지 않고,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느냐, 원망할 필요 없습니다. 성경이 그것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노력하는 자는 없는 것도 빼앗지만, 노력 안 하는 자는 있는 것까지도 빼앗긴다. 그게 여호와의 섭리입니다.
이걸 모르고, 누구는 사랑을 받고 누구는 칭찬을 받는데, 나는 뭐냐, 입을 삐쭉 해 봤자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경쟁입니다. 노력하는 만큼 사랑을 받습니다. 자기가 노력을 안 하면 절대 자기에게 주의 따뜻한 사랑이 안 옵니다.
요즘에도 제가 그런 걸 봅니다. 이상 중에도, 오늘날 이 역사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그 사람이 노력하고 애쓰는 광경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보여주십니다. 그 다음에는 주의 종이 그 사람을 눈여겨보게 됩니다.
주 앞에 충성을 해서 주님이 좋게 보시는구나! 주님이 귀엽게 보시는구나! 그러면 그때는 주의 종의 사랑도 그에게 쏠립니다. 반대로, 불합당한 존재로 나타났다, 그럼 주의 종도 사랑의 눈길이 안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못마땅하게 보시는데, 제가 좋게 볼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을 볼 때도 대단히 정확성이 있습니다. 잘난 자나 못난 자나, 노력의 대가가 있다는 것,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열매를 거둬들입니다. 평상시의 움직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하면, 저한테 참 잘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 하나님의 역사에 무슨 일이 있을 적에 참여를 안 합니다. 시켜도 안 합니다. 야유회를 간다거나 모임이 있을 적에,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참여를 안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랑을 안 하십니다. 주의 종한테 열심히 하는데도, 이상 중에 한 번도 안 나타납니다. 이상 중에 칭찬 받는 자들 중에 다른 사람들은 나타나는데, 그 사람은 안 나타납니다. 하늘에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평상시 하나님의 일이 있을 때 궂은일이라고 빠져 버리고, 꾀나 부리면 절대 기억 받지 못합니다.
저는 6년 동안 이 역사를 끌어오면서, 거두는 역사이기 때문에 너무나 자세히 배웠습니다. 제가 스스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주의 종인 저도 상상하지 못한 걸 여러 차례 봤습니다. 생전 기억도 안 하던 존재들이 이상 중에 나타납니다. 별로 신경도 안 쓰던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나타나서 눈여겨보면,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 거들먹거리며 하나님의 사람에게 참 잘하고 기억을 받는 존재인데도, 이상 중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으면, 이 사람에게는 반드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합당하게 보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합당하게 볼 수 있는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주 앞에 기억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주의 종이 고쳐 주어야 합니다.
기껏 노력하고도 그 사람은 주 앞에 못 섭니다. 자기의 흠을 모르니까. 그래서 지적해 주는 것입니다. 이럴 적에, 자기는 자기가 옳은 줄 알지만, 주의 종이 지적해 줄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서 지적한다는 것을 알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해 나갈 때,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이 사랑을 받는 데는 제일입니다. 자기에게 맡겨지는 사명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명이 크냐 작냐, 할 일이 많으냐 적으냐, 이것은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각자 해야 할 일이 다 있는 겁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자기 개인 일 다 하고는 못합니다. 충성이란 희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갈 적에는 하나님 앞에 진실로 잘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잘 보이는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가, 통계를 내보면 열성입니다. 열성이 있어야 합니다.
설사 그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다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될 수 있으면 죄를 안 지으려고 하고, 반면 죄를 지은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여 열심히 주의 일을 하면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크게 인정을 받습니다.
누가 되었든, 주의 종이 기름 부어서 내보냈을 적엔 그에게 하는 것이 주 앞에 하는 것으로 상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의 충성입니다. 내가 직접 주님 앞에 잘하는데, 그깟 전도사 하나쯤 우습게 여긴다고 무슨 상관이냐, 하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은 평민입니다. 어디까지나 공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공식적인 인물입니다. 전도사는 나보다 높습니다. 내가 나중에 높아질망정, 지금은 그를 존경해야 합니다.
제가 여태까지 얘기를 안 했지만, 어떤 사람은 저녁 예배에 전도사님들이 단에 서면 안 나옵니다. ‘내가 하는 것만 못하는데, 내가 나가서 뭐 하냐?’ 이런 자세는 못 씁니다. 다 고쳐야 합니다. 잘났든 못났든, 단에 선 사람은 전도사니, 그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물론 귀에 거슬리는 말이 있으면 흘려버리고, 자기에게 귀한 것만 받아 들이면 됩니다.
거의 전도관 출신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연단이 없어서, 지회장 하던 사람은 지회장 직분이 아니면 일을 안 합니다. 또 거의가 남을 헐뜯습니다. 과거에 단을 지키던 전도사들이 다른 곳으로 가면, 그 다음 전도사는 그 전 전도사를 거의가 헐뜯습니다. 지금 어려운 건 내 잘못이 아니라 전에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이고, 자신은 잘한다는 것을 심으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고 나면 그 다음 사람이 또 그 사람을 욕합니다.
전임과 후임이 제일 친해야 합니다. 얼마나 깊은 인연입니까? “내가 있던 곳에 당신이 왔으니, 당신과 난 인연이 깊소. 부족한 것이 뭐가 있소?” 하고, “당신 있을 때 이곳은 어땠습니까?” 이렇게 유무 상통하면서 가르쳐 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건 간 사람 욕을 못해서 난리입니다. 간 사람은 새로운 사람이 자신보다 잘할까봐 비판하고, 기회마다 호시탐탐 노립니다. 자기보다 잘해서 인기가 올라간다는 얘기를 듣기 싫으니까. 이러한 자세니, 될 것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위에서 은혜를 줘도, 처음엔 잘되는 것 같아도 세월이 지나니 썩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과거 하나님 역사에서 부패의 요인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이제 어느 곳에서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든, 반드시 에덴성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일하는 방법부터 알아야 합니다. 상대가 잘돼야 내가 잘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