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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29본문
이웃 사랑과 참음에 대해 1
어저께 이상 중에, 믿는 사람들이 취해야 할 가장 소중한 걸 보여주신 게 있는 고로, 오늘 이 시간에는 그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 중에 가장 첫째 되는 계명은, 네 마음과 정성과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겨라, 두 번째 계명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러한 말씀을 우리는 읽고 들어왔습니다.
저도 어저께 이상 중에 광경을 보기 전에는 그 말씀에 대해 그렇게까지 실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에게 괴로움을 주고 멸시하고 학대하고 천대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참는 것도 한도가 있지 않느냐,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저께 제가 본 결과, 백 번을 참을 것을 99번까지 참다가 한 번을 참지 못하면, 99번 참은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을 믿기가 힘들다는 걸 또 한 번 느낀 것입니다.
왜 역대에 성령의 불길이 그토록 치솟았던 역사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버림을 받나, 수많은 사람들이 시작할 적에 폭발적으로 모여들었지만 끝에 가서는 겨우 몇 사람 남을까 말까 하는, 170만 명이 출발한 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숫자는 장정들 60만 명 중에 두 명밖에는 못 들어갈 정도로 힘든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을 제 자신은 과거에도 궁금하게 여겼고, 혼자서 말은 안 해도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저께 긴 이상 중에 모든 광경을 바라본 다음, 하나님의 섭리가 간단치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신이 그 속에 거할 수 있는 여건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신이 그 속에 거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세력이 침투되는 것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이 시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을 읽어가면서 여러분들한테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택해 놓으시고, 그 백성들에게 명령을 주셔서 이렇게 저렇게 해라, 너희가 이렇게 하면 복을 받을 것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너희에게 저주를 내리리라 하시는 겁니다. 누구를 중심 삼느냐면, 당신을 중심 삼아서. 모세야, 이제부터 너희들은 내 백성인 고로, 내가 너희들에게 알려줄 말씀을 지시할 것인즉, 너는 시내 산으로 혼자 올라와라. 모세를 부른 것입니다.
40주야를 하나님과 동행하여 율법을 받은 모세에게 그때에 임한 명령은 여러 가지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말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취해야 될 움직임, 그것이 바로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따라하세요.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19:17~18)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아무 사람에게나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인침을 받은,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귀중성을 아는, 믿는 형제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방인들은 이 말씀에 해당치 않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여호와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느냐? 왜 이것을 지키라고 강조하시는가?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려면, 인간이 하나님께로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로 오셔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속하는 게 아니고, 신이 인간에게 속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을 적에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신이 내 속에 들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고로 내가 하나님께 주는 겁니까, 받는 겁니까? 우리는 받는 게 주목적입니다. 드리는 게 주목적이 아닙니다. 드린다는 것은 받은 다음에 은혜를 갚기 위한 움직임이요, 받는 게 목적입니다. 여호와는 인간에게 당신의 것을 주고자 하시는 게 목적입니다. 아무리 수억만의 사람들이 있어도, 하나님의 요소가 사람들에게 들어가지 못하면, 하나님과 인간은 무관한 관계가 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위대해도, 사람에게 위대한 존재가 아니면, 가치가 없으면 아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 말씀하신대로, 너희는 형제를, 겉으로가 아닙니다. 표 나는 게 아닙니다. 쥐도 새도 몰라도, 그 마음속에 형제를 미워하는 순간에 여호와의 신은 떠납니다. 틀림없습니다. 같이 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하나님의 역사에서 미움이 싹트기 시작하고 원망과 불평이 생기면 그 역사에서 하나님이 떠나시는 것입니다. 같이 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는 곳은 여호와께서 원치 않으십니다. 나도 어저께야 비로소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나도 그동안 부분적으로, 하나님 앞에 들은 것이 있고, 과거 역사에 대한 것을 거울로 보여주신 것이 있는 고로, 거기에 준해서 가르쳤지만, 나 자신이 놀랐습니다. 상대가 괴롭히고 저주를 하고, 연고 없이 갖은 모략과 중상을 하여 견디지 못하게 시달리고, 시달리게 하여 너무나도 시달려서 견디지 못하여 상대방에게 해를 가하는 마음을 순간이라도 가지면, 또한 해를 가하게 되면, 그 가한 것 이상의 것으로 믿는 자에게 뒤에 보응이 가도록 하는, 반드시 당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라. 너희가 참고 견뎌도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끝까지, 죽는 순간까지 참아라. 끝까지 참아라. 왜 주님께서 모욕을 당하면서 끝까지 자기를 죽이는 원수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하셨는지 알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지 않기 위하여, 거기에 저주를 내리면 지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고 또 견뎌야 합니다. 그 일이 누구의 것이냐면, 여호와의 것인 고로, 하나님이 하라 하신 고로, 그걸 당할 적에 참지 못하고,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날이면, 그것이 당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됩니다. 그래서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기를 때리고 돌로 쳐 죽이는 원수들을 바라보며 운명할 때에, 조롱 조소하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시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는 고로 저렇게 하니, 저들에게 축복을 주시옵소서.” 돌무더기 속에서 자기 골통을 부숴버리는 그네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하는 원인도, 그렇게 하는 것이 성령이 담길 수 있는 비결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마귀는 참고 견디는 마음 자세가 흩뜨려지게, 견디지 못하게 사탄이 옆에서 조정하는 것입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주어서, 서서히 원망과 불평을 하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조정을 받는 순간, 하나님은 섭섭하여 떠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딘다는 거, 갖은 모략과 중상과 어려움 속에서도, 이것이 가는 길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걸 알았으면, 어떠한 괴로움 속에서도 한 마디 불평을 입 밖에 토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따라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면 주 앞에 못 섭니다.
저 자신에게, 제일 앞장선 고로, 그러한 시련과 연단을 말할 수 없이 주시지만, 나도 인간이기에, 때로는 저주가 입 밖에까지 나올 때가 있는 것입니다. 당장 처치해 버릴 수 있는 그런 능력이 나에게 있는 고로, 그들을 쳐 없애는 이러한 기도가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갈보리 산 올라가실 적에, 네가 예수고 하나님의 아들이냐, 침을 뱉고 조롱할 적에, 그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다가 쓰러지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날 적에, 믿는 형제들까지도, 자기를 따르는 형제들까지도, 왜 주님이 저렇게 약해졌나, 원망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참고 견딜 적에, 나중에야, “하나님이시여, 내가 뜻을 다 이루었습니다.” 당신의 가야할 길을 끝까지 참았다 이겁니다.
만약 그때 주님이 참지 못하고, “아버지여, 저들을 당장에 형벌을 내려주시옵소서.” 저주가 나왔던들, 주님은 실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까지 무수한 역경 속에서도 참아야 합니다. 참는 것이 이기는 길입니다. 참다 참다 못 참아서, 백 개를 참아야 될 것을, 99개까지 참다가 한 개를 못 참음으로 패배자가 됩니다. 나 자신이 물론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세히 가르쳐 주시지만, 여러분들은 저를 통하여 듣기 때문에 실감을 못 느낄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나 자신이 한숨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러나 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니까.
그러면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원망을 밥 먹듯 하고, 불평을 밥 먹듯 하고, 형제 비방을 떡 먹듯 한다면,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무슨 사랑을 받겠습니까? 이상 중에도 보면, 아는 것들이 와서, 아무 연고 없이, 말할 수 없이 미워합니다. 이를 악물고 나를 꼬투리를 물고서 죽이려고 합니다. 보통 미워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것들이 그렇습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견디다 못해, 간혹 가다 그들에게 해를 가하다 보면, 그 견디지 못하고 해를 가한 결과가 즉시 후유증으로 스며들어 패배자가 됩니다. 그때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부족한 것을 뉘우쳐도, 그건 승리한 것만 못합니다.